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이는 봄바람을 쐬노라면 어디론가 나들이를 떠나고 싶어진다. 새학기가 시작하면서 이곳저곳 맘껏 발길을 옮겨볼 시간이 부쩍 줄어 아쉽기만할 따름이다. 하지만 멀리 갈 필요없이 학교 가까이의 문화공간만 십분 활용해도 빡빡한 일정 속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학교를 오가며 가볍게 들려볼 만한 문화공간 몇군데를 소개한다.

그곳에는 항상 문화가 있다

관악구에서 유일한 복합문화공간이 대학동에 있다. 학교에서 5516번 버스를 타고 10분만 가면 만나볼 수 있는 ‘관악 문화관’이 바로 그곳. 널찍한 전시실과 대규모 실내 공연장을 갖춰 미술, 음악, 영화 등 각종 예술을 한데 아우르는 ‘관악 문화의 전당’인 셈이다. 야외무대도 마련돼 있어 관악산의 푸른 자연 속에서 다양한 공연을 감상하는 일석이조를 맛볼 수 있다. 오는 16일(금) 오후 7시 30분에 2·3층 공연장에서는 무료 오케스트라 콘서트 ‘마이뮤직 3’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직접 가보는 건 어떨까. <문의: 관악 문화관(887-6890)>

사당역 6번 출구에서 1분 정도 걷다 보면 잘 정돈된 정원에 둘러싸인 고풍스런 붉은 건물을 볼 수 있다.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의 분원인 ‘남서울미술관’. 지난 1905년 대한제국 주재 벨기에 영사관으로 지어져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이 건물은 사적 제254호로 지정될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건물은 20세기 초의 외관이지만 전시 내용은 주로 현대 미술 작품”이라는 김오인 학예사의 말처럼 고전과 현대가 이루는 오묘한 조합으로 눈길을 끈다. 오는 27일부터는 지난해 미술관에서 수집했던 미술작품을 선보이는 「신소장품전 II」가 열린다. 관람비는 무료. <문의: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2124-8938)>

사진제공: 봉산산방


한편 시인의 생생한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화공간도 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이 노년을 보냈던 남현동 ‘봉산산방’은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팔할이 바람」, 「산시」 등 시인의 굵직한 후기 작품이 탄생한 곳이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됐다’는 봉산산방의 뜻처럼 이곳에는 창작활동을 위해 시인이 보낸 인고의 시간이 서려있다. 시인이 마지막으로 마셨던 맥주캔 같은 소소한 생활용품까지 꼼꼼히 전시한 1층을 살펴보고 2층에 복원된 생생한 창작 공간을 둘러보며 미당 서정주의 시 세계에 한발짝 다가가 보자. 사당역 6번 출구에서 5분 거리인 이곳은 사당초등학교 맞은편이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월요일은 휴관이라 하니 참고하길. <문의: 봉산산방(881-4959)>

문화를 품은 자투리 공간
사진 제공: 길상사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한 인헌동 ‘길상사’의 지하 1층 공간은 지난 2008년 ‘문화공간 지대방’이라는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법념스님의 ‘야생화 자수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전시를 이어오고 있는 이곳은 옛 사찰의 건축자재를 그대로 사용해 자연미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또 아기자기한 돌담과 그 주변에 어우러진 꽃과 나무들은 포근한 자연에 안긴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 관람뿐 아니라 전통차, 아포가토, 핸드드립 커피같은 후식도 즐기며 담소를 나눌 수도 있다. 이한결 실장은 “길상사 주변에서는 문화공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종교를 떠나 주민들이 ‘친교와 화합의 장’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만들게 된 공간”이라고 갤러리 조성 취지를 밝혔다. 관악04번 마을버스를 타고 ‘개미유통’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도착한다. <문의: 길상사 지대방(883-7354)>

관악구는 다른 서울 지역에 비해 전시를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 이에 구에서 두 팔을 걷어붙여 구청 한 편을 새단장했다. 2층의 복도 공간을 활용해 탄생한 ‘Gallery 관악’은 사람들이 구청을 오가며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무료 전시공간이다. 작년 10월 개관을 기념해 열린 화석전시회 「자연, 지구에 詩를 쓰다」에는 약 5천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을 만큼 호응이 뜨거웠다. 매년 연 2~3회 정기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전시회가 없을 때는 북카페로 운영돼 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오는 19일(월)부터 5월 30일까지 3인 작가의 ‘빛과 소리’라는 뉴미디어아트전시가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학교를 오가며 들러 보길 바란다. <문의: 관악구청 문화체육과(880-3496)>

음악 마니아는 여기를 모여라


사진 제공: 우드스탁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들러 봐야할 관악의 명소로 락 전문 LP 바 ‘우드스탁’을 손꼽아 볼 만하다. 음악과 평화 추구 정신이 담긴 미국 락 페스티벌 ‘우드스탁’에 착안해 지어진 이름에 걸맞게 이 가게는 온통 ‘음악’으로 꽉 차있다. 손님들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술이 아닌 음악을 먼저 주문한다. 전문 DJ에게 뮤지션의 이름과 곡 제목을 건네주면 DJ가 알아서 척척 LP나 CD, 음악 DVD를 틀어준다. 특히 ‘이곳은 볼륨을 줄이지 않습니다’고 메뉴판에 적힌 문구에서도 최고의 음향 수준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현재 1만 3천여장의 LP와 4천여장의 CD, DVD를 보유중”이라 자랑스레 말하는 임진오 사장은 “사람들이 원하는 락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신림역에서 약 5분 거리인 순대타운 골목에 위치해있다. <문의: 우드스탁(875-7005)>

신림역 6번 출구에서 2분 거리에는 올드 팝 마니아를 위한 통기타 카페 ‘쉘브르’가 있다. 카페로 들어서면 추억의 영화 사진과 다녀간 손님들의 자취로 가득한 벽면부터 눈에띈다. 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4-50대 직장인들. 강진 사장은 “7080세대라면 누구나 명동에서 이종환 DJ가 운영했던 유명 통기타 카페 ‘쉘부르’를 알 것”이라며 “그곳의 추억을 신림동에서 되살려 보고 싶었다”고 카페 운영의 계기를 설명한다. 라이브 가수들과 관객들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 공연 중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신청곡을 받기도 하는 등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이 이 가게의 장점 중 장점이다. 통기타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환영이라고 한다. 최근 다시 불었던 쎄시봉 열풍의 매력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들러 옛세대의 정취를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문의: 쉘브르(874-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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