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임피 지음ㅣ 박병철 옮김ㅣ 시공사ㅣ 416쪽ㅣ 1만 8천원
맬컴 볼 엮음ㅣ이운경 옮김ㅣ 문학과지성사ㅣ 426쪽ㅣ 2만원 
2012년 종말론으로 세간이 시끌벅적하다. 언제, 무엇 때문에 종말이 닥칠지에 대한 예언 일색이다. 난무하는 종말 예언서들 속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종말’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담은 두 책 『종말론』과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가 출간돼 눈길을 끈다.

영미권 교수들의 논문 모음집인 『종말론』은 종말론의 역사를 개괄한다. 단순히 어떤 종말론이 있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신학, 미학, 철학, 정신분석학을 넘나들며 종말과 관련한 방대한 인문·사회과학적 논의를 담고 있다.

애초에 종말론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종교적 믿음에서 시작됐다. 선이 승리하고 악은 멸망하며 구세주적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역사는 종결된다. 신의 왕국이 도래하기 전엔 반드시 고난이 예정돼 있다. 종말의 폭력과 파괴 뒤엔 항상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이 종말론의 배후에 있었던 것이다.

종말론이 종교적 신념의 한 형태로 등장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정치, 문학, 철학 등 인문·사회과학적 담론 전반에 종말론적 색채가 드러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의 첫머리에서 자신이 ‘어둠의 시기’에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표현했고 핵전략 시대를 목도한 데리다는 논리적 어법을 해체하고 은유적, 비합리적 기호 체계로 ‘최후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재앙, 성적 타락, 신체 절단, 악마주의와 같은 음울한 종말의 이미지가 우리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종말론에는 종말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전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근대 이전 종교적 종말론과 오늘날의 종말론 간 가장 큰 차이는 역사의 ‘목적’ 유무다. 폐허로부터 재생이 올 것이라는 메시아적 희망은 계몽 운동 이후 합리적 비평에 의해 불신받게 된다. 메시아가 사라진 자리를 과학기술에 의한 끝없는 진보로 대체하는 듯 했으나 이 역시 곧 환경오염, 지구온난화로 파국을 맞을 조짐이다. 더불어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역동적 이데올로기의 유토피아 역시 소련 붕괴와 함께 무너진다.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들이 어떤 거대한 역사의 목적(end)을 향하고 있다는 서사가 무너지자 인류는 정말로 역사에 끝(end)이 온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종말론』의 저자들이 인류의 역사에 스며든 종말론의 모습을 통해 시대의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키워드로서 ‘종말론’을 제시하고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의 저자 크리스 임피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인류와 우주가 맞이할 ‘종말’의 장면을 스케치하고자 한다.

저자의 시도는 종말의 모습에 대한 명확한 물음을 원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키기엔 온전치 않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저자는 과학자들이 내놓은 여러 가설들을 검토할 뿐 결코 특정한 형태의 종말을 ‘예언’하거나 단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는 저자의 문제라기보단 귀납적 추론을 이용하는 과학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검증된 데이터들로 현상을 설명할 뿐인 과학적 가설의 속성상 아직까지 우주의 미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가능성만 제시돼 있다.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거나 언젠가 중력이 팽창을 극복하고 영원히 수축하거나 팽창과 수축을 반복할 수 있다. 그 중에 저자는 팽창하는 우주의 한 장면을 제시한다. 점점 커지면서 주변 행성들을 집어 삼키던 태양은 110억년 뒤 더이상 핵융합을 하지 못하고 검은 잔해만 남게 된다. 태양과 같은 별의 잔해는 새로운 별을 탄생시키는 재료가 되지만 10조년이 지나면 이 사이클은 멈추게 된다. 더 이상 별이 빛나지 않게 된 우주에는 블랙홀이 점차 성장하는데 10100년 후엔 블랙홀마저 증발해 버린다. 관측할 수 있는 모든 물질이 붕괴된 뒤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등이 남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남는 상태도 종말인가? 과학의 언어로 종말을 묘사하려는 저자는 무엇보다 일상까지 깊게 배어있는 ‘종말’의 개념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되묻게 만든다.

기상이변, 생태·환경문제, 전 지구적 경제 침체나 정치적 난맥 등 끊임없이 위기를 경고하며 ‘종말이 언제 올 것인지’를 다루는 많은 메시지들은 ‘종말 자체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놓치게 한다. 언제 종말이 올지 불안해하거나 종말론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치부하기 전에 세상의 ‘끝’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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