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돈끼호테를 위하여

암전된 무대 위 형체만이 얼핏 비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대사를 읊조리며 한 지점으로 모여든다. 서서히 조명이 무대를 비추자 원형으로 좁게 모인 인물들의 웅성임은 잦아들고 원의 중심에 선 민호는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난 살아있어!’ 절박함이 배인 민호의 외침은 공연의 물꼬를 트듯 그렇게 공연장을 울려온다.

지난 10일(목)부터 20일까지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의 연극 「돈 끼호테를 위하여」가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저신장 장애인인 주인공 호태와 지체·시각 장애 등을 가진 그의 친구들을 통해 장애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당당히 세상과 소통하려는 장애인들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학창시절, 괴짜같지만 자신의 소신을 굳게 지키는 영웅 돈끼호테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준비하며 배우의 꿈을 키우던 이들은 세월과 함께 변한 서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호태는 여전히 연극배우를 꿈꾸지만 친구들은 그가 견고한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을 것이라 비관한다.

연극은 무대와 객석을 넘나들며 진행돼 배우와 관객 사이의 벽을 허문다. 극중 연극 연습에 열심인 호태와 민호는 감정이 북받친 듯한 대사에 능청스런 표정까지 더하며 열연하다가 ‘근데 왜이렇게 썰렁해?’라고 갸우뚱하며 객석을 바라봐 관객의 웃음기 가득한 박수를 유도한다. 또 만만치 않은 현실이지만 서로가 있기에 괜찮다는 메시지의 감동을 선명하게 전하기 위해 ‘너 덕분이야’라는 대사를 반복할 때마다 관객과 눈을 맞춘다. 감정이 격해지는 대목에서는 객석까지 동선을 넓히며 연기해 관객을 몰입시킨다. 이러한 요소를 통해 자칫 무대 안에 갇히기 쉬운 메시지와 인물의 감정 등은 객석까지 고루 뻗어나간다.

하지만 내용 전반의 짜임이 촘촘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극 중반 유성이 자신의 자리를 채갔다며 그를 쏘아붙이는 호태의 태도는 다소 갑작스러웠다. 물론 초반부터 유성에게 반감을 보이는 호태의 모습이 종종 등장하지만 극이 전개되는 동안 이 갈등관계의 전말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증폭되기만 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학창시절 공연을 앞두고 복통을 일으킨 호태 대신 유성이 주인공을 맡게 돼 호태가 그간 질투와 서운함을 느껴왔음이 드러나지만 각 장면이 동떨어져 극 전개의 전체 흐름이 매끄럽지 않았다.

극의 마지막,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라고 자꾸만 강조하는 친구들의 충고에 호태는 ‘내 인생은 끝났다’며 절망한다. 무대 한켠에 힘없이 선 호태를 북돋는 것은 장애 때문에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을 비관해 자살한 친구 민호의 진심어린 목소리다. 연극에 대한 호태의 열정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가슴에 ‘꽃이 피었’다는 민호의 이야기에 호태는 다시 일어선다. 또다시 민호는 공연장이 울리도록 부르짖는다. 난 살아있다고. 쩌렁쩌렁 공연장을 울려오는 민호의 외침은 극을 지켜보는 관객이 장애인 배우들의 열정에 보낸 박수갈채와 한데 어울려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맴돈다. 힘겹지만 당차게 꿈을 품어가는 호태의 모습은 그렇게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 나아갈 희망찬 행보를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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