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전문대학원
오래 전에 법대 조교를 하면서 김증한 선생님 연구실에 있었다. 경성제대를 다니신 김 선생님으로부터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 경성제대에서는 교수들에게 구미 각국의 신간 서적 목록을 나눠 주고 전공서적 구입신청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목록에서 필요한 책을 골라 신청하라는 것이 아니라, 목록에서 필요 없는 책을 표시해서 보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구입한 방대한 장서가 지금 우리 대학도서관의 자랑거리가 돼 있다. 아무리 제국대학이었지만 식민지에 있는 대학에 그렇게 투자한 것을 보면 일본에 있는 제국대학에는 얼마나 투자했을까 짐작이 간다. 요즘 들어 가을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벨상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안달이다. 노벨상은 아무나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학에 투자는 않고 무슨 노벨상 타령인가?

1972년까지는 비록 독재정권 시절이었지만 대학 캠퍼스에 경찰이 몽둥이를 들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데모 주동자를 잡고 싶어도 전투경찰이 교문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캠퍼스의 신성함이 존중됐다. 1972년 우리 개교기념일에 각 대학 캠퍼스가 군탱크에 짓밟히고 난 뒤부터 본격적인 대학잔혹사가 시작됐다.

이제껏 수십 년 동안 정부는 대학의 학생 선발에 온갖 간섭을 다 해왔다. 논술을 보라 했다가 보지 말라고 했다가, 수능을 많이 반영하라고 했다가 조금 반영하라 했다가, 어떤 과목을 넣어라 말라, 이래라 저래라……. 한도 끝도 없는 간섭을 해 왔다. 그게 다 사교육을 막기 위해서란다. 그렇게 진땀 흘리면서 대학입시에 간섭과 강요를 했는데, 그래서 사교육이 눈꼽만큼이라도 줄어들었던가?

근래에 난데없이 국공립대학을 선진화해야겠다고 몽둥이를 들고 나섰다. 총장 직선제 폐지, 누적적 성과연봉제, 학장이나 학과(부)장 공모제 등을 하라고 한다. 말 안 들으면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한다. 심지어는 저 높은 동네서는 기업인이 기업식으로 운영하는 어떤 사립대를 가장 훌륭한 대학이라고 치켜세웠다고 한다. 도대체 대학 총장, 학장 선임에 왜 정부가 간섭을 하고 나서는가? 문제를 일으키는 대학이 있으면 그 대학에 제재를 가하거나 퇴출시키면 된다. 모든 대학에 몽둥이질을 하는 것은 전형적인 일제 잔재인 전체기합에 대한 신봉 때문이거나, 아니면 옥과 돌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일 것이다. 누적적 성과연봉제라니, 대학이 교수의 연구와 교육으로 돈을 버는 기업인 줄 아는가? 교과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골수에 사무쳤으면 전국의 국공립대학 교수들이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고 장관 퇴진운동을 하겠다고 나섰겠는가? 한 쪽에선 떠나간 민심을 되돌리겠다고 노심초사하는데 그런 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여기서 인구에 회자되는 농담 한마디 하자. 지도자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똑부, 똑게, 멍부, 멍게가 그것이다. 지도자로 가장 이상적인 유형은 똑게이다. 똑똑하지만 게을러서 큰 틀만 올바로 정해주고 일 맡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도록 두고 보는 사람이다. 최악의 지도자는 어떤 유형일까? 당연히 멍부다. 멍청한 인간이 쓸데없이 부지런해서 주위 여러 사람을 괴롭히고 일도 망친다. 우리나라 대학정책 당국자들은 어느 유형일까? 스스로는 똑부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정부가 대학에 하는 짓을 알면 외국에서 ‘대학괴담’이라고 하지 않을까 매우 걱정된다. 대학을 선진화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대학정책 당국자의 생각이 선진화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쉽지 않으면 - 물론 쉬울 리가 없다 - 그냥 최악은 면하도록 멍게로 남아 대학 지원이나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고 지켜보길 권한다. 백 년 전 일본 사람보다 못한 안목을 갖고 부지런 떨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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