현대 주거문화는 소통의 단절, 재개발로 인한 기존 주민 공동체 해체 등 풀리지 않는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최근 현실 속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마을 공동체’를 꾸려가는 움직임이 있어 이목을 끈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심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일상을 이어가는 이들을 소개한다.

더불어 소통을 모색하며 돈독해지는 마을 공동체

오늘날 바쁜 일상에 함몰된 개인들은 이웃 간 소통에 점차 소홀해져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원자화된 개인에 머물러 있기 일쑤다. 최근에는 주민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하고 그를 통해 이웃 간 소통을 모색하고 있는 마을 공동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강동구에 위치한 ‘장미마을’은 마을 내 골목을 가꾸며 이웃 간의 정을 길러왔다. 정원 가꾸기는 13년 전 몇몇 주민들이 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주민 김수천씨는 “불결한 골목 미관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주민들이 마을 곳곳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골목에 정원을 조성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주민들은 외부 지원에 기대지 않고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마련해 장미, 수세미 등 식물을 심고 함께 헌 벽에 벽화를 그리며 소통의 물꼬를 틔웠다. 김씨는 “골목이 조성되기 전처럼 주민들의 일상은 여전히 바쁘지만 소독, 분갈이 등 지속적으로 골목을 돌보고 이를 위한 논의를 거치며 개인의 일에만 급급했던 모습은 점차 사라져갔다”고 말했다. 봄이 오면 탐스럽게 만개할 마을 골목의 장미들처럼 이곳 주민들은 오늘도 정겨운 소통의 일상을 피워가고 있다.

대구 범물동 마을은 당제(堂祭)를 통해 소통을 도모하고 있다. 1990년대 마을 일대에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며 20여년간 중단됐던 당제는 마을 전통을 후대에 전하고 이를 통해 세대 간 교류의 장을 열어가려는 마을 어르신들과 주민들의 의지로 지난 2004년 재개됐다. 매년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 느티나무 주변은 액운을 쫓고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기 위해 모여든 주민들과 지역 정치 인사들로 북적인다. 당제가 마을 어른들만의 전유물일 것만 같지만 젊은층도 참여해 세대가 한데 모이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고.

그들만의 해결책으로 재개발을 비껴간 마을 공동체

급속도로 진행되는 도시화 흐름 속에서 어떤 마을들은 주민들의 필요가 아닌 상업적 목적에 의해 원치 않는 재개발 위기에 놓이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 맞서 외형만을 새롭게 하는 재개발이 아닌 마을을 긍정적으로 변모시키는 자발적 개발로 마을 공동체를 지속시켜 온 이들이 있다.

높은 빌딩이 즐비한 부산 연제구 도심 속에 자리한 물만골 자연생태마을. 피란민과 철거민이 유입돼 형성된 마을은 1990년대 후반 재개발 지역으로 논의돼 철거될 상황에 처했다. 재개발로 인한 주거 공간 훼손, 공동체 파괴에 대해 고민하던 주민들은 공동 기금을 조성해 마을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재개발 이후의 번듯한 인공환경을 기대하지 않고 마을 본래의 자연환경을 손수 되살리자는 취지에서였다. 마을 주민들은 공동 기금을 바탕으로 도로 개선 운동, 마을버스 운행 등을 추진하며 친환경 생태마을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자연환경을 고려한 주택건축, 실개천 복원, 자연생태학습장 마련 등 환경을 보전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시도들이 이뤄져 마을은 주민들의 뜻처럼 내실 있는 생태마을로 발돋움해 왔다. 화학세제 사용 최소화를 생활 규칙으로 삼는 공동 공간 물만골 사랑방을 운영하는 등 마을은 여전히 생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주민들의 뜻으로 유지되고 있다.

한편 경남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의 주민들은 시민단체와의 협력으로 허름했던 벽면 곳곳에 생기발랄한 벽화를 그렸다. 벽화로 마을을 눈여겨보는 이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낙후된 공간으로 여겨졌던 이곳은 자연스레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주민들은 2년마다 새로운 벽화를 준비하며 기존 벽화가 닳아 마을 미관을 다시 해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들은 공모전, 각종 회의에 참여하고 벽화를 그리기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에게 간식 제공 등 소소한 인정을 베풀기도 하며 마을을 가꾸는 데 직간접적으로 동참한다. 각자의 주거 공간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며 뭉치기 시작한 주민들은 함께 마을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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