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육과 박사과정
우리는 어려서부터 소비생활에 잘 훈련된, 세련된 소비자입니다. 그래서 깐깐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익숙합니다. 저 역시 어려서부터 엄마와 쇼핑을 다니며, 물건을 살 땐 어떻게 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터득했지요. 특히 대형 마트처럼 ‘손님은 왕이다’를 강조하는 매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계산 속도가 조금만 느리면 언짢아지고, 상품 안내가 불친절하면 황당합니다. 착오가 있을 땐 헬프데스크에서 항의를 하고 사죄의 뜻이 담긴 5천원 상품권을 받아옵니다.

물론 소심함에 못이겨 아무 말도 않고 그냥 돌아올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더더욱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지불한 돈에는 그만한 서비스 비용이 포함돼 있으니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는 생각,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라 믿고 왔는데 이러면 되겠냐는 생각, 내가 지금까지 마트에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 이 정도 보상은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억하심정, 요즘같은 세상에 이 정도 서비스 정신도 없으면 어떻게 벌어먹고 살겠냐는 직업 철학 등등.

그렇지만 신문을 통해 알게 된 마트의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때 마트가 기꺼이 머리를 조아리며 무한 친절을 약속했던 건 그들이 그에 대한 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더군요. 마트 점원의 시급은 5천원이 안됩니다. 거기엔 그들이 하루종일 서서 세일을 외치고 물건을 나르고 포장하는 기본 인건비도 채 못 들어갑니다. 마트가 고객에게 마음대로 약속한 ‘무한고객주의’는 점원들의 무한 고생으로 이뤄지지만 점원들은 그에 대한 추가 수당은 받지 못하는 셈이지요. 돈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 손님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방법이라니 마트가 간이라도 빼주겠다고 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마트에서 사소하게 배상 받는 세탁비 만원이나 상품권 5천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트가 배상 인심이 후한 이유 중 하나 역시 자기가 돈을 내지 않기 때문이라더군요. 문제가 생긴 것이 상부에 보고되면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점원들은 많은 경우 그냥 자신의 사비로 배상금을 지불한다고 합니다.

제가 뭔가 속은 것 같았다면 과장된 기분일까요. 저는 그저 지금까지 힘없는 한 명의 소비자로서 마트라는 대기업으로부터 나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깐깐한 소비자를 자처하고자 했던 거였는데 마트는 저 뒤에 숨어서 눈 하나 깜짝않고 시급 5천원도 안 되는 점원들만 닦달하고 있는 거였다니요. 그럼 지금껏 저는 뭘 했던 걸까요. 마트에 대항해 마트에 떽떽거린 것이 아니라 마트의 논리에 맞춰 점원들에게 떽떽거렸던 건가요?

껌 놓는 위치까지 신경쓴다는 마트의 이윤 창출 전략이 제가 신문 몇 자 읽고 파악한 것으로 다 설명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점원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마트 점원을 볼 때 그들의 시급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좀 불편한 일을 겪어도 그들을 괴롭히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럼 제가 입은 손해는 어쩌죠? 사장 나오라고 해야 하나요? 사실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점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마트의 논리가 제가 교사가 되든 공무원이 되든 회사원이 되든, 그 조직의 분위기에도 반드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분명 그 조직이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를 위해 받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겠지요. 저는 그게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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