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확대 적극 추진하며 세계적 탈핵 흐름에 역행하는 한국…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전략 필요해

지난 11일(일)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고로 후쿠시마가 ‘죽음의 도시’가 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탈원전 바람이 불고 있다. 당사국 일본은 원전 54기 중 52기의 가동을 멈췄고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은 ‘탈핵’을 선언하며 2-40년 내로 원전을 완전히 폐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이 문제로 대두되며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에너지대안포럼’ 등의 단체가 속속 결성돼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 정부는 적극적인 원전 확대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16년까지 국내에 원전 6기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고 나아가 원자력 수출에 주력해 한국이 세계 3대 원전 수출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오는 26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2012핵안보정상회의의 부대행사인 ‘2012 서울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Seoul Nuclear Industry Summit)’에서는 원자력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부의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에 환경·시민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대학신문』은 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짚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그래픽: 김태욱 기자 ktw@snu.kr

 

 원전 확대 불가피하다는 정부

정부는 원전 확대를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로 원자력을 대체할 만한 대안이 없다는 점을 든다. 연평균 1.9%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 전력수요를 감안하면 원자력발전만이 이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태양광,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는 기술수준이 낮아 전면 확대가 어렵고 화석 에너지는 오염물질 배출이 많을 뿐더러 자원고갈의 우려가 있어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총 전력생산량 중 원자력발전 비중은 31.4%인데 정부는 여기에 원전 14기를 추가로 건설해 오는 2030년에는 원자력발전 비중을 약 59%까지 올려야 전력 부족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원전을 고수하는 데는 경제성도 한몫을 한다. 다른 자원에 비해 원자력은 발전 비용이 저렴한데다, 축적된 원전 기술을 바탕으로 한 수출 전망도 밝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원자력을 폐기하면 전기료가 40% 올라야 하고 국가적으로 15조의 에너지 비용을 써야 한다”며 원전 유지가 불가피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원자력문화재단이 배포한 홍보자료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1kWh 당 39.07원으로 산정된 원자력의 발전단가는 수력 134.73원, 석유 221.25원, LNG 140.36원, 무연탄 98.67원 등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원자력은 발전원가에서 원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원료인 우라늄의 해외 가격 변동도 거의 없다”며 “싼 값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라고 홍보하고 있다.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정부는 관리·감독을 강화하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 강화 대책의 일환으로 기존 원자력안전국을 원자력안전위원회로 격상시키고 인력을 강화한 바 있다. 또 정부는 3단계의 비상전력 공급책, 피동형 수소제거설비 등 추가적인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50개의 개선대책을 마련해 오는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을 밝혔다. 원자력안전위원회 황윤조 사무관은 “최근에도 울진 1호기 및 고리 2호기에 대한 정기 검사를 실시했다”며 “대규모 지진 발생시 원자로 자동정지 기능의 정합성을 점검하는 등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주장이 근거 없다는 전문가들

그러나 원전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원천적으로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에도 지진규모 8.0까지 안전한 내진설계를 갖췄지만 1천년에 한번 꼴로 일어난다는 규모 9.0의 지진 앞에 완전히 무력했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연구소 김진아 연구원은 “원전은 백만분의 일의 확률이더라도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막대한 피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확률적 안전성이 의미가 없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규모 6.4를 기준으로 내진설계를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지진이 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에너지정의행동 오송이 활동가도 “전문가들은 항상 원전 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난 60년 사이만 해도 체르노빌, 스리마일, 후쿠시마에서 대형 사고만 3건이 발생했다”며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사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원자력이 저렴하다는 정부의 주장 역시 ‘신화’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수만년에 이르는 핵폐기물 처리 기간이나 사고 발생시의 천문학적인 위험비용 등을 고려하면 원전이 저렴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발표된 일본 원자력위원회 소위원회의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사고와 재처리 비용을 고려할 때 원자력발전 비용은 1kWh당 6.7엔으로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 비용(1kWh 당 5.7엔)이나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1kWh 당 6.2엔)보다 오히려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달 유럽감사원의 특별보고서에서는 가동 중단 및 해체를 결정한 동유럽 8기의 원전에 대한 해체 비용이 예상치였던 28억 유로(약 4조 3천억원)의 두배에 가까운 53억 유로(약 8조 1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대부분의 원전은 수명이 4-60년으로 설계되는데 아직 국내 원전에 대한 해체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없어 실제 해체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얼마나 들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정부의 장밋빛 수출 전망과 달리 원전은 이미 사양산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오 활동가는 “원전 시장 확대 전망은 일부 원자력 산업 관계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라며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오히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지난1979년 1년간 233기가 신규 건설됐던 원전은 2008년엔 단 한 기도 건설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2009년 2기, 2010년 5기, 2011년 2기 등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반면 2008년 이후 가동이 중지된 원전은 11기였다. 사고 당사국인 일본은 물론 원전강국인 독일도 원전 완전폐기 시점을 2022년으로 못 박았다. 가장 중요한 신규 원전 유치국이던 중국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계획을 백지화한 바 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략을 세우려면

전문가들은 미래를 위한 에너지정책은 원전 확대보다 수요 관리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대안포럼 홍종호 교수(환경대학원)는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지금까지는 다분히 공급 위주로 돼 있었다”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수요 관리 전략은 미흡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도 “한국은 현재 세계적인 에너지 과소비 국가”라며 “계속해서 확대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패러다임을 넘어 저소비, 효율화를 이뤄야 지속가능한 사회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8,833kWh로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앞서는 독일(6,757kWh), 일본(7,818kWh), 프랑스(7,512kWh), 영국(5,607kWh)에 비해 오히려 높은 수준인데 이를 유럽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전력소비량이 높은 것은 제철, 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업종에 편중된 산업구조의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소비량에서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9%로 OECD평균(31%)보다 높은 것은 물론 일본(29%), 독일(41%) 등 제조업 중심의 국가보다도 높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단기간에 에너지 다소비업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개혁할 수는 없겠지만 에너지 수요관리를 위한 장기 전략을 위해 선진국형 산업구조로의 이행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지속가능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탈원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는 그 성격과 구조가 상이해 원전 확대를 추구할 경우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을 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송이 활동가는 “원자력은 대표적인 중앙집중식 발전으로 소규모 발전 위주인 신·재생에너지와는 전력 생산 및 배급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며 “원전 확대를 선택할 경우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비용은 더욱 증가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신·재생에너지발전을 선도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일찍부터 탈원전을 선택하고 소규모 분산 발전으로 전환한 나라들이다. 홍 교수도 “단기적 시각에서 원전을 확대하기보다는 재생가능에너지의 과감한 확대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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