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비공개·학생에게 불리한 인사구성 등 파행 운영되는 등심위
세부 운영 과정에 대한 법률 정비와 의결권 부여 필요하다는 지적 제기돼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를 둘러싼 각 대학의 갈등이 여전하다. 지난 1월 28일 시행령이 개정됐음에도 정부의 등심위 설치 의무화가 유명무실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건국대·이화여대·한양대 등 등심위를 꾸린 대부분의 대학에서 등심위를 둘러싸고 학교와 학생 간에 마찰이 빚어진 탓이다.

개정된 시행령에서는 등심위가 등록금 산정 자료의 제출을 요청할 시 학교의 장이 지체 없이 등심위에 자료를 제출토록 하는 등 규정이 세부화됐다. 등록금 협의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고 등록금 부담을 경감한다는 등심위의 도입취지를 공고히 함으로써 개정 이후 등심위 운영은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실제로 각 대학 등심위는 학생 참여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채 여전히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학생이 등심위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은 상당 부분이 대학과 학생 간 정보력 격차에 따른 것이다. 동국대와 고려대는 대학이 회계 자료에 대한 전권을 쥐고 등심위 기간이 아니면 학생들에게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등심위 기간에 학생측이 자료를 요청해도 ‘대외비’라는 명목으로 공개하지 않거나 공개하더라도 등심위 자리에서의 열람만 가능케 했다. 동국대 최장훈 총학생회장은 “자료를 요청하면 묵묵부답이다가 등심위 기간에 급하게 자료를 배부했다”며 “그나마 제출된 자료도 대학교육연구소의 감사 결과 회계자료가 엉터리로 만들어졌음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박종찬 총학생회장 역시 “전문적 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등심위가 열리는 짧은 시간에 모호한 자료를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학이 등심위 인사 구성을 주도해 수가 적은 학생위원이 협상이나 표결에서 불리해지는 상황도 비일비재했다. 동국대의 경우 본부인사 4명, 학생위원 3명, 본부측 전문가 2명으로 학생위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본부 인사로 채워졌다. 고려대에서는 대학측이 학생이 선정한 외부감사를 위원회에 포함시키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박종찬씨는 “학교측에서 학교 추천 전문가는 위원회에 포함시켰지만 학생 추천 전문가는 구성에서 배제했다”며 “학생들이 회계 전문가가 아닌데 학교가 전문가를 선임하지 말라고 하니 위원 구성에서부터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덕여대 역시 학생 추천 전문가 1인을 위원회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했지만 학교측은 이를 무시하고 지난달 17일 학교측의 입장이 담긴 등심위 구성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으며 연세대도 학교측 전문가 1명만을 등심위에 포함시킨 바 있다.

이처럼 등심위가 등록금 산정에 학생 의견을 반영한다는 본래 도입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형식적인 기구로 전락하게 된 데에는 관련 법률의 모호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고등교육법은 등심위 설치 의무화 규정과 학생위원을 전체의 10분의 3 이상으로 하는 규정만을 명시하고 있다. 이번에 개정된 시행령 역시 자료제공과 인사구성과 관련해 기초적인 조항을 포함할 뿐 상세한 규정 없이 학칙에 따른 재량에 맡기고 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세부 운영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아 이를 각 대학에 자율적으로 맡겨놓은 셈”이라며 “상세 자료 공개 범위와 회의의 구체적인 일정을 규정하는 등 법률이 보다 견고하게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등심위가 등록금의 적정 수준을 심의하는 기구일 뿐 의결권이 없어 강제성을 갖지 못한 점이 큰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개정된 고등교육법 제 11조 3항은 학교의 설립자·경영자가 등심위의 심의결과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을 뿐, 그 이상의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등심위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등록금 심의 기구로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등심위가 의결권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참여연대 사회경제팀 이선희 간사는 “현재 권고사항에 불과한 시행령을 법제화해 강제 조항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의결권이 부여되면 학교나 학생측에서 행정적 부담을 갖고 등심위 협상 과정에서 보다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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