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회 대학문학상 희곡·시나리오 부문 심사평

보통 학생들에게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써 보라고 하면 자취방, 고시원, 공원 등을 배경으로 남녀 학생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익숙한 공간에 익숙한 이야기를 상상하기 마련인 것이다. 이번 시나리오 응모작 「불안」 역시 이런 류의 작품으로 변호사로 성공한 남자가 궁핍한 대학 시절의 연애를 회상하는 게 서사의 기본 구도다.

그런데 장편영화에 비해 단편영화는 좀 더 기발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에 의존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짧은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선 아무래도 익숙한 공간의 익숙한 이야기는 그만큼 불리하다. 남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지만 우리 삶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진실의 순간을 포착해 관객들의 흥미와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익숙한 공간의 익숙한 이야기로도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려면 치밀한 이야기 전개로 개연성을 확보하거나 세밀한 감정의 파장을 잡아내야 하는데 「불안」은 서사의 논리적 비약이 다소 거슬렸다.

좋은 시나리오가 갖춰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덕목은 톤의 일관성이다. 서정적인 톤으로 가든, 활기와 재담이 넘치는 톤으로 가든, 아니면 초현실주의적인 몽환적 톤으로 가든 일관성이 확보돼야 관객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불안」은 처음엔 서정적인 톤으로 시작하는 듯하더니 인물들의 튀는 말투와 행동이 서정성을 방해했고, 마지막엔 호러 영화의 분위기로 끝남으로써 도대체 어떤 느낌의 영화가 만들어질지 머리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다만 응모자는 예전에 시나리오를 써 단편영화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듯 영화촬영과 편집의 기술적인 면을 세심하게 고려했다. 적어도 형식적인 면에서는 잘 짜인 시나리오라고 평가할 만하다. 영화 매체에 대한 이해가 갖춰진 만큼 잘 만들어진 단편영화들을 두루 참조해 더 많은 습작과정을 거친다면 상상력 넘치는 탄탄한 구조의 작품을 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더욱 정진할 것을 기대한다.

임호준 교수 서어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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