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 전통에서 현대까지

다음달 21일(토)까지 서울대 미술관 MoA에서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 전통에서 현대까지」가 열린다. 지난해 50주년을 맞이한 한국과 네덜란드의 수교를 기념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마술적 사실주의 회화·조각 작품 70여 점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에서는 네덜란드의 1세대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부터 후배 작가들의 최근 작품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1920년대를 전후해 시작된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17세기 사실주의 화풍을 계승함과 동시에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비정상적이고 과장된 형태감이 도드라진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와 달리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환상적 공간을 탐구하면서도 시각적 사실성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처럼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에는 초현실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색채를 짚어내는 독특한 화풍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현실과 초현실의 이질적 공존은 1세대 마술적 사실주의 화가로 꼽히는 카렐 윌링크의 작품 「르네상스 복장의 소녀」(1945)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소녀의 화려하면서도 빛바랜 드레스와 르네상스식 장신구 등에 나타난 섬세한 표현에서는 실제를 반영한 사실주의 기법의 전형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배경은 작가가 상상으로 그려 넣은 공간으로 실제와 거리가 멀다. 잘 다듬어진 나무와 꽃, 정리된 길과 조각품 등을 보면 현실감이 느껴지나 정원의 앞쪽은 해가 환히 비추고 뒤쪽은 이미 어둠이 내려 낯선 분위기가 풍긴다. 한 화폭 속에 낮과 밤이 동시에 존재하기에 느껴지는 오묘함은 사실적인 표현과 결합돼 관객에게 색다름을 선사한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사회상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작품 활동을 하는 네덜란드의 후세대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르 아이켄달의 「물에 잠긴 지구 II」(1992)에는 차오르는 물과 구조물이 중점적으로 묘사돼 있지만 끝없이 멀어지는 수평선과 곧 비가 올듯 구름 낀 하늘이 더해져 몽환적 느낌을 자아낸다. 여기에는 20세기 후반에 사회적으로 대두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작가의 날선 의식이 담겨 있다. 한편 바렌드 블랑커트의 「최후의 유럽인」(1989/1990)은 현대인의 고독을 보여준다. ‘최후의 유럽인’이라는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도 어두컴컴한 방에서 홀로 생각에 잠긴 한 남자의 생생한 표정은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렇듯 후세대 작가들은 마술적 사실주의의 화풍을 이으면서도 그 이면에 메시지를 담아 전하고자 한다.

오진이 선임학예사는 “현실과 초현실을 한 데 다루는 마술적 사실주의에는 ‘불안한 현실의 단면과 순수에 대한 동경’이 깃들어 있다”며 “네덜란드 미술의 새로운 면모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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