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통령이 사라졌다」

대통령이 사라졌다. 손전등을 들고 암전된 무대 위를 바삐 움직이는 배우들의 일사불란한 동선은 사태의 급박함을 더 실감케 한다. 대통령의 행방불명 소식이 전해진 청와대는 발칵 뒤집힌다. 극 중 시간은 그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됐던 시점으로 옮겨가 사건들을 찬찬히 훑어낸다. ‘내 승리만 위한 길은 아냐/너와 나 그리고 당신들의 승릴 위한 길’이라며 대의를 중시하던 대통령은 어디로 간 걸까. 대통령 이강토, 그가 사라졌다.

지난 10일(목)에서 12일까지 리더십센터 창립 3주년 기념공연 뮤지컬 「대통령이 사라졌다」가 두레문예관 공연장에서 펼쳐졌다. 융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준비된 공연은 여러 분야의 교수진과 전문가, 전공생이 한데 모여 만들어졌다. 사건은 지난날의 오해로 헤어진 첫사랑 연정의 편지를 받은 강토가 청와대를 몰래 빠져나가면서 시작된다. 오랜 친구로서 강토에게 줄곧 열등감을 느껴온 부통령 민재는 이틈을 타 대통령이 되려는 음모를 꾸민다.

 


탁월한 감성으로 채워진 노래, 상황을 적절히 묘사한 안무 등은 공연 내내 관객을 몰입시킨다. 특히 동선을 다채롭게 활용해 공연의 활기를 더하려는 시도가 인상깊었다. 대학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선 객석에 앉은 관객이 2층으로 이동하고 배우들이 빈 객석까지 캠퍼스, 자취방 세트 등으로 활용하며 무대 안팎을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별도의 무대를 설치하지 않고 계단형의 객석을 움직여 무대의 범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구성과 맞물려 돋보였다. 치솟는 물가, 실업률 증가 등의 뉴스를 들으며 강토는 괴로운 듯 무대 밖으로 나가려하지만 도우미들이 객석을 이동해 그의 퇴로를 막고 도망칠 수 없도록 무대를 좁혀온다. 객석으로 무대를 좁혀오는 설정을 통해 강토의 심리적 압박감을 가시화하는 대목은 단연 이번 극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인물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그리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자취를 감춘 대통령을 찾으려는 분주함, 그의 지위를 탐내는 권력욕이 뒤섞이며 복잡하게 얽혀가던 사건은 서로를 보듬는 사랑과 용서라는 지점으로 모여든다. 극은 만인 앞에서 권력이 아닌 사랑을 택하겠다 밝히는 강토, 강토의 진심어린 행보를 바라보며 맹목적인 권력욕을 기껍게 내려놓은 민재 등을 비추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이 온전한 해피엔딩에 마냥 시원한 웃음을 지을 수 없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향한 봉사와 공익 증진을 중요시하던 강토는 첫사랑과의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면서 아무런 고민도 없이 당연한 수순을 밟듯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려한다. 그토록 모질게 강토를 탄핵위기로 몰아넣던 민재가 권력욕에 젖었던 과거를 뉘우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 역시 찾을 수 없다.

 


극은 이 세상에 만연한 맹목적인 권력욕을 경계하고 권력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소중한 다른 가치들에 대한 생각을 일깨우려 했다. 하지만 강토와 연정의 로맨스만을 만능키로 내세운 구성으로 극은 주제를 선명히 드러내지 못했다. 막이 내린 후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머릿속 여전히 대통령은 사라졌다. 다만 로맨스 영화 속 사랑에 빠진 흔한 남주인공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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