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렌디피티」의 여주인공 사라는 남주인공 조나단이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 책에나 자기 연락처를 적은 후 그 책을 헌책방에 팔아버린다. 7년 후 책은 돌고 돌아 다시 조나단의 손에 들어온다. 영화는 이를 ‘세렌디피티’, 뜻하지 않게 찾은 인연이라 부른다.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북크로싱’은 다 읽은 책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방출해 책의 가치를 나누자는 의도로 출발한 이색 독서운동이다. 북크로싱을 시작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 북크로싱 사이트에 가입하고 방출할 책을 등록한다. 그 후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북크로싱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실린 라벨을 책에 붙인 뒤 다음에 읽을 사람을 향한 메시지를 적어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공공장소에 책을 두면 된다. 이후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한 사람은 라벨에 적힌 사이트에 들어가 또다른 전달자가 돼 앞의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게 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독자들을 만난다.

지난 2003년 ‘북모임’, ‘돛단책’ 등의 사이트를 통해 국내에 등장한 북크로싱은 현재 블로그나 카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이트로는 ‘아름다운 북크로싱 카페(www.beautifulbookcrossing.com)’ , ‘북스프리(www.booksfree.co.kr)’ 등이 있다. ‘북스프리’ 대표 김하아얀씨는 “내 책장 속 잠든 책을 내보내면 내게도 언젠가 생기 있는 책이 오리라는 기대가 북크로싱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북크로싱으로는 책이 있을 수 있는 장소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책의 순환 속도가 느려지기 쉽다. 최근에는 이를 보완하고자 정류소처럼 책이 모일 수 있는 오프라인 거점을 별도로 마련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북크로싱 카페’ 봉사자 박경숙씨는 “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북크로싱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때때로 북크로싱은 습득자가 책을 개인적으로 소유해버려 책의 순환이 끊기기도 한다. 하지만 박경숙씨는 “북크로싱은 개인 의사에 따른 책의 방출로 시작되는 만큼 그 여행의 시작과 끝 모두 개인의 의사”라고 말한다. 북크로싱은 책이 새로운 만남을 통해 다시 가치를 얻는 것에 방점을 둔다. 지금도 북크로싱 라벨을 단 책들은 또다른 독자를 기다리며 자유롭게 여행 중이다. 어딘가에서 기다릴 책의 세렌디피티를 만나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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