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은 기존의 심리학에서 설명하는 차원에서 보다 깊게 들어가 인간 심리에 대한 통합적인 그림을 맞추게 해준다. 예를 들어 남성이 대개 여성보다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기존 심리학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거나, 남자 아이에겐 장난감 총을 쥐어주는 식으로 양육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근접적인 설명들은 왜 남성이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도록 됐는지, 왜 장난감 총에 더 관심을 갖도록 설계됐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기 어렵다. 이때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진화사에서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이 남성들 사이에서 더 치열했기 때문에 다른 남성들을 신체적으로 제압하거나 남성이 여성보다 더 폭력적으로 진화했음을 궁극적인 원인으로 제시한다.(근인/궁극인의 구별)

여성이 배우자에게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서도 진화심리학은 여성의 욕망을 낳은 진화적 뿌리를 찾는다. 6개 대륙 5개의 섬에 위치한 37개의 문화를 조사하고 10,047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며 인간의 짝짓기 욕망을 연구한 데이비드 버스 교수(텍사스대 심리학과)는 여성들이 남성을 선택할지 거부할지 판단을 내릴 때 남성의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나이, 야만과 근면성, 신뢰성과 안전성, 지능, 몸집과 힘, 건강, 헌신 등의 자질들을 고려하도록 진화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자질들에 대한 고려의 이면에는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진화적 사실이 놓여있다. 여성은 평생 400여개의 정해진 난자를 만들고 이미 만든 난자를 새로 교체할 수도 없지만 남성은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어낸다. 또 수정과 임신이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남으로써 여성은 한 번의 성교로 다른 짝짓기 기회가 봉쇄된 채 많은 에너지를 9개월 간 투자해야 한다. 이처럼 여성은 한 번의 성 관계로 자칫 엄청난 투자를 해야만 하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배우자를 까다롭게 고르는 여성들이 자연선택된 것이다. 전중환 교수는 “이러한 궁극적인 수준의 설명은 호르몬, 학습, 문화, 사회화 등 여러 층위에서 이뤄지는 근접 설명들과 상호보완적으로 인간 심리에 대한 통합적인 설명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진화심리학의 이러한 설명방식은 실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인간 행동을 더 잘 조절하고 정책 결정을 더 잘 인도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법학자들이 진화한 심리적 적응들에 대한 지식을 이용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보통 성희롱과 스토킹(stalking)의 성립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피해자가 ‘합리적 인간’이었을 경우에 그 반응을 근거로 한다는 ‘합리적 인간 기준(reasonable person standard)’이 많이 채택되고 있다. 진화론적 연구에 따르면 상대방으로부터 성적 관심을 추론해 낼 때 남성이 여성보다 쉽게 알아차리도록 지각 기제가 진화했다. 이렇게 지각 기제 수준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여성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행동을 성희롱적인 것으로 판단하며 스토킹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도 남성에 비해 여성가 더 큰 공포를 경험한다. ‘합리적’ 여성과 ‘합리적’ 남성의 반응이 서로 다르다면 배심원단은 성별이 배제된 ‘합리적 인간 기준’을 보다 정확하게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법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성희롱, 성폭행 등의 배후에 놓여 있는 요인을 진화론에 기반을 둔 발견들을 통해 평가함으로써 더 효과적인 법을 만드는 노력을 시작했다. 실제로 법률 진화론적 분석 학회(the Society for Evolutionary Analysis in Law, SEAL)는 이미 30여개국에 걸쳐 400여명이 넘는 회원을 갖고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