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핼리넌 지음ㅣ김광수 옮김ㅣ문학동네ㅣ355쪽ㅣ1만 3천 9백원
전방 공격과 수비를 아우르며 그라운드 전체를 장악하는 ‘멀티플레이어’는 비단 축구 용어로 국한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경쟁 체제가 극도로 특화된 오늘날,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멀티태스킹’은 어느덧 유능함의 척도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가이자 의료과실 관련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 조지프 핼리넌은 3월 출간된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에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터무니없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갖가지 황당무계한 실수들로 빼곡하다. 포르노 DVD에서 나오는 소리를 윗집 여자가 살려달라는 비명으로 착각해 무기를 들고 윗집에 올라갔다가 체포당한 남자, 13세 소년에게 반박당한 미국 항공우주국의 계산 실수, 3개월 동안 매달려 찍었으나 치명적인 실수를 잡아내지 못했던 영화 「벤허」 속 7분 등 다양한 실수 사례들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결함을 지적하는 저자의 분석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지나친 자기 과신도 잦은 실수의 원인이다. 저자는 실수를 예방하기 위해서 멀티태스킹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조언 외에도 ‘자기 방식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 ‘주변 사람과 피드백을 주고 받으라’,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라’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이 꽤 원론적이고 당위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실수를 저지르는 유형별로 분류한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평소 실수를 곧잘 하는 독자라면 책에 있는 많은 실수담에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네!’라 읊조리며 재미있는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병철 지음ㅣ김태환 옮김ㅣ문학과지성사ㅣ128쪽ㅣ1만원
최근 유명 피로회복제의 새 광고 문구가 공개됐다. 새로운 카피는 ‘풀려라 4,800만! 풀려라 피로!’. 전 국민의 피로를 위로하겠다는 제약회사의 배려 깊은 야심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문구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우리 사회에 피로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불편한 진실이 놓여 있다. 실제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 근무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 회원국 1위. 게다가 직장인의 87.3%는 극심한 피로와 무력감에 시달리는 탈진 증후군인 번아웃신드롬을 느끼고 있다니, 이쯤 되면 정말 우리 사회는 ‘피로사회’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 만연한 피로는 무엇 때문일까. 한병철 교수(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는 신작 『피로사회』를 통해 그 원인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불러 일으킨 자기 착취에 있다고 밝힌다. 그는 근대에서 현대 사회로의 변화를 금지, 강제 등의 ‘부정’이 근간이 됐던 사회에서 능력, 성과, 자기주도 등의 ‘긍정’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전환으로 풀어낸다. 근대 시기에는 주인과 노예의 계급이 명확히 분리돼 타자에 의한 강제적 착취가 이뤄졌다. 하지만 계급의 분리가 사라지고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한 경쟁의 자유’가 보장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자신의 성과를 통해 자존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로 인해 스스로를 착취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걷잡을 수 없는 피로와 우울함에 빠져본 적이 있다면 한번쯤 스스로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이기 때문에 철저히 묵과되고 있는 오늘날의 착취를 꼬집는 그의 주장에 귀기울여 볼 만하다. 어쩌면 더이상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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