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바라본 사무실 창문 너머의 빨간색 단풍나무가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진다. 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한 지 어느덧 7년이 지났건만 그동안 사무실 책상에서는 바깥 풍경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다. 날씨가 좋을 때에는 후배들과 함께 매장문화재 조사업무로 야외에서 생활하는 날이 많았고, 날씨가 궂을 때에는 현장에서 가져온 깨진 토기편을 복원, 촬영, 실측하는 등 보고서 작업으로 분주하다보니 자리에 앉아있는 일이 드물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외적인 활동 외에 박물관에서는 전시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고고역사실, 전통미술실, 인류민속실로 구성된 1층의 상설 전시실과 매년 2회씩 특별전이 열리는 2층의 기획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박물관을 오래되고 귀중한 유물들을 전시하는 정적인 공간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는 박물관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기인한 것이리라. 그렇지만 은은한 조명 속에 전시된 유물 하나하나는 그 자체가 오래된 역사요, 살아있는 역사의 산 증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유물 하나하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고고역사전시실을 들어서면 바로 마주치게 되는 연천 전곡리유적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는 몇만년 전 한반도에 살고 있던 구석기인이 남긴 것이다. 그냥 보면 단순한 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고인류가 최초로 표준화된 도구를 제작하게 된 창조의 산물인 것이다. 아슐리안(Acheulean) 석기라고 알려진 이 주먹도끼는 아프리카나 유럽에서는 백만년 전부터 확인될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됐지만 아시아에서는 발견된 사례가 없었다. 그로 인해 구석기시대는 정교한 석기문화를 가지고 있던 유럽과 그렇지 못한 아시아로 이분되는 학설이 통용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1978년 한탄강변에 놀러간 주한미군 병사 그렉보웬이 주먹도끼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 이 극단적인 학설은 폐기될 수 있었고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여전히 박물관 전시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물관에는 이러한 주먹도끼 외에도 사연을 가지고 있는 유물들이 많다. 지금도 쌀로 유명한 여주의 흔암리유적에서 출토된 탄화미(炭火米)는 청동기시대 농경 문화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확고히 해줬고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된 한강변의 고구려 유물은 국내에서 한동안 백제 유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다가 후대의 고고학자들에게 발굴돼 다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유물들은 자신이 만들어져 사용되던 시대뿐 아니라 발견되던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관람객들에게 들려줄 준비가 돼있다.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 따뜻한 박물관에서 유물들과 함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추천해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