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구럼비바위 발파로 해군기지 건설 강행의지 드러낸 정부… 지역주민 총투표 요구 끝내 묵살해 의견수렴 둘러싸고 여전한 갈등
대양해군 양성의 낭비성 제기와 동북아 긴장 고조 우려 등 기지 입지정당성 논

지난 7일(수) 해군이 제주 구럼비바위를 폭파하며 제주 해군기지 착공의 첫단계를 밟았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반대 입장과의 팽팽한 의견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건설 강행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막무가내로 물리력이 동원되며 해군기지 건설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자 각처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해군기지 추진과정에서 제주도민의 의견수렴이 불충분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2007년 5월 제주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두차례에 걸친 여론조사와 TV토론회를 실시해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여론조사의 대표성을 의심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실시하긴 했으나 그 대상이 제주도 인구의 0.36%인 1,500명에 불과해 50만명인 제주도 인구의 총의를 대표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제주도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국가사업인 만큼 이같이 부실한 의견수렴절차로 진행되서는 안 되며 주민투표를 통해 제주도민의 총의를 모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후보지 입지 선정 과정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강정마을이 있는 대천동, 안덕면, 남원읍이 해군기지 유치를 요청했고 주민 여론조사 결과 대천동의 찬성률이 56%로 가장 높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측 주민들은 여론조사의 대표성을 들며 반발하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법환마을과 대포마을은 대천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포함되지 않았을 뿐더러 행정구역상 용흥마을 역시 강정마을에 포함돼 표본추출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강정마을 유치가 최종 가결된 마을총회에 마을 인구 1,900명 중 87명밖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강정마을의 규약상 51명 이상이 참석하면 총회가 성립하므로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강정마을의 규약은 마을 공동재산 매각이나 그에 준하는 중요사안의 경우 총회 참석인원을 최소 200명 이상으로 규정해 해군기지 유치와 같은 중요한 사안을 51명 정족수로 처리한 것은 마을 규약을 어긴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후 마을 주민들은 자체 투표를 실시해 ‘725명 참가, 94% 반대’라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

한편 제주 해군기지의 입지정당성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까지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며 내세운 이유는 해군력 증강이다. 지금까지는 북한이라는 적을 막기 위해 연안해군에만 집중해 왔지만 미래의 잠정적인 적을 막기 위해서는 ‘대양해군’을 건설하는 작업을 제주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잠정분쟁지역인 이어도까지의 기동시간이 20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되며 각 해역으로의 신속한 증강파병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나라 국제 해양운송의 99%가 지나가는 남방해양수송로에 대한 방어도 진해 해군기지 단독으로 남방 해양보안을 수행하던 이전에 비해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당장의 군사적 위기가 없는 시점에서 목적 없는 해군력 증강은 낭비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남주 소장은 “만약 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는 해양경찰의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예산을 들여 해군을 양성할 이유가 없다”며 “군사적 문제가 아닌 외교적 문제는 궁극적으로 국제사회의 협력과 공조로 해결할 문제”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통한 대양해군 양성 자체가 현재 국가재정에 지나친 무리라고 주장한다. 대양해군 양성은 적게는 수십조에서 많게는 수백조까지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는 장기적 과제이지만 그만큼의 국방비 투자를 감당할 국가예산의 확보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와 같은 지리적 요충지에 군사시설이 들어서는 것 역시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촉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소장은 “한반도가 강대국 간 패권 경쟁에 가장 민감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만큼 주변국과의 외교적, 군사적 마찰을 빚을 수 있다”며 “이는 동북아의 점진적인 군비경쟁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비판이 높아지는 가운데 강정마을 공사현장과 제주도청 앞에서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6일 정부는 제주도민과 시민들의 공사중지 요청을 거부하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제주 해군기지 사업은 현재 17% 진행된 상태며 계획대로라면 오는 2015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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