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의 진정한 연대를 말하다
'돼지'들의 진정한 연대를 말하다
  • 대학신문
  • 승인 2011.11.20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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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립애니메이션「돼지의 왕」연상호 감독

“교실 어느 구석에 앉아 있는 방관자 캐릭터가 나와 닮았다. 나도 학창 시절에 그 자리쯤에 앉아 지켜보는 아이였다.”

지난 3일(목) 「돼지의 왕」이 개봉했다. 연상호 감독의 중학교 시절을 반영했다는 이 작품은 한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본인과 가장 닮은 작품 속 캐릭터를 묻는 질문에 대한 즉답과는 달리 연 감독은 평범한 방관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단순한 학교 폭력의 묘사를 넘어 계급 사회에서의 갈등과 대립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또 그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진중공업 정리 해고와 강정마을 해군 기지 건설 반대 1인 시위의 첫 주자로 나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연상호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담아내고 싶었던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는 현 사회에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까. 

인터뷰|백수향 편집장     글|신소윤 부편집장    사진|남상혁 기자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힘 있고 돈 있는 애들은 나중에 사회에 나가 사랑을 받을 개(犬)들이고, 힘없는 애들은 살찌워져 잡아먹힐 돼지다. 돼지는 자기 살을 찌우는 게 행복이라고 여기지만, 그 살찐 몸이 먹이가 되는 줄도 모른다.” -「돼지의 왕」 中

「돼지의 왕」은 아내를 살해한 경민이 종석을 만나 자신들의 옛 기억을 안주 삼아 꺼내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들의 중학교 시절은 추억의 대상이 아니다. 교실 안의 아이들은 돈 있고 힘 있는 아이들과 가난하고 힘없는 아이들로 나뉜다. 전자는 사나운 ‘개’, 후자는 개에 의해 관리되고 사육당하는 ‘돼지’다. 종석과 경민은 자신들을 돼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개들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러한 그들 앞에 나타난 강자 철이를 축으로 전개된다. 철이는 폭력으로 폭력에 저항했다. 하지만 왕으로 군림했던 철이는 부모의 직업과 빈부격차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외부적 요인 속에서 서서히 몰락한다. 「돼지의 왕」은 이처럼 파국을 맞은 돼지들의 왕에 대한 이야기다.

「돼지의 왕」이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무지꼴라쥬상을 수상하며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전작 「지옥: 두 개의 삶」에서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회와 인간상의 어두운 부분을 짚고 있어 보기 불편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밝고 희망적인 내용을 기대하는데 이처럼 무거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유가 있는지?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그동안의 한국 애니메이션에는 낭만적인 세계관이 많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을 둘러싼 세상은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밝은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별로 안 보기도 했다.(웃음)

실사 영화였어도 「돼지의 왕」의 내용을 잘 다뤘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처음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단편영화 한 편을 찍어보고 나서 영화 작업이 나와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 제작을 위해서는 일정에 맞춰 모두가 모여 얼굴에 철판 깔고 찍어야 하는데 난 오래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단편영화 한 편 찍은 이후로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최근 「돼지의 왕」이나 「마당을 나온 암탉」 등 애니메이션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혹시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있는가.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 정도는 알고 있지만 애니메이션 감독은 잘 모른다. 영화로써 소비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낯선 장르다. 그래서 「돼지의 왕」에 대한 관객들의 평이 더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 자체가 그리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표현도 세고 내용도 강한 「돼지의 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리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예술은 사람들의 삶과 가장 맞닿아있으면서도 멀어지기 가장 쉬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삶과 유리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예술은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중들이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느끼고 싶은데 너무 유리돼서 대중들과 똑같이 못 느끼면 어떡하나’하는 공포심을 항상 갖고 있고 늘 고민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연대는 연약하다. 그래서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다.”

「돼지의 왕」에서 폭력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주변인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그려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 있는 방관자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작품에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가?

「씨네 21」의 한 기사에서 이번 작품을 ‘살아남은 돼지들에 대한 저주의 노래’라고 평가했다. 이 말이 정확한 해석인 듯하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방관자적인 모습을 개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사회를 지탱하고 사람들을 결집시켰던 이데올로기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에는 ‘독재 대 민주’라고 하는 눈에 보이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이 거대한 이데올로기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당시 사람들을 강하게 결집시켰다. 사람들은 결국 독재정권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고 90년대에 문민정부가 집권하기 시작했다. 문민정부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등 독재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무엇인가가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학생들도 더 이상 나서지 않게 되면서 ‘독재 대 민주’ 이데올로기는 잊혀져갔다. 하지만 지금 보면 세상은 실제로 바뀐 게 아무 것도 없다. 당시 학생 운동 세력들도 ‘우리가 우리의 정의로 세상을 바꿨어! 근데 세상은 실제로 바뀐 게 아무 것도 없어’라는 혼란을 느끼게 됐고 이 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하나로 강하게 묶고 있던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면서 생긴 혼란이 지금 사회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독재 대 민주’ 구도 대신에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맞서는 것이 지금 사회의 대립 구도다. 사람들 개개인은 각자가 가진 공통된 이익으로 뭉쳐서 국가의 이익에 대항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이익이 서로 맞지 않을 경우에는 금방 흩어지기도 하고 같이 나서지 않기도 한다.

예를 들어 FTA를 보면, 참여정부가 FTA를 추진할 때는 스크린쿼터제와 쌀이 주된 쟁점으로 부각됐다. 스크린쿼터제나 쌀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FTA를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함께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FTA 협상 쟁점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떠올랐고 이는 개개인의 직접적인 이해와 이익과 연결되게 됐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FTA 반대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이익이 연결되면 뭉치고, 그렇지 않으면 흩어지는 이런 방식은 쉽게 연대하고 쉽게 헤어진다. 결국 결집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크레인에서 내려온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김진숙 위원은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들 모두의 공동체적인 이익을 중시했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건데 크레인 밑의 사람들 모두가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대다수 사람들도 과연 그녀처럼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의 이익이 걸려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돼지의 왕」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철이를 따르던 경민과 종석은 ‘개’들에게 기죽지 않는 찬영의 등장에 다르게 반응한다. 경민은 철이를 뒤로 하고 또 다른 힘인 찬영에게 이끌리게 되고, 경민과 종석의 사이는 조금씩 멀어져 간다. 이렇게 쉽게 돌아서게 되는 건 그 둘이 개인의 이익으로 연대했기 때문이다.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 70~80년대부터 이어지고 있던 이데올로기가 깨진 이후, 개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결집력이 약한 이러한 연대가 과연 옳은 것인가하는 의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경민 역의 김꽃비 배우가 “돼지의 왕을 따르지 말고 스스로 왕이 되라”고 말한 기사를 봤다. 그런데 아무리 주체적이라고 해도 ‘돼지’의 왕이라니 어딘가 서글프지 않나

예전에 동학 운동이 일어났던 지방에서 전봉준 장군을 기리는 동학축제를 기획한 고등학생을 인터뷰한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인터뷰 중에 그 학생에게 “만약 학생이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라고 질문했는데 그 학생은 “저는 농민들을 도와주는 착한 양반이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착한 ‘양반’이 되고 싶지, ‘농민’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누구나 자신들이 돼지인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럼 ‘돼지의 왕’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돼지의 왕은 결국 선을 필요로 한 돼지들이 만들어낸 우상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이데올로기가 없어지니 사람들은 이제 선과 악으로 세상을 양분하려 한다. 단순하게 선악으로 나눠서 사회를 바라보는 지금의 논리는 굉장히 빈약하다. 이로 인해 약자들의 연대는 더 약해진다. 연대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논리가 도대체 뭐냐’라고 질문한다면 대답을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의 논리로는 모두가 연대하기란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부산국제영화제 때 한진중공업 정리 해고 반대, 강정마을 해군 기지 건설 반대 1인 시위 첫 주자로 나섰다. 1인 시위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1인 시위가 기획된 정확한 상황은 정확히 잘 모른다. 다만  희망버스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이에 감독들도 나름의 고민을 하게 됐다. 나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에 생방송 하나가 잡혀있어서 방송에서 희망버스와 한진중공업 관련해서 시원하게 말할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김꽃비씨가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한진중공업 관련해서 이슈를 먼저 끌었다. 나까지 생방송에서 한진중공업 이야기를 하면 영화 홍보 수단으로 보일까봐 (생방송에서) 그러지는 않았고 이후 기회가 닿아 감독님들이 이어가는 1인 시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생각의 고통도 그 나름대로 즐길 수 있길”

올해 서울대는 학생들이 행정관을 점거해 날치기 통과된 법인화법에 반대하는 등 여러 큰일을 겪었다. 점거 당시에는 무엇인가 바꿀 수 있겠구나라고 기대했는데 본부가 법인화를 계속 추진하는 상황에 대해 학생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봤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연대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동력도 잃어가고 있다. 이처럼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은

서울대 상황은 잘 모르지만 나 역시도 그런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봤다. 애니메이션 하는 친구들 중 대학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시나리오를 들고 올 때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하면 그 친구들은 “그렇게 하면 교수님이 통과시켜주시지 않아서 졸업이 어려워진다”고 답하더라. 물론 학교에서도 어려운 일이 많지만 사회에는 이보다 더 힘든 일이 많다. 어떤 단계에서 부딪혀보지 않고 포기하면 나중에 더 큰일을 통과하지 못한다. 부딪혀보고 도전해보면 마냥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삶의 선배로서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의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생각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이게 안타까워 보인다. 이 고통 자체를 즐길 수 있길 바란다. 계속 의심하면서 생각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은 작품에서 사회적 문제를 의도적으로 다루려 하지는 않는다. 그는 개인을 다루면서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런 존재가 됐는가’를 추적해가다 사회를 발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속에 담긴 세계관을  추적하다보면 이내 인간 연상호를 만날 수 있다.

연상호 감독은 사회에 대해 “상상하는 두려움보다 세상이 끔찍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세상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세상이 끔찍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사회는 작품에 담겨진 사회보다 낙관적이다. 무조건 비관적이지만은 않기에 앞으로도 그저 그런 방관자로 세상 뒤에 숨어만 있지는 않을 연상호 감독. 앞으로 그가 작품에서 담아낼 세상의 모습과 사회에 던져줄 메시지를 더 기대하게 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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