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필립 카곤 지음ㅣ정주연 옮김ㅣ학고재ㅣ344쪽ㅣ2만 5천원

기사를 쓰려고 인터넷 포털에 ‘나체’로 검색을 했다. 그러자 눈앞에 뜨는 것은 청소년유해매체이므로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는 창이었다. 선명한 빨간색 동그라미 안에 있는 ‘19’라는 숫자가 당혹스러웠다. ‘나체’라는 키워드와 관련한 음란물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나체’라는 말이 금기시되고 있는 현장을 생생히 지켜본 셈이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 박경신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성의 성기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기소 사유가 된 그의 혐의는 ‘음란물 유포’였다. 박 교수를 비롯해 검찰의 기소 철회를 주장하는 이들은 “음란물 판단기준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올린 사진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논쟁이 분분한 이번 사안의 법적 절차가 온당한지를 따지기 전에 일단 먼저 ‘나체’를 떠올려보자.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신체, 어쩌면 ‘인간’을 지칭하는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나체’가 저속하고 음란한 대상으로 규정되는 지금의 상황은 ‘나체’로 태어난 모든 인간을 슬프게 하는 일이 아닐까?

아니, 이렇게 슬픈 사람들은 유독 우리나라에 많은 것일 수도 있겠다. 알몸 오페라, 알몸 뮤지컬처럼 예술 장르를 비롯한 문화적 코드로서의 나체는 이미 유럽 및 영어권 국가에서는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예술계에서 알몸을 이용한 퍼포먼스들이 등장하며 주목받고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박 교수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들은 확실히 한국 사회가 스스로의 신체를 사용한 표현에 경직돼있는 상태임을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출간된 책 『나체의 역사』는 나체가 금기로 속박돼 있었던 날들로부터 점차 해방되는 과정을 그린 ‘나체 해방사’라 해도 무방하다. 시대에 따라 변천한 나체의 상징과 의미를 보여주는 풍부한 시각자료들은 시종일관 이 책에 흥미진진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나체’의 개념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곡점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애초부터 나체가 멸시됐던 것은 아니었다. 신이 알몸이었던 시절, 고대의 ‘나체’는 인간의 원형 내지는 힘과 승리를 뜻하는 성스러움을 상징했다.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인 신들의 모습은 대부분 나체로 조각됐다. 신성한 경기였던 올림픽은 알몸으로 이뤄졌고 여러 종교적 제의를 비롯해 ‘신성’이 필요했던 자리마다 나체는 있었다.

나체에 대한 박해와 멸시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던 시대는 종교라는 엄숙함이 지배하고 있었던 중세였다. 죄악으로서 나체는 쾌락을 의미했다. 쾌락이 억제되고 구속당할수록 나체 역시 억눌렸다. 중세 마녀들은 거의 대부분 나체로 묘사됐다.

사진 제공: 학고재

종교의 구속을 걷어내고 등장한 근대의 나체는 ‘개인’의 발명과 함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개인’의 발명은 신체의 발명이자 해방이었다. 개인의 정체성을 표출할 의사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나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나체는 신성이라는 의미에서 머물지 않고 관습과 주류 체제에 대한 저항의 옷을 덧입게 됐다. 이윽고 정치 영역뿐 아니라 ‘저항 정신’을 공유하는 문화·예술 방면에서도 나체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린피스 기후변화운동을 알리기 위해 600명의 모델이 알몸으로 참여한 스펜서 튜닉의 사진(위 사진)에서는 환경운동 정신을 알리고자 한 정치적 시위의 상징뿐 아니라 전위적인 예술 작품을 보는듯한 신선한 충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자주 오르내린다. 표현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시대다. 각종 SNS의 부상은 스마트폰과 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적 도움이 바탕이 된 사람들의 표현욕 발현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내포했던 ‘나체’는 지금에 이르러 ‘표현의 자유’라는 시대 정신을 성찰하는 바로미터로 자리잡았다. 즉 적어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나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과 의미는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를 용인할 것인가의 첫번째 표징으로 읽힌다.

시위와 운동에서 수단으로 이용되는 나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대상이다. 하지만 나체를 바라보는 사회적 규정과 심의는 어떠한가. 국가가 가진 나체에 대한 상은 지나치게 성적 음란물, 그리고 금기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기준을 마련할 것인가를 합의하려는 시도조차 ‘음란물 유포’의 이름으로 묶어두는 정부의 의지는 표현 욕구가 정점에 이른 지금 ‘민심’과 제대로 속도를 맞추고 있는 것이 맞는가?

『나체의 역사』는 이러한 편견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노골적인 나체 사진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처음에는 당혹감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곧 나체는 단순한 신체적 ‘노출’이 아닌 신체적 ‘표현’임을 깨닫게 해준다. 나체에 대한 규정과 함께 색안경을 벗어던져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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