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려나간 달빛에 대해서

잘려나간 달빛에 대해서
서호준


1. 나는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오드아이 고양이라든지 샴 고양이 외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아는 건 딱히 고양이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들을 본 것도 티비에서였다. 차 아래서 차 아래로 빠르게 이동하는 도둑고양이들을 가끔 봐도, 나는 그들의 종류나 식성이나 수면 패턴에 대해 어떤 생각도 떠올리지 않았다. 내가 지나간 것이 확실해졌을 때, 그들은 또다시 어떤 차의 바퀴 밑으로 천착했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2. 집 근처에는 과일가게가 하나 있다. 과일의 신선함 같은 건 도무지 신경을 쓰지 않는지, 과일들은 그저 사각의 상자 아래서 천천히 썩어가고 있었다. 냉장을 위한 어떤 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그 가게에서 과일을 사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과일가게 주인은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었던 것 같다. 그는 과일을 전시해두고 담배를 피우거나 자리에 앉아 가만히 부채질만을 할 뿐이었다. 가끔은 다른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바둑 같은 걸 두기도 한 것 같다. 이런 분명치 않은 기억들은 그 가게가 단지 집에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탓에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다. 어쨌든 집에 갈 때면, 나는 두리번거리며 걷곤 했다. 과일가게는 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에서 약간 튀어나와 있었고, 나는 별 관심도 없이 가게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어떤 영감도 제공해주지 못했다. 나는 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나 달리는 차에 주목했다. 그것들은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 집 근처에 툭 튀어나온 것이 과일가게라는 것도, 이사한 지 보름이 더 되어서야 알았다. 냉장 시설이 없다는 것도, 언제나 산더미처럼 과일이 쌓여 있는데 사 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곳이 과일가게임을 알게 된 후에야 차츰 알게 되었다.

3. 그런 가게에 간판이 있을 리 없었다. 가게의 2층은 낡은 여관이었다. 그것이 낡았는지 아닌지는 외관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 운 나쁘게 묵었던 어떤 여관을 기억한다. 그 기억에는 먼지가 수북한 선풍기와 두툼한 이불 몇개와 흑백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작은 티비가 들어 있었다. 거기서 이불을 깔고 자고 싶지 않아 투정을 부리다 잠든 기억이 있다. 과일가게의 과일들 역시 어렸을 적에 운 나쁘게 집어먹던 과일들을 상기시켰다. 생기나 선명한 색과는 거리가 먼 과일들. 아무리 물로 헹궈도 깨끗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과일의 껍질들. 툭 튀어나온 과일가게의 과일들은 항상 나쁜 모양이었고, 여름이 되자 빠르게 변색해갔다.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리던 나는, 여름의 초엽에 그 가게에서 사과와 바나나를 몇 알 사왔다. 단지 집과 아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 과일들을, 특별히 맛이 다르지는 않았지만, 신선함과는 거리가 있는 맛이었다. 나는 두 알 이상을 먹지 못하고, 과일이 완전히 썩기 전에 음식물쓰레기봉지에 쑤셔 넣었다. 다음날 그 가게를 꼼꼼하게 들여다보았을 때, 상자 구석에 있던 과일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썩어 있었다. 노인은 연신 부채질을 했다. 여름이 익어갈수록 과일들은 썩어갔다. 더 이상 그 가게에서 과일을 사 먹지 않았다. 나는 노인의 부인이나 자식들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4. 집 근처에 있는 과일 가게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노인이 직접 기르는 고양이인 것 같았다. 검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왠지 고급 종일 것 같은 고양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게를 지날 때마다 고양이는 노인과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노인이 장기를 둘 때 고양이는 배를 까뒤집고 뒹굴었다.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건 단지 내가 오랫동안 그 가게 옆을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가게를 지나면 바로 집이었고, 집에 들어서면 썩은 과일과 노인과 고양이 따위는 쉽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것들은 늘 같은 자세로 있었으므로, 다시 과일 가게를 지나면 보지 않아도 그런 것들을 떠올리곤 했던 것이다.

5. 감기가 끝나고, 모든 여름이 그러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에 비는 가볍게 오는 법이 없었다. 항상 그들은 어떤 적의를 품은 듯이, 아주 맹렬하게 쏟아져 내렸다. 감기가 끝났는데도, 나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뉴스에서는 전례 없는 폭우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느 지역이 침수되고, 도로가 유실되고, 사람이 몇명 실종되고. 나는 그런 것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 비는 여름마다 내리는 것이다. 그것은 특별할 게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집에만 있었으므로 비 따위는 맞지 않았다. 비가 오는 동안 나는 줄곧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집에는 항상 먹을 것이 있었고, 나는 밥을 제때 챙겨 먹었다. 그 외에도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잤다. 집에 과일은 없었으므로, 나는 과일을 먹지 않았다. 관심이 없는 시집은 읽지 않았다. 비가 다 그치고 나는 밀린 사람들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 밀린 약속을 해치우려는 사람들로 길이 가득했다. 어느덧 나는 그 과일 가게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6. 집 근처에는 툭 튀어나온 과일 가게가 있다. 그것을 다시 기억한 것은 두고 온 지갑을 가져가기 위해 역에서 집으로 뛰어가던 어느 아침이었다. 과일 가게의 과일들에 검은 천 같은 것이 씌워져 있었다. 그 폭우에도 과일의 양은 그대로인 것 같아 보였다. 지갑을 챙겨 나와도 검은 천들은 그대로 있었다.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만이 권태롭게 배를 뒤집고 또 뒤집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자 몇몇이 고양이에게 다가서도 고양이는 같은 동작만을 반복했다. 여자들은 흥미가 떨어졌는지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마침 신호가 바뀌어 나도 횡단보도를 건넜다.

7. 일상은 일상처럼 이어졌다. 과일 가게의 과일들은 늘 검은 천으로 뒤덮여 있었고, 노인은 늘 없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가게를 지날 때마다 나는 썩은 과일과 권태로운 노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그대로였다. 집을 나설 때 한 번, 그리고 집에 들어올 때 한 번. 나는 집 근처 과일 가게를 지났다. 고양이의 털빛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안 건 장마가 한참 끝난 늦여름의 일이다. 고양이가 과일 가게에 없을 때도 있었다. 모든 것들의 부재는 나를 과일 가게에 좀 더 오래 머무르며 지나가게 하였다. 고양이가 없는 날과 있는 날을 세기 시작하면서 나는 노인과 과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검은 천들에서는 과일의 썩은 내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대형 마트에서 방울토마토나 바나나 같은 것을 사 먹었다. 그러므로 검은 천이 내뿜는 그런 향긋한 썩은 내는 역겨운 호기심을 일으켰다. 혹 기록적인 폭우와 노인이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따위의 것.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노인은 나이가 굉장히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노인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의 고양이는 죽지 않고 색깔이 자꾸만 희미해져 갔다.

8. 그래서, 나는 고양이의 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법 통통한 검고 흰 고양이, 가 옳은 것인지 요즘 보이는 마르고 검고 회색의 고양이, 가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그 고양이의 정확한 색을 알지 못했다. 어떤 얼굴과 어떤 눈을 가졌는지, 귀의 위치는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고양이에 대해 관심을 둬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 이상의 수고는 불필요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노인이 고양이를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노인은 고양이의 이름을 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노인은 고양이를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게 깊숙한 곳에 있는 고양이 먹이통은, 고양이의 이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먹이통을 발견한 것도 과일에 검은 천이 씌워진 한참 이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검고 흰 고양이, 라고 불러야 하나? 그건 너무 긴 이름이니까. 그냥 검은 고양이 정도가 좋겠다. 그러나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다시 한 차례의 감기가 지나갔고, 나는 내가 본 것 이상의 관심을 더는 두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9. 모든 새 학기가 그러하듯, 나는 몇번의 술자리에 나갔다. 그때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귀가했고, 과일 가게 반대편 길로 택시는 이동했다. 택시를 타면 집 앞에서 내렸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날, 운 좋게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역에 내려 나는 집으로 걸어갔다. 나는 툭 튀어나온 검은 과일 가게 앞을 지났다. 거기엔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는 내가 지나가자 빠르게 옆길로 도망쳐 어느 차 밑으로 들어가버렸다. 검은 과일 가게를 지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검은 고양이는 차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와 과일가게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마침 적당히 취해 있던 나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후다닥 귀가해서는 시를 한 편 써냈다. 새 시는 꽤 만족스러웠다. 그 시를 계속 고치고, 마침 접속해 있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의 반응 또한 괜찮았다. 나는 몇몇 신인상의 공모 일정을 뒤적이다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이걸로 등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환희에 젖어 뒤척이다가 잠들었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확인한 것이 새벽 다섯시였다. 다행히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10. 늦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오후 두시였다.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있었다. 전날 쓴 시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길들여진 고양이가 주인의 죽음으로 인해 도둑고양이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내용보다도, 내가 쓴 참신한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전반적으로 아주 흡족스러웠다. 늦은 점심을 차려 먹고, 시집을 좀 읽다가 옛날에 하던 게임 따위를 끼적였다. 저녁 여덟시였다. 늦은 저녁을 차려 먹고, 메신저에 접속한 친구들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등단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정이 넘어도 잠이 오질 않았다. 내일 아침에 약속이 있는데. 불을 끄고 억지로 누워봐도 잠은 오질 않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였다. 나는 바람이라도 좀 쐬면 낫지 않을까 해서 파자마 바람에 집을 나섰다.

거리는 한적했다. 차는 거의 없었다. 빈 차 표시를 한 택시들만이 가끔씩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했다. 사람은 더 없었다. 폐지 줍는 노인만이 리어카를 끌고 천천히 움직였다. 세 시만 되어도 이 거리는 대체로 잠든다. 나도 그제까지는 이 시간에 잠들어 있었으니까. 동네를 좀 돌아다녀 보려다 그냥 집 앞 어느 계단 턱에 앉았다. 새벽 공기가 적당히 시원해서 굳이 걸어 다닐 필요가 없었다. 주차된 차들과 불 꺼진 건물들. 여기에 대해 어떤 시를 써 볼까 궁리하던 내게 검고 튀어나온 과일 가게를 상기시킨 건, 어떤 빠르게 지나가는 생물이었다. 주차된 차 아래로 고개를 숙이자, 노란 불빛 같은 것이 잠깐 보였다 사라졌다. 검은 고양이였다. 떠올랐던 시상이 사라져버렸다. 제기랄. 나는 벌떡 일어나 고양이 탐색에 몰두했다. 마침 검은 고양이는 차 아래에서 어떤 쓰레기봉투 근처로 움직인다.

탁. 나는 들으란 듯이 침을 세게 뱉는다. 탁 소리가 나기 무섭게 고양이가 나를 돌아본다. 녀석이 놀랐는지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빠르게 차 밑으로 뛰어들어간다. 나는 조금 아쉬워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문득 집에 있는 참치 캔을 떠올렸다. 고양이에 식성에 대해 아는 바 없으나, 왠지 고양이는 생선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내 방에 있는 생선은 참치 캔이 전부였으므로, 검은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것도 참치 캔이 전부이리라. 참치 캔을 따와서 준다면, 녀석은 본래의 희고 검은 색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고 흰 색이 고양이에게 더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체 없이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황급히 문을 열고는 찬장에 있던 참치 한 캔을 집어들었다. 참치 캔을 따고 기름을 따라냈다. 기름은 왠지 몸에 안 좋을 것 같으니까. 오래 감지 않은 머리처럼 눅눅한 빛깔의 고양이 역시. 그렇다면 이걸 접시에 담아서 줘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관뒀다. 몇 개 없는 접시를 내주기엔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럼 비닐봉지 같은 데라도 줘야 하나. 더 지체하면 검은 고양이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 그냥 나왔다.

녀석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러고 보니 젓가락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녀석이 없는데도 나는 이걸 어떤 방식으로 줘야 하나 고민했다. 때마침 거리에는 택시도 취객도 폐지 줍는 노인도 없었다. 거리는 내 어느 시보다도 조용했다.

그때, 보인다. 검은 고양이는 멀찌감치 떨어진 어떤 차에서 다른 차로 서서히 걸어가고 있다. 녀석의 뒤를 밟아 나도 서서히 걷는다. 녀석은 카니발 밑으로 들어가더니 사라진다. 인기척을 느낀 모양이다. 나는 카니발 근처에서 냐옹냐옹 소리 낸다. 소리를 멈추자 다시 거리는 고요해진다. 그렇지만 녀석이 이 아래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가지고 온 참치 캔에 손을 넣는다. 기름을 따라냈는데도 축축한 참치가 느껴진다. 녀석이 몹시 좋아하리라. 참치 한 움큼을 퍼서 카니발 옆의 아스팔트 바닥에다 내려놓는다. 녀석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니까 분명히 나올 것이다. 녀석이 나오길 기다린다. 녀석은 생선을 좋아하니까. 분명히 나올 것이다. 나는 서 있다가 쭈그려 앉았다가 다리가 저려 다시 일어선다. 그렇지만 녀석은 오지 않는다.

11. 폐지 줍는 노인. 아까와는 다른 노인. 텅 빈 리어카.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리어카. 그리고 택시. 택시에서 비틀거리며 내리는 어느 청년. 그 눈에 어린 분노 같은 것. 택시는 붕 하고 다시 떠나고 질주한다 길 끝으로. 그리고 검은 고양이. 어떤 검고 흰 고양이. 그래도 종을 알 수 없는 어떤 검고 흰 고양이.

12. 참치 냄새만 맡고 녀석이 달려들 줄 알았는데. 녀석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 카니발 아래 녀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새를 못 참고 녀석은 배고파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카니발 아래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옆에는 썩은 사과 몇 알이 나뒹굴겠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렘수면을 취할 시간인데, 중얼거렸다. 그래도 녀석은 오지 않았다.

문득 허기를 느껴 캔의 참치를 한 움큼 집어 먹는다. 캔 참치의 맛. 천장에 오래오래 있던 캔 참치의 맛. 참치도 캔 참치의 날을 기억할까? 아버지를 따라 참치회를 먹던 날, 나는 참치에 대해 거의 알게 되었다. 참치는 먼바다에서 주로 잡히고, 따라서 참치회를 날것으로 먹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참치는 몸집이 아주 크고 배가 돌아오려면 수 주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치회는 모두 냉동된 참치를 해동한 것이다. 참치회의 맛은, 해동기술에 달려 있다고 아버지가 말씀해 주셨다. 캔 참치와 언 참치. 참치의 생존 방식은 보존이다. 쉽게 썩지 않는 것.

그것은 검은 과일 가게의 방식과는 너무 달랐다. 과일들은 쉽게 썩어갔고 노인은 갑자기 사라졌다. 고양이는 마르고 흐려졌다. 그런 녀석에게 이, 아주 먼 바다의 생선을 줘도 될까? 혹 고양이는 참치 같은 건 먹지 않는 게 아닐까? 아주 가까운 바다에서 잡히는 고등어라든지 꽁치라든지 그런 것만 먹는 것은 아닐까? 어릴 적 본 톰과 제리에서 톰이 물고 있던 생선뼈가 생각났다. 그러나 뼈의 모습만으로는 그것이 어떤 생선인지 알 수 없다. 고양이는 참치를 먹으러 오지 않았다.

기척이 느껴진 건, 내가 포기하고 참치를 잘근잘근 씹고 음미하며 뒤돌아 걸은 얼마 후의 일이다. 작은 발소리 몇개가 들려 뒤를 돌아보는데, 녀석이 참치 쪽으로 다가서는 게 아닌가. 나는 반가워져 다시 카니발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녀석은 다시 빠르게 차 밑으로 뛰어들어간다. 이제 카니발 밑에 녀석이 있는 건 분명하다. 바닥에 놓은 참치가 조금 줄어 있는 듯하다. 착각인가? 알 수 없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나는 다시 카니발과 먼 쪽으로, 그러나 카니발이 보이는 곳으로 걷는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가만히 지켜본다. 마음속으로 초를 헤아려 본다. 하나. 둘. 셋. 넷. 녀석이 서서히 기어나온다. 고개를 바닥에 들이박고 참치를 먹어치운다. 다 먹었는지 녀석은 다시 차 밑으로 들어간다. 다가가보니 참치가 없다. 고양이가 참치를 먹어치운 것이다. <고양이는 참치를 먹는다> - 이것이 내가 최초로 알아낸 고양이의 식성이다.

13. 노인도 검은 고양이에게 참치를 줬을까?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는 이제 알 도리도, 알 필요도 없다. 고양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참치를 먹기 때문이다. 캔엔 아직도 참치가 가득하다. 다시 카니발 근처에 참치를 놔둔다. 이번엔 두세 걸음만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기다린다. 녀석은 차에서 차로 빠르게 움직이지만 한번 들어간 차 아래선 끈질기게 정지해 있다. 하나. 둘. 셋. 넷. 그런 종류의 것이 고양이의 인내심일까. 다섯. 여섯. 일곱. 언제 시동을 걸지 모르는 차 아래서 오래오래 참고 있는 것.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이번엔 아까보다 좀 더 많은 수를 헤아린다. 예순일곱. 예순여덟. 예순아홉.

마침내 녀석이 미야옹 울며 나온다. 처음 들어보는 고양이의 울음. 녀석은 냐옹이 아니라 미야옹 하고 우는구나. 나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알았다. 엄밀히 말하면, 미야옹도 아니다. 그것은 활자화할 수 없는 고양이의 언어다. 녀석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여전히 나를 경계하며 참치가 놓여 있는 아스팔트 바닥 가까이로 간다. 아직 참치를 먹지 않는다. 녀석은 나를 계속 응시한다. 나는 아까부터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응시한다. 우리는 서로를 응시한다.

우리라는 말의 질감이 낯설다. 내 자취방엔 당연하게도 나 혼자 살았다. 가끔 친구가 놀러 왔고, 가끔 엄마가 반찬거리를 가지고 왔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 살았고 우리라는 단어는 쓸 수 없었다. 집에 혼자 있는 날에는 더욱 그랬다. 비가 쏟아지는 동안, 나는 우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검은 과일 가게에 대해서 그러했듯이.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선다. 녀석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선다. 나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선다. 녀석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선다. 이제 녀석의 고개 밑엔 참치가 있다. 여태껏 카니발과 수많은 자동차들 밑에 녀석이 있었듯이. 그래도 녀석은 영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응시한다. 나는 문득 고개를 올려본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달이 떠 있던 걸까?

다시 녀석을 바라본다.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녀석이 먹는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 나는 쭈그려 앉는다. 녀석의 키를 닮아가도록. 녀석이 참치를 먹기 시작한다. 참치 덩어리가 워낙 커서, 고개를 파묻고 몇 번에 걸쳐 먹는다. 마침내 다 먹고 녀석은 미야옹 운다. 검은 고양이가 미야옹 운다. 검고 흰 고양이가 미야옹 운다. 검은 거리의 흰 달빛. 문득 내가 종이에 써내려간 무수한 시들. 분명한 시상이 떠오른다. 그것은 검고 희어서 비로소 모습을 갖추었다. 달이 구름에 가린다면 나는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으리라.

14. 시를 처음 쓴 건, 아주 단순한 계기였다. 교내 야외 백일장에서 학생들은 시를 쓰거나 산문을 써야 했는데, 나는 둘 중에 왠지 시를 쓰고 싶었다. 아는 시라고 해봐야 교과서에 적힌 - 그것도 주로 교과서 앞 페이지에 있는 - 시들 뿐이었지만, 그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쓸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시를 썼고, 어떤 걸 썼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장려상인지 뭔지를 받았고, 오올 하던 친구들의 놀림에 왠지 뿌듯한 감정이 생겨난 게 시 쓰기를 계속한 이유였을까. 시를 쓰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갔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야만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약속과 만남과 술자리는 최소한이었다. 유명 시인들의 시집을 사서 읽었다. 그들처럼 시집을 내고 싶었다. 시를 써서 소소한 대회에 응모하여 잡다한 상과 상금 같은 걸 받기도 했다. 그러자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어졌다. 등단이라는 걸 해보고 싶어졌다. 등단을 해야 시집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더 혼자 있고 싶어졌다. 학교에서 집이 그리 멀지도 않았지만, 나는 장학금을 받겠다는 약속으로 자취를 허락받았다. 공부도 도서관이 아니라 집에서 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건 인터넷에서가 더 잦았다. 대부분 시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름 방학이 되고, 나는 시 창작 교실에 등록했다. 다가오는 유명 문예지의 신인상에 공모할 생각이었다. 나는 매일 한 편의 시를 썼다. 그러나 고양이에 대한 시를 쓴 적은 없다.

15. 녀석은 나를 쳐다보고 한 번 더, 미야옹, 운다. 다시 한 움큼 참치를 집어 내려놓는다. 손은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손이야 집에 가서 비누로 여러 번 씻으면 될 일이다. 중요한 건, 고양이는 참치를 먹는다는 걸 넘어 참치를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고양이와 오래 눈을 마주쳐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는 것도. 배부르게 먹은 후에는 미야옹, 운다는 것도. 나는 고양이에 대해 점점 많이 알아간다. 녀석에게서 생명으로의 경외감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이것을 소재로 시를 쓰면 며칠 전의 그 시보다 더 훌륭할 것 같다. 시상이 분명하게 떠올라 있다. 이제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얼른 마저 주고 집에 돌아가 손을 씻고 시를 써야지. 이번 한 움큼은 아주 크다. 녀석이 쩝쩝거리며 계속 먹는다. 문득, 녀석의 희미해진 흰색이 점점 분명해진다. 그렇다. 녀석은 검고 흰 고양이다. 녀석의 종과 이름을 알 필요가 더는 없는 것이다.

또 한 번 미야옹, 운다. 녀석을 집에 데려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면 녀석은 노인과 그랬던 것처럼 늘 같은 자세로 앉아 있겠지. 심심하면 배를 까뒤집고 뒹굴거나, 어쨌든 나는 참치 캔만 있다면. 아니, 녀석을 위해 언 참치를 사서 조금씩 해동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해동의 기술인지 뭐시긴지는 인터넷을 뒤져보면 나오겠지. 녀석에 대해 좋은 시를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 고양이 연작 시인, 과 같은 타이틀은 어떠려나. 썩 나쁘지는 않다. 이걸로 나는 곧 등단이다. 곧.

이야옹. 녀석의 것보다 둔탁한 소리. 뒤를 돌아보니 갈색 고양이가 한 마리 서 있다.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내가 보기에 녀석은 한 번도 길러진 적 없는 도둑고양이다. 잘려나간 듯 뭉툭한 꼬리가 녀석이 고양이 사회에서 가진 지위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이야옹. 녀석이 다시 소리를 낸다. 검고 흰 고양이가 뒷걸음질친다. 검고 흰 고양이는 이내 카니발 밑으로 숨어든다. 참치는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고 나는 아직 녀석을 집에 데려가지 못했다. 이 자식. 갈색 고양이 쪽으로 길게 침을 뱉는다. 탁. 갈색 고양이가 그릉거리더니 재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아무리 카니발 앞에 쭈그려 앉아 기다려도 검고 흰 녀석은 오지 않는다. 아흔다섯. 아흔여섯. 구름이다. 백열하나. 백열둘. 구름이 달을 가린다. 백쉰둘. 백쉰셋. 녀석은, 녀석은 오지를 않는다. 백아흔여덟······

16. 참치 캔에 남은 참치를 전부 검고 튀어나온 과일가게의 고양이 먹이통에 넣었다. 손톱으로 싹싹 긁어서. 어떤 녀석이 먹을지는 알 수 없다. 고양이의 색은 사람의 피부색보다 다양하다. 고양이의 울음소리 역시.

고양이 종은 그것보다 더 많고 나는 그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17. 어느 것이 구름이고 어느 것이 달일까. 밤마다 달빛은 왜 있을까. 왜 둘은 서로를 가릴까.

알 수 없다, 는 말은 알 수 없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체로 많은 것들에 대하여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만, 느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알 수 없는 것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18. 자취방에서 나는 여자친구와 산다. 당연하게도, 고양이 같은 건 기른 적 없다. 그건 너무 털이 많고 지저분하니까. 여자친구의 몸은 매끄럽고 항상 샴푸 냄새가 난다. 내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자, 여자친구는 신선하고 발간 과일들을 갈아주었다. 우리는 매일 새벽 세시가 넘어서야 잠든다.

전에 흡족했던 그 시로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어쩌면 내년 겨울쯤엔 시집이 나올지도 모른다.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나를 칭찬한다. 문단의 앙팡테리블이라고 이미 여러 번 인터뷰가 실렸다. 문인들의 모임에 자주 나갔고, 선배들은 내 시를 좋아한다. 집 근처에는 툭 튀어나온 편의점이 하나 들어서 있다. 나는 그곳에서 술이나 콘돔이나 담배를 사곤 한다. 몰랐는데, 편의점 알바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내게 아직도 시를 쓰느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 대신 카드를 내밀며 웃었다. 이번에는 이런 우연에 대해서 시를 하나 써 볼 생각이다. 그리고 청탁이 들어온 곳 중 가장 명망이 높은 곳에다가 낼 생각이다. 새벽 세시다. 당연하게도 나는 고양이 시 같은 건 써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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