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울’, ‘신경쇠약’을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은 가장 확실하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자살의 이유로 여겨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자살 소식들을 들여다보면 ‘신경쇠약과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우울증과 불안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 왔다’와 같은 문구가 추임새처럼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정신질환이 자살 담론에서 주요한 화소(話素)로 등장한 것은 1910년대부터다. 그 이전 시대에는 자살의 동기도 다르게 유추·표상됐다. 조선의 대표적인 형사판례집이었던 『심리록(審理錄)』에서는 자살한 사람들의 동기로 주로 수치와 분노를 꼽는다. 『심리록(審理錄)』 2권 「양양 이해인의 옥사」편을 보면 1781년 강원도 양양에 살던 평범한 백성 박성제는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쓰고 주리를 트는 형벌을 당한 후 자살했는데 “부끄럽고 분해 스스로 목을 맸다”고 기록돼 있다. 1784년 충청도 청주에서 살던 유여인은 이웃 남자 박만세와 속오군 편입 문제로 심하게 싸우고 난 뒤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목을 매어” 자살했다.

조선시대뿐 아니라 근대로의 이행 초기까지도 자살과 결부되던 가장 흔한 원인은 ‘분노’였고 그래서 자살은 곧 분사(憤死)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896년 6월 27일자 『독립신문』을 보면 인천 항구의 병막(兵幕)지기 김소성의 자살을 “생애가 없는데(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슬프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고 썼다.  ‘분하여 자살했다’는 표상은 『독립신문』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매일신보』도 1909년 역무원 강성근이라는 사람이 아편을 먹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일전에 그의 아내가 도망을 갔는데 분한 마음이 났던지 그랬다”고 썼다.

분사의 코드 또는 분사의 자살 서사는 일제의 근대 권력이 개입하기 시작했던 1910년대 이후부터 차차 ‘정신질환’이라는 새로운 표상으로 대체된다. “신경쇠약에 걸니어 세샹을 비관하야”(『동아일보』, 1921년 7월)라든가 “죽기 전날에 급작이 정신에 착란이 생기어”(『동아일보』, 1925년 6월) 등의 문구가 보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20년대에는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없었기에 ‘신경질환’이라는 용어로 정신질환이 표상됐다.)

자살의 이유가 새로워진 것일까. 아니면 ‘자살 원인’을 생각하고 서사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일까.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의 인구현상』은 “조선의 자살 비율이 내지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것은 … 주로 양자의 사회상태의 도달한 정도의 차이”라며 자살자 수의 증가를 문화 진전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로 간주했다. 자살을 ‘문명’과 결부시키고 조선의 자살률 증가를 ‘근대화’로 해석한 것이다.

바로 이 ‘문명’, ‘도시’와 자살 간의 연결 고리에 정신질환이 있었다. 진보와 근대문명의 외피를 두르는 대가가 인간 신경력의 고갈이고 그 결과로 얻게 된 것이 바로 신경쇠약과 같은 정신질환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작년 팔월 이래로 신경쇠약에 걸니어 세상을 비관하야 자살코저 하얐다”(『동아일보』, 1921년 7월)는 짧은 문장 속에 ‘신경쇠약→ 세상 비관(염세) → 자살’이라는 근대 조선이 표상했던 자살의 전형적인 회로가 드러난다.

자살 보도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문명과 도시가 야기하는, 혹은 문명과 도시만이 누릴 수 있는 질병으로 신경쇠약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식민지 모더니즘 소설로 꼽히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는 도시인의 정신 증상, 불안 및 우울, 필요 이상의 과민함 또는 염세주의 모두를 종합하는 대명사로서 ‘신경쇠약’을 맥락화하고 있다. (“한낮의 거리 위에서 구보는 갑자기 격렬한 두통을 느낀다. 비록 식욕은 왕성하더라도, 잠은 잘 오더라도, 그것은 역시 신경쇠약에 틀림없었다”) 이처럼 자살자라는 정신이상자에 대한 의학적이면서도 생체정치적인 관점은 근대 권력에 의해 점차 조선인들에게 적용돼 갔다.

정신질환은 근대 이후의 자살 담론을 이뤘던 가장 강력한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우울증에 반대한다』의 저자 피터 D. 크레이머는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정신적 결함이나 병리로 치부하는 이러한 정신질환 프레임이 인간의 신체와 생명을 대상화·제어하는 생체권력의 소산이라고 지적한다. 천정환 교수는 “자살 충동을 약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정신의학의 ‘믿음’의 배후엔 근대의 생체통제권력이 일일이 통제될 수 없는 자살이라는 개별자들의 일탈 혹은 저항을 객관적으로 통제 혹은 관리하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가히 죽음까지도 우울증으로 ‘요약’되는 우울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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