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협의회의 소식지를 받았다. 지금 학교는 학칙 제정 작업 중에 있고, 학(원)장 선임에 관한 규정의 초안이 나와 검토 후 대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학교측 초안의 주요 내용은 “각 단과대학(원)에서 자율적으로 학(원)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2인 이상’의 학(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그 결과를 ‘참작하여’ 총장이 교원인사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것이고, 교협이 제출한 대안의 골자는 학(원)장의 선임 방법과 절차를 각 단과대학(원)의 교수회가 정하고 총장은 그 방식에 따라 선정된 후보 중에서 교원인사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학(원)장을 임명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뉘앙스의 차이는 있겠으나 결국 학교측 초안은 임명제의 성격이 강하고 교협측 대안은 직선제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교수협의회가 의견을 제출한 이상 그 결과를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학교측이 마련한 초안의 내용을 보노라면 우려의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우려는 학교 당국이 당초 법인화 추진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학의 자율성 확보’라는 목표에 대해 얼마만큼의 실현 의지를 가진 것일까라는 강한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법인화 준비 및 추진 과정에서 숱한 문제 제기와 다양한 의견 개진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핵심의 하나가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것이었고, 이런 지적의 중심에 총·학장 선출방식과 평의원회의 지위 및 역할 문제가 있었다. 그때마다 학교측에서는 그런 우려를 이해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법인화법이 국회에서 심의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정부안 그대로 날치기 통과된 후에도 미진한 부분은 정관이나, 학칙, 규정 등을 통해서 보완하면 된다고, 또 그럴 수 있다며 법인화 홍보에 열과 성을 다했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떤가?

‘법의 틀 안에서’ 일이 추진된 관계로 총장직선제는 폐지되고, 평의원회는 의사결정권이 없는 심의기구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측에서 마련한 학(원)장 선임 규정의 초안이 임명제를 지향한다는 사실은 실망스럽기에 앞서 가히 놀랍기까지 하다. 변변한 대의기구 하나 없는, 그래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국립법인 서울대학교가 확보할 수 있는, 혹은 확보하고자 하는 자율성은 도대체가 어떤 것일까? 그림이 그려지질 않기 때문이다.

총·학장 직선제는,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오랜 투쟁을 통해 얻어낸 소중한 자산이 아니던가? 대학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의 밑거름이 되고 민주적 대학 운영의 초석이 되는 핵심적인 제도가 아니던가? 그런 만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엇에도 양보할 수 없는,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 최후의 보루가 아니겠는가? 이 제도를 날치기 법안 하나로 쉽게 없애버리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시대착오적 ‘대학 선진화 방안’에 반하는 낡은 제도로 치부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측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터, 이번만큼은 교수협의회가 제시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이를 반영한 학(원)장 선출 규정을 마련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그렇게 선출된 학(원)장을 통해 학내 구성원의 뜻이 모아지고 이들의 소망대로 국립법인 서울대학교가 바람직한 모습을 갖추어 가기를 열렬히 희망한다. 아니 그렇게 되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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