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학번 신입생이 처음 펴 본 『대학신문』은 지난 1824호였다. 지난호는 1면부터 끝까지 새내기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실었고 ‘여론칼럼’면의 글까지도 새내기에게 들려주는 선배들의 조언들이었으니 과연 새내기 특집호다운 구성이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새내기들의 이목을 끈 기사는 ‘대학원생 성폭행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은 선정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특히 외부 언론에서는 이를 놓치지 않고 ‘서울대’, ‘성폭행’, ‘성기기형’ 등 이 사건의 선정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다루고 있다. 서울대 학생이 된 자부심을 안고 입학한 새내기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할지 선배로서 민망함이 앞선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일련의 성폭행 사건을 통해 ‘권력’과 ‘남성’이라는 가해자의 조건이 여성에게 얼마나 불합리하게 작용하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정반대지만 이 사건을 대하는 많은 독자들은 여러가지 정황상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짐작할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대학원 선후배라는 권력관계와 남성과 여성이라는 조건이 지난 여러 사건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신문』이 이런 ‘짐작’을 바탕으로 기사를 써도 될까.
지난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은 분명한 시비 앞에서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서울대 사건은 양측이 사실을 다르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1심과 2심의 판결이 완전히 뒤집혀 대법원 3심을 기다리는 진실게임이 돼버렸다. 법적 판단이 윤리적 판단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를 판단할 수 없는 현 시점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언론으로서 『대학신문』은 이 사건을 다룰 때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지난 호의  「세상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것 같았다」 기사는 분명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사건 당사자의 심경을 듣고자 하는 의도였다면 사건의 결론이 난 뒤에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옳았고 재판의 진행 상황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감정적 판단을 자제하고 건조한 팩트 중심으로 사건을 풀었어야 했다. 또 기사 전체에서 인터뷰이를 ‘피해자’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피고인을 이미 ‘가해자’로 미리 결론을 내버린 것과 다름없다. 대법원 판결 전에 피고인 신분인 남성에게 『대학신문』이 먼저 나서서 보이지 않는 전자발찌를 채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대학신문』이 학내 대표 언론사로서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부당한 사건을 놓치지 않고 보도한 그 의도만은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 오늘도 본부 행정관 앞에서 단과대연석회의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3심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를 지켜보는 12학번 새내기와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이번 성폭행 사건이 ‘페이로니씨 병’이라는 신체기형을 배우기보다 건전한 성의식을 배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조병휘
체육교육과·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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