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보험 적용 가능한 직업을 갖는 것은
예술대 학생들의 목표가 아니다
취업률만으로 예술을 평가하는 교과부
예술의 목적과 특성을 고려해야

문화부장
1934년 서울, 여기엔 좋은 소설을 쓰고 싶은, 무직의 한 청년이 있다. “어디 가니?” 26살의 젊은 청년 구보는 어머니의 질문에 대답을 아낀 채 문밖을 나선다. 노트 한 권을 팔에 낀 채 집을 나온 그는 서울 시내 한복판을 배회하기 시작한다. 소설가 박태원은 그의 자전적 소설과도 같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가 이 하루 동안 보고 들은 일을 파노라마처럼 그려낸다. 백화점에서 대합실, 술집까지 정처 없이 떠돌던 그는 잠시 몸을 튼 어느 다방에서 최씨를 만난다. 최씨와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보는 고료로 자신의 글을 평가하려는 최씨의 태도에 염증을 느끼고 자리를 뜬다.

시간이 훌쩍 지난 2011년 서울, 여기엔 구보가 돈을 좋은 소설의 기준으로 삼는 현실 앞에 내뱉었을 깊은 한숨이 아직도 묻어난다.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최근 예술대 학생들이 마주한 현실에 대한 보고다.

지난달 24일 전국예술계열대학생연합(예대련)은 ‘취업률 평가폐지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이날 숙명여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예대련은 이후 예술대 취업률 평가 기준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취업률 평가 기준을 비판하는 예술대 학생들의 퍼포먼스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7일 추계예대에서는 ‘집나간 연어(졸업생)들도 돌아오게 하는 교과부’라며 졸업생들이 준비한 축제 ‘연어구이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이는 모두 지난 9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구조조정 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취업률을 중요 지표로 삼으면서 상대적으로 순수예술에 집중한 예술대가 불리한 판정을 받은 데서 일어난 움직임이다. 교과부는 4대 보험 적용이 가능한 직장에 졸업 후 1년 이내에 취직한 학생의 비율을 취업률로 따졌다. 하지만 이는 예술계의 현실을 고려치 않고 이뤄진 탁상행정의 결과다. 예술계에서는 교과부가 말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힘들다. 큐레이터, 기획자 등의 전문 직종도 4대 보험 적용과는 무관한 것이 다반사며 대부분은 전업작가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예술계의 특성에 대한 고민 없이 지표의 일괄 적용으로 예술대에 ‘실업자’ 양산소의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만큼이나 자의적 처사다.

하지만 그간 순수예술이 받아왔던 홀대를 돌이켜보면 이번 대학 평가 결과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난 2003년 조각가 구본주씨가 교통사고로 숨진 후 보험사인 삼성화재는 ‘구본주씨의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유족에게 무직자에 준한 배상금을 지급했다. 수차례의 전시와 수상 경력, 조각계에서의 좋은 평판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9년 전체 예술인의 37.4%는 창작 수입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월평균 수입이 100만원 이하인 이들은 전체의 60%에 달했다. 하지만 이처럼 참혹한 시장 상황에도 여전히 예술을 하려는 이들은 남아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다시 예술대의 목적을 되짚어보자. 이번에 부실대학으로 지정된 예술대들은 실용미술보다 순수미술에 역점을 둔 대학의 경우가 많았다. 예술대 학생들은 그림을 그리던 손으로 “돈이 아니라 예술을 그리고 싶다”는 피켓을 그린다. 이들에게 예술은 더 편하고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과정이자 삶 그 자체다. 1980년 유네스코에서 채택된 ‘예술인의 지위에 관한 권고’는 “예술을 가장 완벽하게 정의하면 그것은 생활의 필요불가결한 한 부분”이며 “정부는 창조적 재능의 표출을 용이하게 해주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은 그저 예술로 바라봐야 한다. 예술가를 양성하려는 예술대에 직장인 배출을 주문하며 예술대 평가에도 똑같은 기계적 잣대를 들이대는 교육과학기술부의 현 모습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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