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일(금)부터 11일까지 미대(49동~52동), 종합교육연구동(220동), 미술관MoA(151동)에서 그들의 노력을 오롯이 담아낸 ‘서울대 미술대학 졸업전시회(졸전)’가 열린다. 이번 졸전은 많은 수의 08학번들이 제2전공 이수로 졸업을 유예해 작품 수가 적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학생들만의 참신한 사유와 치열한 노력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된다.(작품은 각 과 추천작)

동양화과, 전통 재료 위에 얹은 현대 기법

차동하 교수(동양화과)는 “올해의 작품들은 재료와 시각적 표현 방법이 다양해졌다”며 “수묵과 채색처럼 기본에 충실한 작품도 많지만 벽화기법, 사진기법 등 색다른 재료로 독특한 세계를 펼친 학생도 있다”고 이번 졸전의 경향을 밝혔다. 동양화과 전시는 먹과 한지처럼 전통적인 재료를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기법으로 자기세계를 표현하며 현대 미술과 전통 미술의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김현정씨(동양화과·08)는 「몰입1」에서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당연한 순간을 담아냈다.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법한 세상인데도 여자는 핸드폰에 푹 빠져 모든 것을 잊은 상태다. 순지 위에 먹으로 그려진 선은 그림의 바탕에서 여성의 형상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얇은 한지를 잘게 오려 붙인 콜라주 기법으로 자칫 단조로울 수 있었던 무채색 의상이 그녀의 몸을 은은히 비추는 저고리로 탈바꿈했다.


박정연씨(동양화과·08)는 「내 마음의 파도」에서 요동치듯 격렬한 내면의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콩테로 바탕을 그리고 먹으로 덧칠했지만 그림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작품 속에서 작가의 감정은 파도로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하늘과 섞여 들어간다. 쏟아지는 파도와 점점이 흩뿌려진 별빛이 배경색과 흑백의 대비를 이뤄 모호한 내면의 상태를 보여준다.

조소과, 깊은 주제를 담는 여러 기법의 틀

베니스 비엔날레 등 여러 국제적인 행사들로 외연을 넓힌 올해 미술계는 상업적인 작품의 양산에만 천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있었다. 졸전은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나 학생이 자유롭게 시도한 실험작을 선보이는 장이다. 문주 교수(조소과)는 “세간의 장식적 경향을 따르기보다 의미 있는 주제선정을 위해 고민을 거듭한 흔적이 담뿍 느껴지는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며 졸전을 소개했다.


사영인씨(조소과·08)의 「흔적(trace)」은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내려는 노력을 석고판에 담았다. 얼음 속에 검은색 잉크가 찍힌 석고판이 들어있는 작품은 매질의 이동 속도 차이를 이용해 혼합물의 시료들을 각각 분리하는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 기법을 사용해 흥미를 자아낸다. 전시 기간 동안 얼음은 녹아 물이 되고, 석고판의 검은 색 잉크는 물이 지나간 자리마다 시간의 차이를 두고 다양한 색으로 그 흔적을 아로새긴다. 흘러간 물의 자국으로 물질화된 시간 속에서 관객은 인간의 생성과 소멸을 마주보게 된다.


문서진씨(조소과·08)는 「무제(untitled)」에서 쓸모없어진 오브제들을 조합해 하나의 온전한 인물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버려진 재료들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잉여’에 대한 세간의 시각을 깨뜨리고자 했다. 대걸레 머리카락과 과거 작업 때 사용했던 실리콘이 재활용된 발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작가에게 예술은 본질적으로 여분의 노동력이 투입된 것이다. 잉여의 재료와 잉여의 노동력이 ‘예술’이라는 지점에서 맞닿아 다시 태어난다는 작가의 발상이 흥미롭다.

디자인학부 공예전공, 탄탄한 기초가 튼튼한 양감으로

공예전공 학생들은 현대성을 지니되 전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황갑순 교수(디자인학부 공예전공)는 “이번 졸전은 공예 기초를 탄탄하게 다진 작품들로 구성됐다”며 “기예적 측면보다 예술적 측면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오는 2일부터 5일까지 미대(52동) 물레실에서는 ‘도예전공 판매전’을 열어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들을 선보인다.


일곱 개의 백자 「실린더들(CYLINDERS)」은 김보경씨(공예과 석사과정)가 반복된 물레작업에 변주를 가미해 빚어낸 작품이다. 일반적인 도예가 유약을 덧바르는 작업으로 마무리되는 것과는 다르게 그의 작업은 물레에서 시작과 끝을 같이 한다. 물레를 돌려 만들어낸 똑같은 크기와 형태의 실린더들은 물레 위에서 마지막으로 연마된다. 백자 표면의 규칙적인 단들과 그 윗면의 섬세한 선들은 관객의 눈높이에 따라 조금씩 달라 보인다. 모인 기물들은 조금씩 어긋난 규칙성으로 새로운 리듬을 생성한다. 작가는 “도예의 기초인 원통형을 조금씩 바꾸는 데서 조용한 변화를 찾고자 했다”며 작품의 의도를 설명했다.

디자인학부 디자인전공, 경계를 해체하고 사람을 향하는 디자인

이번 디자인전공의 졸전에서는 첨단 기술을 응용하고 시공간의 해체를 시도한 접근들이 자유롭게 나타났다. 또 과거에는 상업적인 의도의 디자인이 많았다면 공공디자인이 새롭게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김수정 교수(디자인학부 디자인전공)는 “학생들이 소재와 기능면을 다양하게 고려해 작품을 통합적으로 설계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결국 모든 작품들이 사람을 향하는 방향으로 디자인됐다”고 졸전의 의미를 밝혔다.


송의섭씨(디자인학부·04)의 「파피루스」는 이러한 영역 간 통합이 잘 드러난 미디어아트 작품이다. 고대 이집트의 기록관들이 두루마리에 파라오의 일상을 남긴 것에 빗대 ‘파피루스’로 명명된 이 작은 기계는 전원과 인터넷만 연결 돼있다면 자동으로 사용자의 활동을 기록한다. 기록된 두루마리들은 그 자체로써 시간과 내용을 담고 있는데 컴퓨터와 연동될 경우 보다 실감나는 영상미디어를 제공한다. 송의섭씨는 “종국에는 자동으로 SNS를 백업하는 ‘파피루스 어플리케이션’으로 어린 날의 앨범처럼 일상을 보관하고 싶다”며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밝혔다.

서양화과, 물감으로 드러낸 내면의 목소리

김정희 교수(서양화과)는 “평년보다 작품 수가 적어 아쉽지만 다양한 주제와 뛰어난 표현력이 돋보였다”고 이번 졸전을 평했다. 올해 서양화과는 조소과와 연합해 ‘영상매체 예술과정’을 신설하는 등 전공의 다양화를 꾀했다. 이번 졸전에서는 이런 노력들이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화단 데뷔의 길을 넓히고자 한 학과의 노력으로 오는 4일에는 화랑대표들과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먼저 선보이는 프레 오프닝 파티를 연다.


양희애씨(서양화과·07)의 「나의 거인1」은 큰 화폭을 가득 메운 거대한 형상이 관객을 단번에 압도한다. 작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들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부끄러움과 연약함을 털어버리고자 한다. 녹색 거인은 작가의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수호자를 상징한다. 기억의 파편들은 노란 인형이 골자인 거인의 몸피를 점차 키운다. 그에게 보호받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보호받는 연약한 자아를 증오하는 갈등이 작품 속에서 거인의 피로 가시화된다. 흘러내리듯 그려진 배경의 물감이 결국 허상일 뿐인 거인의 이미지와 충돌하며 존재의 모순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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