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한 이후 방사능에 오염돼 치료를 받던 6천여명 가운데 6분의 1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생존자들은 우울증, 알코올 중독, 무기력증에 시달렸으며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 후 오염지역에서 살아가던 주민 8백만명 가운데 약 75%가 불안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1년 동안 일본에서도 이재민 가운데 200여명이 자살을 했다. 방사선이 직접적 원인이 돼 죽음에 이른 사람이 소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무서운 수치이다. 게다가 후쿠시마 인근에 살던 여성이 “무덤으로 피난 갑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그들의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감히 짐작케 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도 방사능 오염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그만큼 이들의 절망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청소년들은 심리적으로 불안 증세를 보이고 피난 문제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자포자기한 나머지 도박이나 음주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아예 이 사태를 회피하려는 이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전 사고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방사능에 대한 공포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니 자신도 대응하기를 포기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 과장된 공포가 조장되는 한편으로, 그 공포에 익숙해져서 무덤덤하게 남의 일로 넘기는 듯하다. 후쿠시마에서 나가사키나 부산은 거의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말이다. 지난달 발생한 고리원전 1호기 사고가 조직적으로 은폐됐다는 사실만 봐도 후쿠시마 사태를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새삼 되새겨보게 된다. 방사능 문제는 국적도 없고 정해진 기한도 없다. 그런데도 ‘탈핵’을 선언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 정부는 원전 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원자력 강국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얼마 전 교내순환 셔틀버스를 보니 앞 유리창에 이번 달 26~27일에 핵 안보 정상회의를 한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핵물질이 테러집단에 의해 악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평화적 핵이용 모범국’인 대한민국에 모인다는 것인데, 과연 핵물질을 악용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오직 희망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희망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벤야민의 말이 여러 모로 절실한 요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희망 없는 사람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리라. 어쩌면 후쿠시마의 절망이 원전 신화에 사로잡힌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줄지도 모른다.

안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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