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회 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평

장편소설도 그렇지만 단편소설의 난제는 도대체 문장이나 어휘를 낭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단편소설은 어딘가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전달하는 것인가? 맞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한 한 완벽하게 잘 짜인 구성과 아름답고 세련된 문장, 꼭 맞는 어휘들을 거느려야 한다.

이런 기준을 세워 놓고 보면 당선작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그 하나가 강병준씨의 「이름을 기억한다」였다. 세계 시민적 자질을 엿보인 작가의식도 훌륭하다면 훌륭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문제라는 거창하고 낯선 소재를 오차 없이 끌어간 솜씨, 시점 변주며 문장이나 어휘 선택의 정확성을 고평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최유정씨의 「여신과 같은 그녀」. 이 작품을 쓴 작가는 현재적인 문제를 가까운 미래 속에서 보여주려는 의도를 보여줬고, 자디잔 에피소드 속에서 당대의 삶에 스며든 병적인 징후를 포착하려 했다. 휴대폰과 아이돌 그룹이라는 소재는 현저히 유행적이지만 유행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서호준씨의 「잘려나간 달빛에 대해서」가 있다. 이 작품은 작중 화자인 ‘나’와 고양이가 만났다는 작은 사건을 밀도 있게 처리한 것이다. 별다른 사건이라 할 수 없는데도 작가는 이 사건의 전개 속에 시를 쓰는 화자 주인공의 내면 심리며 글쓰기에 관한 사유를 솜씨 있게 착색해 놓았다.

이 세 작품 가운데 단연 수작은 「이름을 기억한다」였다. 이 작품을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세상을 보는 눈이 넓고도 투명하다. 타자의 삶에 관한 관심이 깨끗한 구성과 문체 속에 정확히 표현돼 있다.

또 최유정씨의 「여신과 같은 그녀」를 우수작으로, 서호준씨의 「잘려나간 달빛에 대해서」를 가작으로 선정했다. 이 두 작품의 질적 차이는 결코 크지 않다. 무엇보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역시 세상을 상대해야 한다.

이번 공모에 작품을 낸 분들 가운데 서행씨의 「이빨」은 독특한 기법으로 현실 문제를 처리해 나간 시각과 솜씨가 돋보인다. 이런 재기가 없는 좋은 작가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둘러 썼다. 또한 문장과 어휘를 벼리는데 더 많은 공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상, 우수작, 가작을 낸 분들에게 축하를 드리며 더욱 정진해 주실 것을 믿는다. 안타깝게 이 반열에 들지 못한 분들 역시 실망하지 말고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

방민호 교수 국어국문학과 임홍배 교수 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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