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얼마 전 경기조작 혐의를 받고 있던 두명의 프로야구 선수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가담 사실을 시인하고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암암리에 불법 도박 사이트와 거래를 맺고 뒷돈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로써 축구, 배구에 이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프로스포츠인 야구마저 오욕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 구단은 KBO에 이들의 영구제명을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이제 막 1군 무대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이 선수들은 자신들의 창창한 앞날을 송두리째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타 구단에서 이적돼 온 두 선수는 구단의 미래를 책임질 ‘영건’들로 기대를 모은 이들이었고, 트레이드 복 없기로 유명했던 소속구단의 ‘잔혹사’ 역시 이 선수들과 함께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결과적으로 두 선수의 영입은 최악의 트레이드로 귀결되고 말았으며 이들을 응원하던 팬들 역시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두 선수에게 실망감을 느끼는 것이 비단 소속 구단의 팬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순수성 때문이다.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똑같은 규칙에 복종하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물론 프로스포츠의 핵심적인 동인이 돈이라고 하지만 선수의 연봉은 흘린 땀에 비례하는 것이기에 이는 노력의 가치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포츠를 하나의 이상적 모델로 받아들이며 선수들의 성취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이 상징체계가 근저부터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선수들의 고개 숙인 모습이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하는 이유다.

더욱이 요즘 이런 ‘부당거래’가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서 우후죽순처럼 불거지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지난해 말, 삼성·LG전자가 담합을 통해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긴 사실이 보도된 바 있다. 시장에서의 가격이 공급자 간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은 교과서에서도 배우는 상식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기업들이 부당한 이익을 위해 대놓고 상식을 무시했다는 점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내연 관계의 변호사에게 고가의 선물을 받고 사건을 청탁받은 ‘벤츠 여검사 사건’은 또 어떠한가.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의 법정에서 자행된 ‘짜고 치는 고스톱’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휴짓조각으로 만드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우리 사회가 마련해놓은 안전장치로는 이러한 부당거래를 적발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역시 드러났다. 만약 브로커의 우연한 진술이 없었다면 경기 조작을 적발해낼 수 있었을까?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담합 역시 리니언시 제도가 악용되는 과정에서 알려질 수 있었다. ‘벤츠 여검사 사건’ 역시 내부 고발이 있은 뒤에도 몇개월간 검찰 조직 내에서 방치된 사건이었다가, 언론보도 이후 부랴부랴 수사가 진행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평등하다. 잊고 지내던 그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일련의 징후들이 두렵게 느껴진다. 자칫 우리 사회가 목표의식과 동력을 상실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국정 운영의 슬로건으로 내건 ‘공정사회’는 분명 시의적절한 면이 있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불평등을 인정하고 지표가 아닌 피부로 느껴질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최소한의 평등을 위한 기제마저도 지켜내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불신은 커져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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