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달진 소장(김달진미술연구소)

                           사진 : 김은정 기자 jung92814@snu.kr

“껌 상표와 담배갑을 모으던 것이 어느새 박물관이 됐죠”. 10원, 20원을 주고 산 잡지「이달의 화랑」과 「이주의 전시」에서 그림을 조각조각 오려 보관하던 중학생이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개소 10주년을 맞이한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빼곡한 자료들과 동고동락해온 김 소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달진 소장은 미술 자료에 대한 열정을 40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는 고등학생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근대미술 60년展」을 본 후부터 취미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자료 수집에 나섰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근대미술 작가에 관한 자료들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폭넓게 미술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같은 유명작가뿐 아니라 재야 작가들에 대한 정보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미술사 인물들의 자료를 최대한 모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때부터 그는 청계천 등지에서 발품을 팔면서 옛날 신문에 남아있는 미술 관련 기사를 모으고 미술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스크랩해 외웠다. 이처럼 자료 수집에 골몰하다보니 ‘걸어다니는 미술 사전’이라는 별명이 자연스레 붙을 정도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가나문화연구소의 자료실장을 거친 김달진 소장은 지난 2002년 연도·국가·작가별로 체계를 갖춘 미술 자료 관리를 위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그가 그간 모아뒀던 자료를 바탕으로 운영했으나 점차 그 규모를 키워가 현재는 미술간행물과 단행본 1만8천여권을 지닌 곳으로 거듭났다. 이렇게 괄목할만한 확장에는 김 소장의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여러 외부 기증자들의 도움도 컸지만 개소 이후에도 발품을 팔며 경매에 참여해 부지런히 자료를 수집해온 그의 노력이 단연 일등공신이다. 그는 최근  「서화협회회보」를 수집하게 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밝히기도 했다. 이는 민족적 감정을 담은 미술 활동을 펼쳤던 ‘서화협회’에서 1921년과 1922년에 단 두권 출간한 희귀 자료다. 그가 남들보다 앞서 자료 수집의 가치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중요 소장품이다. 김 소장은 “서화협회회보는 근 한 세기의 풍파를 거치며 희귀본이 된 것으로 당시 미술계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소장품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같이 김 소장이 열성적으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단순한 취미 여부를 떠나 이 자료들이 한국 근·현대 미술사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버려지는 미술자료들은 지금은 원석에 불과할지라도 활용하기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특히 지나간 과거 작품이나 미술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을 경우 차곡차곡 보관된 팸플릿이나 옛 기사같은 자료는 그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해줄 수 있다. 즉 발행된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할 자료일지라도 훗날 언젠가는 유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집한 자료를 체계화해 필요시 언제든 열람을 가능하게 해주는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아카이브(자료 보관소)’로서 민간 분야에서 제몫을 다하고 있다. 그간 미술 아카이브는 미술계에서 무관심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이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 관련 아카이브 구축을 약속하는 등 아카이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세간에 퍼지고 있는 추세다. 김 소장은 “이제는 국가에서도 기록을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아카이브 구축에 그치지 말고 국가와 개인 아카이브가 네트워크 형성을 통한 협력 체제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은 거시적인 차원의 일”이라며 “매일 쌓여가는 각종 자료들을 쉽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면 국가에서 디지털 인프라로 아카이브를 보완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국가와 개인 간 협력 속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카이브 공존체제가 구축된다면 자료 검색이 수월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미술 정보에 대한 접근이 훨씬 용이해져 고급 예술 정보라는 인식이 강한 기존 미술 분야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소장의 의견이다. 

아직 온전한 아카이브망이 구축되진 않았지만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지금도 자체적으로 자료에 대한 접근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과 한국미술정보센터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현재 소장한 아날로그 자료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김 소장은 “국가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와중에 우리 연구소는 연구자들과 일반인들이 언제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편의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현재 활동을 설명했다.

“오늘의 자료는 내일의 역사로 남게 된다”며 자그마한 자료일지라도 꼼꼼히 짚으며 고민해보는 김달진 소장. 자료의 생명력은 어떻게 이를 활용하냐에 달려있기에 앞으로 그가 자료와 함께 나아갈 아카이브계의 전망은 밝아보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