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속 깊은 예술성


올해 초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다룬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가 소개되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댈러웨이 부인』과 같은 난해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 동안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연구는 영미권 국가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초기에는 조이스나 포스터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수준의 모더니즘 작가로 평가받았으나 70년대 페미니즘에 대한 폭발적 관심과 함께 울프 작품의 양성평등적 시각이 부각돼 선구적 페미니스트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울프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4월 울프 전공자들이 ‘한국 버지니아울프학회’를 설립해 지난 8월 버지니아 울프 단편 전집Ⅰ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을 번역, 솔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이번 발간은 솔 출판사가 지난 96년 버지니아 울프 전집 중 5권을 출간한 이래 7년 만에 낸 본격적인 울프 관련 서적으로 96년 당시 번역을 했던 인물들이 현재 학회의 주축이 되었다. 이에 대해 솔 출판사의 전수련씨는 “96년의 기획은 당시 유행이나 흐름에 상관없이 20세기 문학의 거장이자 페미니스트 문학의 효시로 평가받는 울프의 작품 자체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7년 간 울프 전집에 들어갈 책을 출간하지는 않았지만 번역작업은 꾸준히 진행했으며 학회 출범을 맞아 단편으로 지평을 넓혔다”고 말했다.

학회 출범으로 단편 번역작업 본격화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장 정명희 교수(국민대․영어영문학과)는 울프의 단편 전집을 번역하게 된 계기로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울프의 작품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다”며 “대중들이 울프의 작품을 접하는 데 단편이 조금이나마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희진 명예교수(영어영문학과)는 “알려진 장편 소설들 대신 단편의 거장으로 울프가 재조명 받고 있다”면서 “울프의 단편 작품들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깊은 예술성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번 단편 전집에는 「라뺑과 라삐노바」, 「불가사의한 V양 사건」 등 구성이 뚜렷한 작품들에서 「유령의 집」, 「청색과 녹색」 등 장면 묘사나 스케치에 가까운 실험적 수법으로 씌어진 작품들까지 총 20여 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라뺑과 라삐노바」에 대해 박희진 교수는 “여 주인공을 ‘인공설 위에 핑크빛 유리 눈을 하고 서 있는 박제된 암토끼’로 표현하고 있다”며 “가부장 사회에서의 결혼이 여성에게 곧 죽음이라는 사실을 고발한 전형적인 페미니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 「유령의 집」에 대해서는 “한 폭의 추상화처럼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상징성을 띠고 있는 환상적인 분위기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밖에서 본 여자대학」이나 「존재의 순간들: 슬레이터네 핀은 끝이 무뎌」와 같은 작품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울프의 관심도 엿볼 수 있다.

여성성에 대한 관심을 실험적 수법으로 구현해

앞으로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와 솔 출판사는 『파도』, 『막간』 등 20여 권의 울프 전집과 단편전집Ⅱ를 발간할 예정이다. 정명희 교수는 “울프의 작품들 이외에도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기나 일기 등도 함께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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