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청춘을 말하다 ②

『대학신문』은 총 4번에 걸쳐 우리 시대의 문장(文場)에서 각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각 세대의 문장(文章)들에게 그들의 청춘을 지탱해줬던 ‘청춘의 문장(文章)’을 물어보는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들여다보는 통로를 마련하는 한편 오늘날의 청춘들의 삶 또한 지탱할 수 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길 바랍니다.

연재 순서
(1) 김혜순 시인
(2) 성석제 소설가
(3) 심보선 시인
(4) 한유주 소설가

소설가. 1986년 『문학사상』 시부문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간행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내 인상의 마지막 4.5초』, 『재미나는 인생』,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적이다』 등이, 장편소설로 『아름다운 날들』, 『도망자 이치도』, 『인간의 힘』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 『즐겁게 춤을 추다가』, 『소풍』, 『유쾌한 발견』 등을 냈다.

젊음을 권한다
이백과 한무제의 시

지난 가을 고향의 단골 막걸리집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늘 앉는 자리에 다른 손님이 와 있어서 조금 더 넓은 방안, 그러니까 가정집을 개조한 그 집의 안방에 해당하는 자리에서 윗목에 앉은 내 눈에 벽에 적힌 한문 글씨가 보였다. ‘매직펜’이라고 이름 붙여졌으나 실상 마법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유성 펜으로 쓰인 그 글자 무리의 맨 위에는 ‘月下獨酌’이라는 제목이 있었다. 필시 이백(李白, 701~762)의 <달 아래 혼자 술 마시며>라는 시려니, 시작은 ‘꽃 핀 자리에 술동이 하나 들고 혼자 마시자니 친구가 없구나(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이고 한 수가 70자요, 총 네 수로 이루어진 음주가다. 시는 ‘밝은 달 향해 잔 들어 올리니 마주 대하는 그림자가 셋을 이루었구나(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로 이어지고 있었으나 내 머릿속 신경세포들은 이미 다른 시를 호출해내고 있었다. 같은 시인의 ‘그대여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내달아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로 시작하는 「장진주(將進酒)」였다. 이백은 시성(詩聖)인 두보보다 한 급 높은 느낌을 주는 시선(詩仙)으로 불리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술이 절대적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지 당사자도 술을 찬양하는 시를 많이 남겼고 그 중에서도 「장진주」가 유명하다.

이백의 시 「장진주」를 좋아한 것은 ‘술을 권하며’라는 노골적인 제목 때문이 아니라 시의 내용이 이십대 청년에게는 다소 낯설게 이미 한 세상을 살아본 사람의 정조를 담고 있되 그래 봐도 별 거 아니더라 하는, 장년층 사나이의 호방함과 다정함이 느껴져서였다. 술자리에서 이 시를 소리 높여 외우는 벗이 있고(그것도 현대 중국어의 성음을 배워 와서 비슷하게 하느라 고생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 우리의 한자 발음이 당나라 때의 그것과 많이 가깝다고 했다) 그 앞에서 막걸리 잔을 높이 들고 있던 눈이 푸른 벗들의 얼굴이 여직 손에 잡힐 듯하다. 시는 ‘그대여, 보지 못하였는가? 고대광실 밝은 거울에 비친 서글픈 백발을, 아침에 푸른 실 같은 검은머리 저녁때 눈빛처럼 희어짐을! 인생에서 뜻을 얻었을 때 모름지기 즐기기를 다할지니’로 이어진다. 무엇을 알았다고 ‘人生得意須盡歡’에서 잔을 비우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던가.

단골집 바람벽의 시와 90도를 이루는 다른 벽에 또 한 수의 시가 있었다. 「월하독작」과 달리 이 시는 급히 쓴 듯 글씨가 희미한 데도 있고 제목도 없었으나 그건 중국 한나라 무제(劉徹, BC 156 ~ AD 87)의 「추풍사(秋風辭)」가 분명했다. 한무제가 만년에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분하(汾河)를 건너는 배 위에서 신하들과 연회를 열었을 때 지은 시이다. 아홉 구(句), 65자이니 그리 길지 않다. ‘가을 바람 일어나고 흰 구름 나는구나 초목은 누렇게 떨어지고 기러기는 남으로 돌아간다’로 시작하여 먼저 가을의 풍물을 묘사하고 나서 난초가 향기롭다느니 미인을 잊을 수 없다는 둥 하며 자신의 생애와 영화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젊은 나의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뿌렸다.

“환락이 극에 달하니 오히려 서글픔이 많아지는구나. 젊은 시절이 얼마나 되느뇨, 늙음을 어이하리(歡樂極兮哀情多 少壯幾時兮柰老何)”

한창 젊던 시절, 어찌 먼 옛날 남의 나라 늙은 황제의 심정을 짐작했다고 머리털이 다 곤두섰던가. 모를 일이다. 다만 이백이든 백거이든 송강 정철이든 그 누구의 문장을 한때 애써 외우고 낭송했다는 것이 그렇게 하기 전의 나와 그후의 나를 분명히 다르게 만들었다는 것은 안다.

「추풍사」를 천천히 음미한 뒤 내가 휴대폰을 꺼내자 맞은편의 벗이 물었다.
“누구한테 전화를 걸려는 건가?”
“지금 이승에 「월하독작」을 외워 쓸 수 있는 사람은 수십 만명도 넘겠지만 「추풍사」를 함께 쓸 수 있는 사람은, 그것도 내 고향의 술집 바람벽에 쓸 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지. 확인해 보려고.”
그날 전화 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며칠 뒤에야 자신이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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