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전희경의 풍경

수많은 시인묵객들은 무릉도원을 노래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등장한 어부는 길을 잃어 흘러들었던 무릉도원에 다시는 갈 수 없었다.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에 나타난 무릉도원은 안개 속에 잠긴 듯 허공에 떠 있다. 잔잔한 강 저편에 인적 없이 배 한 척만이 아스라이 떠있는 무릉도원의 끝자락은 그렇게 멀기만 하다. 오래된 그림 속 이야기처럼 우리의 현실과 이상은 같이 설 수 없는 것일까. 만약 현실과 이상이 맞닿은 공간이 있다면 그곳은 어떠할까. 여기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존재하는 그 ‘간극’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가 있다. 안국약품의 신진작가 공모에서 선정된 화가 전희경씨의 개인전 ‘전희경의 풍경’이 대림2동 소재의 갤러리 AG에서 오는 25일(금)까지 전시된다.

작가는 「‘-살이’정경 #2」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연옥’에 비유한다.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모자라지만 지옥에 갈 정도의 죄는 짓지 않은 이들이 잠시 머무르는 곳이다. 현실과 이상이 동시에 나타난 공간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푸른 바탕 위에 그림 속 요소들을 하나하나 붓질해 얹어놓았다. 한겹한겹 옷을 입어가며 형태를 갖춰 나간 작품은 현실과 이상이 서로 경계를 넓혀오다 마주한 모습과 닮았다. 밝고 화려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은은한 산수화의 느낌이 풍기는 것은 그림의 구도가 무릉도원의 그것과 같아서다. 그림의 상단에서는 무너진 벽돌담이 이상으로 가는 길을 환히 비추는 데 반해 하단부에는 직선으로 표현된 구조물들이 방대하게 얽히고 설켜 있다. 이 구조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상징한다. 무릉도원에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세계를 덧바르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공간적 형상 안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살이’정경;불안, 행복, 떨림, 봄, 세념」(위 작품)에서는 그 답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작품 속 인간은 쓸모없는 부분이 제거된 유기체로 상징화돼 꾸물거리며 산천을 흐르고 있다. 창자처럼, 무릎 뒤의 주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은 끔찍하게 느껴지다가도 한순간 연민을 자아낸다. 군데군데 그림 속 공간에 완전하게 뿌리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다양한 형상들에게선 어쩐지 흔들리는 청춘의 모습이 묻어나온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 속 인간을 현실에 발붙이지도 이상을 향해 맘껏 뛰어나가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흔들거리는 존재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를 보는 작가의 시선이 그리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작가는 밝은 색채를 사용해 이상을 향해 노력하는 인간들에 대한 희망을 은연중에 전한다. 그림들의 본질이 결국 무릉도원인 것에도 이러한 낙관이 배어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존재하는 분명한 간극을 담담히 마주한 작가는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간극은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계속 좁혀나갈 수 있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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