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성역할 강요, 성정체성에 따른 해고 위험 등 직장에서 차별받는 성소수자들
성소수자운동과 노동운동 연계해 문제해결 노력 필요하다는 지적 제기돼

2000년 9월 홍석천씨는 동성애자임이 알려지면서 출연 중이던 라디오 시트콤과 아동 프로그램 ‘뽀뽀뽀’에서 하차하게 됐다. 동성애자의 존재조차 미미하게 인식되던 당시 사회에서 유명인사 최초의 커밍아웃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최근 이 사건을 성소수자 노동권의 맥락에서 다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일(금) 서울시 종로구 민주노총교육원에서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공동주최로 ‘나, 성소수자노동자’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트랜스젠더 우체국 집배원, 게이 기간제 교사 등 6명의 인터뷰 사례를 바탕으로 성소수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공론화하려는 시도에서 기획됐다. 사회를 맡은 동인련 곽이경 활동가는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의 노동권이라는 개념이 제기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로 차별의 유형을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개별 성소수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통해 이들이 노동현장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토론회의 의의를 밝혔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흔히 겪는 어려움으로 사람의 겉모습에 기초해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직장 분위기가 지적됐다. 우체국 노동자 A씨는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현재 남성으로 생활하는 트랜스젠더다. 그는 자신을 남성으로 여기지만 그가 가는 직장은 언제나 그의 외양을 보고 여성의 유니폼과 역할을 강요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집배원이 된 그는 직장에 다니는 10년간 휴게실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성 휴게실과 남성 휴게실 어느 곳에서도 편하게 쉴 수 없었던 것이다.

해고의 위험 때문에 직장에서 성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것도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이다. 레즈비언 비정규 노동자 B씨는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성정체성을 은폐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다. 회식 자리에서 직장 동료들이 연애나 결혼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가짜 남자친구를 만들어내야 했고, 직장 상사가 맞선을 주선할 때면 거절하기 힘들어 당황스러웠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난다면 재계약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직장의 보수적인 ‘정상 가족’ 관념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차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가정을 꾸리는 것도 능력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직원은 진급에서 누락되는 일이 잦았고, 직원 가족 모임에 참여하지 못해 소외되기 일쑤였다. 부양하는 연인이 있더라도 가족수당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실제로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C씨는 게이지만 원활한 직장생활을 위해 여성과의 결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토론자들은 성소수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소수자운동과 노동운동의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서는 한 화장품 판매직 남직원 모임의 사례가 제시됐다. 이 모임은 처음엔 성적지향과 관계없이 출발했지만 어느새 직장 내 성소수자 남성들이 많이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모임이 사실상 직장 내 성소수자 모임처럼 유지되면서 성소수자들은 가까운 동료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털어놓고 고립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이경옥 사무처장은 “서비스연맹 조합원 중에도 성소수자가 많이 있다”며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쌓인 동료 간의 신뢰감이 성소수자가 연대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노동운동 내부의 편견은 연대를 위해 넘어야 할 벽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건설노조 조합원이 동인련 활동가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문제가 발생한 이후 건설노조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진행한 바 있다. 토론자로 참가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은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노동운동 내에도 성소수자에 대한 보수적인 편견이 많다”면서 “이제는 노동조합도 다양한 교육을 통해 인식을 바꾸고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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