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기억한다

이름을 기억한다
강병준

1. 많은 경우, 이름을 기억하는 행위는 선(善)이라기보다는 차악(次惡)에 가깝다.

2. 2011년 3월 18일. 푸림절을 이틀 앞둔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역은 간만의 명절을 맞는 흥겨움이 넘쳐흘렀다. 1년을 손꼽아 기다려온 명절이 앞으로 다가오자 모두 들뜬 모습이었다. 반면 아랍인들은 마치 분위기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 마냥, 평소보다 더 말 없고, 우울한 모습으로 거리를 오고 갔다.

올리브산 밑에서 말없이 곤봉을 고무 손잡이에 쑤셔 넣던 경찰들은, 자신들이 저 옛날 살라딘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던 십자군의 피를 이어받았음을 재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피는 들끓고 있었고, 시선에는 힘이 넘쳐흘렀으며 입술은 자꾸만 말랐다. 경찰은 모두 스무명 정도 되었는데,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조심하며 예루살렘의 오래된 골목 벽에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유일하게 붉은 베레모를 쓴 소대장만이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다. 대원들은 이제는 모자로 감출 검은 머리가 한 올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늙고 초라한 모습의 그가, 실은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명망 높은 투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엄마 손을 잡고 첫 등교를 할 때 그는 이미 소형 보트를 타고 홀로 가자지구의 해안가를 순찰했다. 심지어 이틀 전에 훈련을 마치고 합류한 막내는, 소대장이 처음 전투에 참가했을 무렵에는 아직 아버지의 고환 안에서 꿈틀대던 한 마리 작은 올챙이에 불과했었다.

대원들은 곤봉을 가죽 주머니로 감싸고는 담배를 꺼내 피기 시작했다. 소대장은 담배 연기를 맡으며 묵묵히 지시받은 표적을 바라보았다. 아니, 표적이 있다고 생각되는 올리브산 정상 어딘가를 응시했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도 초라한 능선 위로 몇몇 교회가 웅대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그 사이에 아랍인들의 무허가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브라힘의 게스트 하우스 또한 저 냄새나고 축축한 건물들 사이에 다락방의 거미줄마냥 자리 잡고 있을 터였다.

어제저녁, 명령을 하달받던 소대장은 저절로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무허가주택 정리’와 ‘경찰특공대’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굳이 명석한 머리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의 의문을 미리 짐작했다는 듯 문서의 끝머리에는 이번 지시가 갖는 특이점에 대한 변명이 화려한 히브리어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대장은 그 부분을 읽지 않고 서류를 봉투 크기로 접어 군화 뒤춤에 찔러 넣었다. 아무렴 어떤가. 30년이 넘게 크고 작은 일들에 투입되면서 그는 두 가지 사실을 배웠다. 이것만 확실히 인지한다면 어떤 임무건 실패할 리도, 실망할 리도 없었다. 하나, 야드바쉠을 생각할 것. 둘, 이름을 묻지 않을 것.

3. 올리브산 입구에서 그들과 마주쳤을 때, 나는 K와 함께 야드바쉠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우체국과 전화국이 있는 진홍색 건물을 끼고 돌자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스라엘 경찰들이 나타났고, 우리는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들은 곁눈으로 우리를 흘긋 보더니 다시 조용히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까이 있던 경찰 한 명이 무어라 소리를 내며 지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지만,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우체국 모퉁이를 반대로 돌았다. 뒤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K가 눈썹을 으쓱해 보여,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저녁거리부터 좀 사자.”

우리는 작은 식료품 가게에 들러 피타 빵 세 묶음과 매콤한 맛 후무스 한 통, 2등급 우유 3L를 샀다. K가 사해 해변에서 넘어져 손목을 접질린 이후로, 모든 짐은 내 몫이었다. 내가 게스트 하우스에서 빌려 온 쇼핑백에 우유병을 집어넣는 동안, K는 밖에 서서 경찰들이 늘어서 있던 거리 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가 볼까?”

나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안 돼. 경찰과 엮여서 좋을 게 없어. 배낭 여행자의 제1수칙이라고. 게다라 히브리어도 못 하잖아, 우리는. 공동묘지 쪽 길로 돌아가자. 이십분쯤 더 걸리더라도 그편이 나아.”

K가 다시 상점 안으로 들어왔다.

“폭죽은 어떡하지?”
“폭죽?”
“아, 넌 못 들었겠군. 아침에 너 화장실 갔을 때 이브라힘이 말했어. 돈은 나중에 줄 테니깐, 오늘 밖에 관광 나가는 사람들은 들어올 때 있는 돈 다 써서 폭죽 좀 사다 달라고.”
“갑자기 폭죽은 왜?”
“몰라. 화약이라도 만들려 하나?”

K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폭죽을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세 번 정도 유통기한이 지난 막대 과자를 폭죽으로 오해하고 구입했다. 가까스로 영어가 통하는 가게를 찾았을 때는 발바닥과, 가방을 든 오른팔이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K는 있는 돈을 다 털어 막대 폭죽 다섯 개와 권총이 그려진 정사각형 폭죽 두 개를 샀다. 그것들은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겨 내 왼손에 쥐어졌다.
우리는 가게 주인의 이름을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회색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유시프’라고 대답했다. 그 역시 우리에게 이름을 물었다. 유시프는 한국이름에는 뿅뿅 거리는 발음이 많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편안한 여행을 원한다면 상대의 이름을 물어보라. 긴 여행이 남긴 교훈이었다.

4. 경찰들이 깔렸던 골목을 피해, 만국교회 왼쪽으로 나 있는 언덕길을 통해 올리브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 오른편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 뒤로 저녁 해가 시들어가는 국화송이처럼 기울고 있었다. 공동묘지는 한산했다. 히잡을 두른 두어명의 여자들이 비석에 한 팔을 기대고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길거리는 또 어찌나 고요한지. 멀리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긴 버려진 걸까?”

열 걸음쯤 앞서 걷고 있던 K가 소리쳐 물었다.

나는 숨이 차올라 대답할 수 없었다. 길은 몹시도 가팔랐고, 무겁게 내려앉은 적막이 고막을 녹여버릴 것만 같아 진이 빠졌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걸었고, K도 내가 얼마간 간격을 좁히길 기다렸다 다시 걸었다.

“좀 천천히 걸어 줄게.”

짐을 들어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어디선가 기름 냄새가 짙게 밴 저녁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냄새 속에서 고소한 양고기 맛을 상상해 냈고,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껌처럼 씹으며 가까스로 게스트 하우스를 향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올리브산 호텔을 지나, 머리를 성게처럼 뾰족하게 세운 아이가 카운터를 보고 있는 문방구를 지나, 거대한 초록색 쓰레기차가 세워진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고 마지막으로 8인용 주차장의 샛길로 들어서면 이브라힘의 게스트 하우스로 통하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그 언저리에는 언제나 서너명의 꼬마들이 서로를 향해 손가락 총을 겨누거나 축구공을 차며 놀고 있다. 꽃무늬 치마를 입은 소녀가 땀에 젖은 우리를 보더니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우리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들은 “헬로, 굿바이, 헬로, 굿바이.”를 외치며 각자 자기 집으로 도망가 버렸다.

대문 앞에 서자 K가 큰 선심이라도 쓰듯 말했다.

“문은 내가 열어주지.”

5. 무료로 운영된다는 게스트 하우스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요르단의 한 호스텔에서였다. 8인실 방에는 나와 K, 그리고 에콰도르에서 왔다는 포니테일의 남자뿐이었는데, 우리는 TV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 경기를 시청하다 ‘박지성과 발렌시아 중 누가 더 훌륭한 축구 선수인가’하는 중대한 문제로 싸움이 붙었고, 이를 계기로 친해졌다. 헤어지기 전날 밤 호아킨(그 녀석의 이름이었다.)은 대마초를 비켜 물며 우리의 다음 행선지를 물었고, 나는 예루살렘이라고 대답했다.

“예루살렘? 이스라엘 말이야? 혹시 크리스천이니? 아니야? 무슬림일 리는 없고, 그럼 거긴 왜 가는 거야?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돈은 좀 있니? 없지? 아는 사람도 없어? 그럼 닥치고 내가 주소 하나 적어 줄 테니까 거기서 묵어. 숙박비 무료고, 밥도 공짜로 줘. 주인 할아버지가 워낙 인정이 많다 보니….
시설? 공짜로 재워준다는데 거 참 따지는 게 많네. 그냥 가정집이야. 할아버지가 손자 한명 데리고 사는 사층짜리 주택인데, 오는 나그네 안 막다 보니 사람 많을 때는 거실 바닥에서도 자고, 화장실 문 앞에서도 침낭 깔고 자고 그래. 나도 옥상에서 잤었거든. 나름 괜찮아.”
“돈은 진짜 안 내도 되는 거야?”
“기부금을 봉투에 넣어서 현관 앞 우편함에 넣어 놓으면 돼. 뭐, 난 안 냈지만.”

그러면서 호탕하게 웃어 재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물어물어 겨우 ‘이브라힘 게스트 하우스’의 하늘색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철제 계단이 외벽을 담쟁이넝쿨처럼 휘감고 있는 회색 건물은 호스텔이라기보다는 교도소에 가까워 보였다. 우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몇번이고 주소를 확인했다.

현관은 열려 있었다. 나는 K를 앞장세우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정면으로는 외벽 계단으로 나갈 수 있는 후문이 보였고, 복도 왼편 구석방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우중충한 분위기에 맞지 않는 어느 기력 넘치는 노인의 웃음소리가 밥 짓는 냄새를 가득 안고 오감을 자극했다.

이브라힘은 부엌에서 죽을 끓이고 있었다. 여섯명이 들어가기에도 채 빠듯한 식당에 갖가지 눈 색깔과 머리 모양을 한 여행객들이 열명은 족히 들어앉아 있었다. 우리가 부엌문을 열자 그들은 웃음을 거두고, 야밤에 나타난 두명의 동양인 남자를 놀라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대번에 이브라힘이 주걱을 내동댕이치고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곤니치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니하오?”

K가 “노!”라고 짧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굿, 굿’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부엌에 있던 여행자들이 이브라힘과 코리아를 외치며 박수를 쳤고, 이에 질세라 이브라힘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웰컴 투 스위트 홈!”

이브라힘은 커다란 대야 두개에 붉은색 녹두죽을 양껏 퍼서는 K와 내 손에 들려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죽을 먹었고, 그릇 바닥이 보일 때마다 이브라힘은 사각 국자로 뜨끈한 죽을 떠서 상이라도 주듯 대야에 쏟아 부었다. 그게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양손에 들고 있던 폭죽과 저녁거리를 벽 한쪽에 던졌다. K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도구를 챙기고 있었다. 내동댕이쳐진 검은 비닐봉지 위로 막대 폭죽이 삐죽 튀어나왔다. 빨간 바탕에 노란 느낌표가 잔뜩 그려진 폭죽이 어쩐지 슬퍼 보였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배가 고팠다. 복도에 있는 공동냉장고에 사온 빵과 우유를 채워 넣고 있는데, 갑자기 부엌에서 이브라힘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주일 남짓 생활하면서 이브라힘이 화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나는 우유병을 그 자리에 내팽개치고 곧장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식탁에는 덴마크에서 온 요한과 일본계 이탈리아인 료타, 그리고 처음 보는 레게 머리 커플이 앉아 있었고, 이브라힘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그들 앞에 서 있었다. 흰색 슈마그(두건)에 가려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꽤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현듯 이브라힘이 뒤로 돌아서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너! 너는 뭐야?”

나는 이름을 말할지, 코리아를 외칠지, 정처 없이 방황하는 배낭여행자라고 청승을 떨지 고민했다.

“크리스천이야? 불교야? 통일교야?”

이브라힘이 통일교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브라힘이 얼굴의 핏기를 누그러뜨렸다.

“거 보라고! 이래서 내가 아시아인들을 좋아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언성을 높이며 티스푼으로 홍차 찌꺼기를 휘젓고 있던 레게 머리 커플을 째려보았다.

“이봐. 당신들이 예수를 믿건, 알라를 믿건, 독감백신을 믿건 그건 자네들 사정이야. 하지만 내 집에서는 그런 것 가지고 싸우지는 말라고! 돼 먹지 못한 놈들 같으니라고. 종교 전쟁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내가 왜 공짜로 너희를 재워주고 먹여주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거 아니야? 여기 이름이 뭔지는 알기나 해?”

요한이 “이브라힘 게스트 하우스”라고 중얼거렸다.

“틀렸어! 피스메이커 이브라힘 게스트 하우스야! 이름을 꼭 기억하도록 해!”

모두가 알았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나는 순간 떠오르는 게 있어 “야드바쉠!”이라고 외쳤다.

“옳지!”

이브라힘이 반색하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어쩐지 할아버지에게 칭찬받은 5살배기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오묘했다.

6. 저녁 8시쯤 꼬마 이브라힘이 방으로 우리를 부르러 왔다. 꼬마 이브라힘은 이브라힘의 손자인데, 할아버지와 이름이 같다 보니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 노트북을 함부로 만진다고 꼬마 이브라힘을 썩 내켜하지 않는 K가 인상을 쓰며 오늘은 컴퓨터를 못 빌려준다고 투덜댔다. 꼬마 이브라힘이 K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컴퓨터 빌리러 온 거 아니거든요. 할아버지가 1층 복도로 내려오래요, 전부. 폭죽 사 온 거 다 들구요.”

대강 옷을 걸쳐 입고 1층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복도에 사람이 한가득이었고, 현관 쪽에 폭죽이 해운대 노점상의 그것만큼이나 쌓여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내에 우리가 모르는 방이 잔뜩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복도를 빽빽하게 채운 여행객들을 보니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안면이 있는 이들도 꽤 있었지만, 모르는 얼굴들도 많았다. 몇 시간 전에 보았던 레게 머리 커플도 보였고, 배낭여행자라기에는 지나치게 나이가 많아 보이는 반백의 할머니도 있었다. 할머니가 우리를 향해 웃어 보여 나와 K는 엉겁결에 고개를 90도로 숙여 보였다.

이브라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이브라힘에게 쏠렸다. 1층에는 부엌과 화장실 말고는 마땅한 조명이 없는지라 이브라힘은 한 손에 전기랜턴을 들고 있었다. 아마 밖에서 보았다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랜턴을 들고 문 앞에 서 있는 아랍인과, 그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피부색의 젊은이들(그리고 할머니 한 분). 공통점이라고는 하나 같이 마른 먼지 냄새를 풍기고, 손빨래로 너덜해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것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꼬마 이브라힘이 튀어나오더니 현관 앞에 쌓인 폭죽을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권총 모양 폭죽은 누가 사왔어요?”

꼬마 이브라힘이 물었다. K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잘했어요.”

꼬마 이브라힘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빠른 아랍어로 두어 마디를 주고받았다. 둘 다 표정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원했던 만큼 폭죽이 모인 듯했다.
이브라힘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다들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돈은 내일 주지. 그리고….”

그의 두툼한 입술에 익살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안타깝지만 오늘밤에는 한명도 밖으로 나갈 수 없어.”

홍수에 댐이 터지듯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클럽 스테이지를 휩쓸고 다닐 복장을 하고 있던 미국인 여자 두명은 보내주지 않으면 도망이라도 치겠다며 하이힐을 고쳐 신었다. 누군가 발을 구르자 건물이 쿵쿵 울렸다.
이브라힘은 예상한 반응이었다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굳이 놀러 나가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하지만 목숨은 보장해 줄 수 없어.”

나는 웃었다. K도 웃었다. 요한도, 료타도, 레게 커플도 웃었고, 할머니와 꼬마 이브라힘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댔다. 미국인들은 서로의 등을 후려치며 숨이 넘어갈 듯 낄낄거렸다. 목소리에 은밀하게 감도는 비장미가 희극적이었다. 심지어 이브라힘도 안면에 미소를 띠고 집을 가득 채운 방향 없는 웃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좋아, 좋아. 웃어도 괜찮아. 크게 심각한 일도 아니니깐. 다만 농담도 아니란 게 문제지. 자, 다들 폭죽은 그대로 두고 3층으로 올라가자고. 자세한 건 위에서 설명 해 주지!”

7. 밤이 되자 피도 차갑게 식었다. 막내는 소대장 바로 뒤에서 걸었다. 그는 이틀 뒤에 있을 푸림절 파티를 생각하고 있었다. 비극으로 점철된 유대 역사에서 흔치 않은 명쾌함이 깃든 명절이다. 막내는 에일랏으로 내려가 밤새도록 파티를 열 계획이었다. 한동안 전화로밖에 연락할 수 없었던 여자 친구를 떠올리니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두꺼운 방화 장갑을 끼고 라이터를 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막 산을 오르기 전 마지막 한 개비를 피운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푸림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담배부터 잔뜩 사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불법 주택가 전체에 워커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올리브산 입구에 나 있는 4차선 도로는 고도가 높아지고 아랍인들의 흔적이 짙어질수록 점점 좁아지더니, 이제는 남자 두명이 겨우 어깨를 붙이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해졌다. 골목에는 들고양이만 그득했다. 무슬림들의 구릿빛 피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언뜻 언뜻 창문 사이로 그들의 눈빛이 보였다. 자신들은 아무런 가시도 없는 무고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듯한 그 눈이 막내를 불편하게 했다. 국회에 고체폭탄을 굴리고, 시나고그(유대회당)에 돌을 던질 때 그들의 시선은 시뻘건 적의로 가득했었다.

소대장은 해가 거의 다 저물 무렵이 되어서야 오늘의 임무를 설명해 주었다. 시청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건물을 증축한 한 아랍인 유지의 숙박시설을 정리하는 것이 그날 밤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소대장은 세계적 성지인 올리브산(이곳에서 예수는 유다의 배신을 받았다.)의 미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 했다. 하지만 모두가 문제는 구닥다리 건물이 아닌, 이브라힘이라 불리는 그 건물의 주인 남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막내는 예루살렘의 구시가지에서 나고 자랐는데, 언젠가 이브라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공짜로 여행객들을 대접해 주는 호감 가는 겉모습 이면에는 가자지구를 장악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에 군자금을 대어 주는 베두인족 족장의 음흉한 미소가 숨어 있다고 했다. 올리브산을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아랍인 사천 가구 중 절반 가까이가 그의 식솔들이라는 풍문도 돌았다.

막내는 소대장에게 이 이야기를 할까 하다 관두기로 했다. 소대장은 신뢰할 만한 남자였다. 그의 등은 살짝 굽었고, 두 다리는 군용 부츠를 일정한 리듬에 맞추어 구르기에도 버거울 만큼 약해졌지만, 그만큼의 연륜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소대장이라면 이미 이브라힘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설사 모르고 있다 해도 그가 묻지 않는다면,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일 터였다. 막내는 잡생각을 떨쳐내려 차가운 밤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소대장은 뒤에 서 있는 신참의 발자국 소리가 다시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럴수록 그는 마음이 무거워졌는데, 오늘 밤 그들이 할 일이 신참의 첫 임무로는 적절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주택가와, 두려움을 표하는 적들은, 무슬림들의 맹목적인 지하드(성전)보다 무서웠다. 젊은 녀석들에게는 아직 윤리 교과서에서 배운 빛나는 진리들 앞에서 음지로 한 발짝 물러설 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현혹되어 자신을 내던져 버릴 위험이 있었다. 젊은이들의 마음은 너무도 순수해서 상대방의 사소한 불행을 자신들이 품고 있는 처참하고 역사 깊은 비극으로 덮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역시 예전에는 그랬었다. 베들레헴에 있었던 극장을 공격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극장의 주인은 아랍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를 둔 중년 남자였는데, 자신을 이스라엘 평화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런 오만함이 그에게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한복판에 극장을 세우고, 그곳에서 유대 역사를 풍자하는 연극을 공연하게 하였을 것이다. 한 신문기자가 그 사실을 일간지에 폭로했고, 여론은 단숨에 들끓었다. 극장 폐쇄 명령이 떨어진 건 기사가 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갓 특공대에 입대했던 그는 떨리는 손으로 기관총을 바투 잡고는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했던 저항은 없었다. 마침 무대에서는 연극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열댓명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객석 군데군데에 앉아 있었고, 그는 한명 한명에게 다가가 안대를 씌웠다. 그리고 무대 위로 올라가 배우 한명 한명의 손에도 수갑을 채웠다. 그때의 그 모멸감이란. 그는 단번에 고귀한 이스라엘 경찰 특공대의 대원에서 공연을 망치는 불한당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었다. 그때의 자괴감을 벗어던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던가!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테러범이 장악한 버스에 침입하기 전, 또는 헤브론 시내 한복판에서 사활을 건 방어전을 치르기 전, 그는 대원들에게 ‘야드바쉠’을 생각하라고 주문하고는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대원들에게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는 차라리 이브라힘이 요르단 갱들을 고용해 냄새나는 수비진을 꾸며놓았기를 바랐다.

아홉시 무렵, 이슬람 사원의 기도 사이렌이 잦아들 즈음 그들은 게스트 하우스의 대문 앞에 다다랐다. 소대장은 곤봉으로 양철 문을 힘껏 내리쳤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주위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골목 전체가 곪은 상처처럼 부르르 떨렸다.

8. 밖에서 경찰들의 군화 소리와 정체불명의 파열음이 들려왔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브라힘이 게스트 하우스를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오늘밤 경찰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거라는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나와 K는 양손으로 양탄자를 움켜쥐었다. 반사적으로 대혼란 - 누군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브라힘에게 고함을 치고, 그의 무책임함을 비난하고, 서로에게 각국 영사관의 단축번호를 묻고, 경찰에 전화를 걸고, 울음을 터뜨리고, 당장 짐을 싸겠다고 호들갑을 떨고, 창밖을 내다보고, 주먹을 불끈 쥐고, 욕설이 오가고, 돈을 챙기고,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에 ‘Help!’ 혹은 ‘Je-rusalem Ibrahim mother fucker’라는 글귀를 남기고, 열쇠를 찾기 위해 꼬마 이브라힘의 몸을 뒤지는 - 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놀랄 만치 평온했다. 집 안은 이브라힘이 경찰 이야기를 꺼내기 전과 같이 고요했다. 간혹 들리는 작은 잔웃음도 여전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브라힘의 단언을 모두가 믿는 듯했다. 실내가 어두워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누구도 끔찍하게 미간을 일그러뜨리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을 쉬이 알 수 있었다. 료타는 메고 있던 작은 크로스 백에서 노란 비닐로 포장된 초코바를 꺼내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흰 티셔츠를 입은 여자 몇명은 아예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이브라힘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복판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각자 벽으로 흩어져 구석에 등을 기대고는 편한 자세를 잡았다. 미국인들은 하이힐을 벗었다. K가 말했다.

“맙소사. 우리는 야만인이었어.”

이브라힘은 그대로 전구 밑에 서 있었다. 간간이 사람들이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있음 되죠? 내일쯤은 밖에 나갈 수 있겠죠? 먹을 건 있나요? 담배 피워도 되죠? 이런 적이 처음인가요? 게스트 하우스는 언제 열었죠?….

나는 나 역시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집주인의 차분함 때문일까? 모든 여행자들이 태연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 나의 군중심리를 자극한 탓일까? 아니면 그동안의 여행이 내 마음속에서 현실감각과 함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지워버린 것일까? 내가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쪽이건 나쁜 방향으로 일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심지어 살짝 졸음이 밀려오기까지 했다.
문을 열고 꼬마 이브라힘이 3층 안으로 들어왔다.

“왔어요, 할아버지.”

딱딱한 무언가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제 어쩔 생각이죠? 우리가 좀 도와드려요?”

어둠 속에서 누군가 물었다.

“고맙지만 괜찮아. 너희들은 그냥 여기에 얌전히 있어주는 편이 나아. 사실, 도와줄 것도 없어. 싸울 게 아니니깐! 그런 건 나랑 별로 맞지 않아…. 다만 축하해 줄 거라네. 이틀 뒤면 ‘푸림절’ 아닌가? 이브라힘아. 1분에 한발씩 쏘도록 해라. 이런 게 바로 피스메이커 다운 거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죽 소리가 들렸다. 대번에 하늘이 밝아졌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풍겨오는가 싶더니 방 안으로 보랏빛 광선이 은은하게 쏟아져 들어와 시멘트벽을 적셨다. 불꽃은 허공에 오래 남을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괜찮은데?’ ‘나쁘지 않아.’ ‘저건 내가 산 거야. 아니, 내가 샀어.’ ‘포장지에 보라색이라고 적혀 있더니.’ ‘한 발밖에 안 나오는 거야? 시시하군.’ 모두가 감상을 늘어놓았다.
성게 모양으로 빛나는 불꽃이 한 발 더 창가로 올라오더니 째지는 소리를 내며 자취를 감췄다. 또 한번 3층 전체가 웅성거렸다.

하나둘씩 하늘로 솟구치는 불꽃이 희미한 보름달을 대신할수록 게스트 하우스도 덩달아 밝고 소란스러워졌다. 모두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불꽃을 구경했다. 한 방울의 물감이 밤하늘을 적시고, 하나의 파열음이 심지 타는 냄새와 뒤섞여 피어오를 때마다 우리는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1층에서는 꼬마 이브라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펑. 이건 좀 별로다. 펑, 너무 전형적이야. 펑, 누구 이집트 관광비자 받는 방법 아는 사람 없어요? 펑, 사막의 밤하늘만 한 것이 없죠. 펑, 나도 그 사람 만났어요. 알약을 순서대로 먹던 게 신기해서 기억나요. 펑, 펑. 이건 내꺼야. 권총이 그려져 있었다고….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경찰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이브라힘을 바라보았다. 두 다리에 철심을 박아놓은 듯 이브라힘은 처음 자리를 잡았던 바로 그 위치에 그대로 서서 폭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그의 눈썹이 까딱거렸다. 기름과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 밑으로 희미한 미소가 엿보였다.

나는 무릎을 괴고 앉아 이브라힘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예루살렘의 성지 순례자들에게 손으로 직접 짠 오렌지 주스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을 그의 어린 시절을 상상했다. 영문도 모른 채 국적이 뒤바뀌어 버렸을 청년 이브라힘의 잊지 못할 어느 하루를 떠올렸다. 전쟁으로 첫 아들을 잃었을 때의 아픔을 짐작해보았다. 이브라힘은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돈은 있어. 하지만 여권이 없지. 나라가 없으니깐.”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수십번은 폭격으로 무너져 내렸을 집을 쌓아 올리고, ‘피스메이커 이브라힘 게스트 하우스’라는 문패를 달 때의, 그 썩은 살을 도려낼 때 같은 아픔과 시원함이 뒤섞인 회한을, 나는 감히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오늘, 그들이 그를 향해 뿜었을 불꽃을 이브라힘은 넉살 좋게 하늘로 쏘아 올렸다. 손자의 웃음소리와 함께.

꼬마 이브라힘이 종이와 펜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주저 없이 그 종이에 내 이름을 쓰고 K에게 넘겼다. K 역시 서명을 하고 옆에 앉아 있던 아드리아나에게 펜과 종이를 건넸다. 그렇게 모두가 노란색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아무도 그게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종이가 경찰들을 물러가게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9. 소대장의 시선은 한 아랍인 꼬마가 손에 들려준 노란색 종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의 두 눈은 거대한 홀의 검은 벽에 장식된 수십만개의 이름들을 보고 있었다. 1993년, 새로 문을 연 ‘야드바쉠’을 딸아이의 손을 잡고 견학 갔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딸아이의 일곱번째 생일날이었다. 그는 히브리어가 아직 미숙한 딸을 위해 박물관 앞에 양각으로 장식된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주었다. ‘야드바쉠 -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

“왜 이름이 야드바쉠이야?”

딸의 질문에 그는 미소를 보내며 박물관을 끝까지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가 처음 ‘야드바쉠’을 견학한 것은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는데, 아직까지도 그는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했다. 그가 경찰특공대에 자원한 것도 박물관의 반향이 가슴 깊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언제나 ‘야드바쉠’은 그의 정신을 지탱해 주는 하나의 고리로 남아 있었다. 반면 딸아이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별 감흥을 받지 못하는 듯했다. 11인치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눈물 맺힌 고발과,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밀실, 총살형을 앞두고 유대인 선조들이 벗어두었던 신발 꾸러미들이 자신의 딸에게는 그저 나니아 연대기의 벽장 안 세계와도 같은 먼 나라 이야기라는 사실에 그는 다소 놀랐다.

박물관의 끝 부분에는 거대한 원통형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검은색 가죽으로 양장 된 책들이 검은색 플라스틱 책장에 잔뜩 꽂혀 있었다. 수천 권은 족히 되어 보이는 책들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신상명세를 기록해 놓은 일종의 명부였고, 태양광이 어스름하게 들어오는 천장에는 희생자들의 사진들이 붙어 은하수 모양을 이루었다. 소대장에게 애국심이란 바로 그 방 자체를 의미했다. 딸이 바로 그 숭고한 장소에서조차 지겨운 기색을 보이자 그는 약간 애가 탔다.

“이 방 이름이 바로 야드바쉠이란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의미지. 전쟁 때 무고하게 죽어갔던 우리 선조들을 잊지 말자는 의미란다.”

딸아이가 금발을 만지작거리며 ‘흐음’하는 소리를 내더니 되물었다.

“그럼 여기는 다 유대인들만 있는 거야? 유대인 아닌 사람은 없어?”
“그렇고말고. 이 방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유대의 이름을 가진 사람뿐이야. 이런 일을 당한 건 우리 유대인들밖에 없으니깐.”

그렇게 대답하면서 소대장은 어째서인지 기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가 작전을 수행하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묻는 것에 독특한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소대장은 다시 한번 종이를 훑어보았다. 코리아, 브라질, 폴란드, 미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의 이름은 제대로 발음할 수조차 없었다. 하늘에서는 계속 불꽃이 터졌다. 주위의 대원들은 올리브산 하늘을 뒤덮는 빛 무더기들을 보며 어린 시절 보았던 푸림절의 불꽃놀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야드바쉠’이라는 말이 불현듯 소대장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는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무서워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각국 젊은이들의 이름이 적힌 이 ‘철거 취소 탄원서’가 거북한 것인지, 무모한 작전 수행으로 미지의 젊은이들의 이름을 기억 속에 묻어 버릴 것이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한국, 또는 폴란드의 여행자들이 모국으로 돌아가 그들만의 언어로 소대장 자신의 이름과 사랑하는 그의 조국을 힐난할 것이 무서운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그는 더 이상 작전을 진행시키는 것이 무리임을 알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떠안아야 할 부담이 너무 컸다. 뒤로 돌아 올리브산을 내려가며 소대장은 이 일이 외교 문제로 확대될 위험이 있어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노라고 상부에 보고해야겠다고 되뇌었다. 그들이 올리브산을 다 내려갈 때까지도 불꽃놀이는 멈추지 않았다.

10. 나는 이브라힘 곁에 다가가 섰다. 그는 이제 허리를 굽혀 멀어져 가는 경찰들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폭죽은 왜 쏘았는지. 어떤 젊은 시절을 보냈는지. 자식은 모두 몇명이고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당신과 다른 피부색, 눈 색깔, 믿음을 가진 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엉뚱하게도 이런 질문이었다.

“야드바쉠 가 본 적 있나요?”
“오, 물론 가 봤지.”
“어땠죠?”

그가 손사래를 쳤다.

“끔찍하더군. 참혹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어.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싶더라고. 아이 앞에서 엄마를 죽이고, 남편에게 아내의 시신을 용광로에 던져 넣게 하고. 어느 랍비는 ‘움직이면 쏜다’는 협박에 겁에 질린 나머지 간염으로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부축해 주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며 눈물을 펑펑 흘리더군. 겨우 다 보고 나오는데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지더구나. 저들이 왜 이렇게 매정하게 이스라엘을 이루려 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갔어.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런 일을 당하고도 50년 만에 이렇게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니…. 한 가지 재밌는 걸 가르쳐 줄까? 박물관 가 봤어? 혹시 안에 있던 도서관 기억나나?”
“홀로코스트 희생자 명부로 가득 차 있던 방 말인가요?”
“그래. 거기 책장에는 빈칸이 하나도 없어. 정확히 명부 숫자 만큼의 책이 꽂힐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있어. 이유가 뭘까? 나치 학살과 같은 일이 앞으로 절대 없기를 기원하기 위함이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억울하게 살해당하고 터전을 뺏기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더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빈 공간을 없애버린 거지.
하지만 현실을 보라고. 그와 같은 방이 수백, 수천개가 더 있어도 희생자들의 이름을 다 기록할 수 없을 거야. 오히려 더 악화됐지. 이제 유대인들조차도 명부에 이름을 적는 위치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나는 어떻게 대답하여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거세졌다. 꼬마 이브라힘이 친구들을 불러 모은 모양이었다. 무더기로 쌓여 있는 폭죽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언젠가는 아랍인들만의 야드바쉠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이브라힘이 웃었다.

“유대인 야드바쉠에 아랍인들의 이름도 들어가게 될 거야. 그게 나, 피스메이커 이브라힘이 할 일이지.”

꼬마 이브라힘의 그것과 쏙 닮은 미소였다.

“코리아에서는 결코 야드바쉠이 생길 만한 일이 안 벌어지기를 빌어주겠네. 자네들 말로 ‘축복합니다’가 뭔지 가르쳐줘. 그래야 당신네들 신께서 알아먹으실 테니깐.”

나는 그렇게 했다. 불꽃이 눈부셨다. 하늘이 어찌나 밝은지 어느새 새벽이 밝아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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