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다당제 국가지만 소선거구제 중심이어서 주로 야당 측에서 양자 간의 대결구도를 만들려는 노력이 자주 있었다. 가장 최근에 무소속 박원순씨가 야권 연합 후보로 서울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당 간 제휴와 연대 그리고 이를 넘어선 통합은 양당제 체제에서는 볼 수 없는, 다당제 체제에서만 볼 수 있는 능동적인 정당정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최근 민노-참여-통합연대의 진보통합정당 창단 선언을 보며 떠올린 것이다. 지난 20일 발표된 선언에서 그들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고 대한민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통합 이후에 대한민국 정치를 혁신하고 그것을 기초로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혔더라면 우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걷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이 통합이 선거용 이벤트가 아닌 대의를 위한 도원결의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의 주체인 세 단체에게 초록은 동색이라며 진보 계열이라는 동질성을 부여하고 싶어도 당의 성향과 지향점이 무척 다르다는 점과 이미 서로를 향해 날선 비판을 퍼부었던 과거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바 유비, 관우, 장비의 한날한시에 죽겠다는 결의보다도 이들의 통합 선언이 더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치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위해 11월의 어느 날 분연히 커플이 됐다가 설날 연휴 즈음해서 우린 서로 맞지 않으니 헤어지자고 쿨하게 통보할 연인 무리를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통합에서 어떤 당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높았더라는 소식은 참된 진보의 가치를 오랫동안 외칠 정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내게는 씁쓸한 소식이었을 수밖에.

이것은 마치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마구 휘젓고 나서 이것은 비록 혼탁하였지만 하나가 되었더라고 서둘러 실험보고서에 적는 것과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상분리는 엔탈피의 엄중한 명령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다른 두 상으로 나눠지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다. 게다가 이들은 정당이라는 고유의 가치와 관점이라는 공유결합으로 각기 공고히 묶여있는 사슬이 아닌가. 이제는 엔트로피마저도 서로 갈라서라고 외칠 판이다. 열역학 법칙에 따라 통합이 매우 비자발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통합만이 살 길이라는 거창한 목소리가 대세가 돼 버렸다. 그런데 통합의 깃발에 쓰여 있는 대부분의 구호는 항상 반한나라당, 반MB일 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무조건 합쳐야 한다는 식의 통합을 정치 혁신을 위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퍽이나 감상적인 듯싶고, 실은 이합집산 내지 비장한 척하는 ‘적과의 동침’일 뿐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대통합과 관련해 어떤 행동을 취할지 궁금하지만, 제발 이념적으로 너무나도 다른 정당들과 무리하게 합쳐 불안정한 승리를 얻으려고 애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단 합쳐 이기고 보자는 식의 책략은 이제 국민들도 곱게 보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얻은 승리의 과실은 곧 도래할 통합의 붕괴와 함께 증발해버린다는 걸 질리도록 봤기 때문이다. 사실 통합 대신 거대 담론 아래 적극적인 제휴와 연대도 훗날의 잡음을 배제하는 훌륭한 전략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당의 정체성은 무시한 채 통합에만 몰두했다가는 자칫 내홍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애써 돌려놓은 민의는 크리스마스가 오기도 전에 차갑게 돌아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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