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중심의 ‘장애학’을 인문·사회학적 담론으로 확대하려는 시도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장애자’라는 존재론적 접근과
불구적 성격의 문화적 징후가 권력의 억압에서 기인했다는 주장도

최근 영화 「도가니」의 개봉으로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장애(disability)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학문적 시각은 아직까지 ‘정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재활 중심의 특수교육학, 사회복지학적 방법에 집중돼 인문·사회학적 연구는 미진한 상황이다. ‘장애학’ 협동과정 연구 프로그램이 대학과정에 개설돼 있는 미국 등 해외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사진: 길은선 기자 tttkt@snu.kr
지난 18일(금) 사회대 신양관에서 열린 한국사회사학회 월례발표회 ‘장애와 문화’는 장애를 일종의 사회적 범주, 혹은 정체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신선한 시도를 선보였다. 이날 정근식 교수(사회학과, 「장애인의 문화권 향유실태와 전망: 문화권연구의 확충을 향하여」), 이진경 교수(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장애자의 존재론적 평면: 장애의 정치사회학을 위하여」), 김홍중 교수(사회학과, 「서커스적 통치성과 유신」), 이동신 교수(영어영문학과, 「괴물 만지기: 재현에서 체험으로」) 및 여러 토론자들 간의 활발한 의견 개진은 발표회를 역동적인 분위기로 이끌었다.

1부 ‘장애와 이론’을 맡은 정근식 교수와 이진경 교수의 발표는 장애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제공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2008)’의 시행 및 각종 장애인문화정책의 제정 등 지난 10년간 장애에 대한 법률적 접근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정근식 교수는 아직까지 장애인이 일반인과 동일하게 문화예술활동 향유 기회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장애인의 문화권이 확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교수는 장애인이 문화 활동의 적극적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장애에 대한 시혜적·공급자적 패러다임을 버리고 장애예술이 우리 사회의 다양성, 창조성을 자극하는 또 다른 원천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예술이 창조적 잠재성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이론이 뒷받침돼야한다”는 정근식 교수의 맺음말을 이어받아 이진경 교수는 장애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보여줬다. 이 교수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모든 존재자는 ‘항상-이미’ 다른 수많은 존재자들에 ‘폐를 끼치며’ 살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 먹은 밥, 입은 옷, 잠드는 집 모두 누군가에게 끼친 폐의 대가다. 즉 우린 모두 자신의 존재를 ‘선물’받고 있는 ‘장애자’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장애는 이러한 ‘존재론적 일반성’보다는 단순히 생리학적 ‘문턱’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교수는 ‘문턱’으로서의 장애 개념을 ‘장애의 정치학’으로 이끌고 간다. 생리학적 문턱 외에 성적 범주 간, 학벌 간, 유산자와 무산자 간 인위적 ‘문턱’들이 문화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혁명은 그 문턱을 제거해 매끄러운 공간을 만들려는 집합적 운동인 것이다.

이진경 교수의 연구는 흥미롭다는 평과 함께 날카로운 지적도 받았다. 수유너머R 박정수 연구원은 “존재론적 일반성의 문제가 존재론적 동일성으로 이어지면 감각·지적·정신적 장애 등 장애 자체의 존재론적 차이가 망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계간 『함께웃는날』 김도현 편집장은 “사실 동양적 세계관에서 우리가 모두 의존적 존재임은 당연하다”며 “단순히 우리 모두 ‘장애자’라는 각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홍중 교수와 이동신 교수의 발표로 진행된 2부 ‘장애와 재현’에서는 장애 문제에 대한 미학적, 문학적 접근법이 제시됐다. 김홍중 교수는 통치 세력은 항상 자신의 권력을 문화라는 스크린, 혹은 상상계에 ‘연출’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유신체제의 폭력성이 최고도에 달했던 ‘긴급조치 9호 시대’에 등장한 불구적 성격의 문화적 징후들과 유신체제의 사회정치적 구조 간 관계를 분석했다. 조세희 소설에 등장하는 ‘난장이’, 추송웅 연극의 ‘빨간피터(원숭이)’, 무용가 공옥진의 ‘병신춤’, 하길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바보’가 대표적인 문화적 징후들이다. 이들은 발육이 부진하고 신체가 왜곡되는 등 형상적 유사성을 띠고 있으며 모두 박정희의 ‘서커스적 통치성’의 압력에 의해 아래로 위치됐다는 위상학적 동일성을 지닌다. 

김홍중 교수가 주목하는 ‘서커스’는 인류가 최초로 동물을 길들이는 ‘조련’의 테마를 상징한다. 서커스와 같이 유신체제는 ‘조련권력’으로 기형적이고 불구적인 것들을 통제하고 규격화한다. 김홍중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통치성 구조와 동시대 문화적 산물의 의미론적 구조 사이에 특정한 상관관계를 가정한 이러한 징후해석학적 방법에 대해 “아직은 더 연구가 필요한 아이디어 수준이지만 이러한 (문화)사회학적 분석은 분명 가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서호철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김홍중 교수의 분석에 대해 “‘박정희 시대’라는 기존 시대 구분에 장애를 종속 변수로 집어넣은 듯 하다”며 “장애 자체에 더 집중하면 네 가지 징후가 박정희 시대에 단순히 ‘있었다’는 수준을 넘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됐느냐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한편 변현태 교수(노어노문학과)는 정치권력의 연출을 이야기한 벤야민의 해석에 근거했을 때 “권력이 스스로를 연출할 때는 제시된 네 가지 징후보다는 새마을운동과 같이 다른 삶의 영역에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낸다”며 “오히려 네 가지 징후들이 이에 대한 안티(anti)로 나타난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편 장애를 ‘재현’의 문제로 읽은 이동신 교수는 ‘괴물’과 장애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에 따르면 ‘타자’로 규정돼 사회에서 배제된 장애인은 일종의 ‘괴물’로 인식된다. 이동신 교수는 독재자라는 정치적 괴물, 연쇄살인범이라는 사회적 괴물을 ‘공포의 대상’으로,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괴물’이 재현되는 방식을 ‘혐오감의 대상’으로 나눈다. 또 그는 우리가 공포의 대상에게는 수동적이거나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반면 혐오감을 주는 대상에게는 직접 ‘접촉’해보고 치워버리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괴물을 없애려 한다는 점에서 두 반응은 같을 수 있지만 혐오감에는 접촉을 통한 공존의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 그런데 그간 영화나 대중매체에 등장한 ‘괴물들’은 공포의 대상으로 재현돼 접촉이 완전히 배제됐다. 이동신 교수는 “만져보지도 않고 괴물의 재현에만 의존하는 것과 만져보고 체험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발표회를 기획한 주윤정씨(사회학과 박사과정)는 “그동안 정책 연구에서 장애에 대한 학술적 담론이 부족해 장애에 대한 비평언어를 만들 필요를 느꼈다”며 학술대회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황경숙 회장(한국사회사학회)은 “장애인의 문화, 정체성 문제를 인문·사회학 등 문화연구적 시각에서 논의하고 토론한 내용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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