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영국 반핵운동과 제주에서의 경험

사진: 신선혜 기자 sunhie4@snu.kr

“강정마을의 투쟁은 제가 그동안 참여해 온 세계적 평화운동의 한 부분입니다. 계속되는 세계의 군사화를 막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난 21일(수) 연세대에서 ‘영국 반핵운동과 제주에서의 경험’을 주제로 엔지 젤터(Angie Zelter·61)의 강연회가 열렸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평화운동가 엔지 젤터는 지난달 24일 제주국제평화회의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했고 이후 강정마을에서 머물며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직접행동을 전개해 왔다. ‘핵안보정상회의대항행동’과 ‘제주해군기지건설저지를위한전국대책회의’의 공동 주최로 열린 이 강연회에서 그는 군사기지의 확대와 군비경쟁 심화를 저지하기 위한 비폭력 시민저항운동을 촉구했다. 영국, 일본 등지에서 온 평화운동가부터 해군기지 문제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까지 강연회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반핵군축운동으로 평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고민을 나눴다.

엔지 젤터는 영국에서 자신이 벌였던 반핵운동의 경험을 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영국 그린햄 커먼(Greenham Common) 기지에 미국 핵 크루즈 미사일이 배치된 것을 항의하기 위해 지난 1981년에 시작된 ‘그린햄 커먼 여성 평화 캠프’를 언급하며 “평화운동을 할 적에는 무엇보다도 ‘비폭력 직접행동’*이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몰래 펜스를 자르고 기지에 들어가 군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활주로와 차량에 페인트로 슬로건을 칠하고, 미사일 발사대에서 춤을 추고, 3만명이 모여 손을 잡고 기지를 둘러싸는 등의 활동을 계속해 매년 수백명이 체포를 당했으나 멈추지 않았다”며 경험을 소개했다. 지속적인 저항의 결과 지난 1993년 기지는 완전히 폐쇄됐고 그 땅은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최근의 활동상도 소개됐다. 지난 1998년 결성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트라이덴트 플라우쉐어즈(Trident Ploughshares: 트라이덴트 미사일을 해체해 쟁기(농기구)를 만들자는 뜻을 가진 평화운동단체) 운동은 군사 장비를 무력화하고 집회를 통해 군사시설을 봉쇄하는 등 보다 급진적인 직접행동으로 전개됐다. 그는 “두명의 여성과 함께 헤엄치며 트라이덴트 잠수함으로 침투해 전기선을 끊고 컴퓨터와 문서들을 호수로 쏟아버렸다”며 “이 일로 5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후, 한 달이 넘는 재판 과정에서 우리는 영국의 핵무기 자체가 국제법 위반임을 들어 우리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변론했고, 결국 무죄방면돼 정치·법률적 파장을 일으켰다”고 회상했다.

엔지 젤터가 강정마을에 온 것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지구적 차원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견제를 원하는 미국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의 배후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며 “그런 곳이 평화로운 민군복합관광미항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기만”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강정마을에서도 직접행동을 이어가 공사 현장에 잠입을 시도해 3회나 체포됐고, 기지의 펜스를 잘 잘라 제주 주민들에게 ‘엔지 커터’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기지 침입에 대해서 “불이 난 집에 아기가 자고 있다면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아기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더 큰 악행을 막기 위해 펜스를 부수는 것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그는 강정마을에서 공사장 입구 단체연좌, 카약을 이용한 해상 감시 등 비폭력 직접행동을 전개했으나 경찰은 카약을 빼앗고 망치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등 폭력적으로 대응해 논란이 일었다.

오늘부터 이틀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는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핵안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핵폐기만이 유일한 대안이며, 이를 논의하지 않는 핵안보회의는 기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핵무기 감축은 40년 이상 이어져 온 논의이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성과가 없다”며 “오히려 미국, 영국 등은 핵무기 현대화를 말하는 등 우려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지 젤터는 이 강연회를 마지막으로 출국명령을 받아 영국으로 돌아갔다. 전 세계를 누비며 평화운동을 벌이다 체포된 것이 1백회가 넘는 엔지 젤터는 자신이 “세계의 시민”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연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럼비 지킴이’를 자처했던 벽안의 평화운동가는 마지막까지도 “영국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겠다”며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비폭력 직접행동 : 정치·경제·사회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법, 제도를 따르지 않으며 비폭력적으로 전개하는 저항행동을 말한다. 간디, 마틴 루터 킹 등이 대표적인 비폭력 직접행동의 주창자이며, 연좌, 행진, 피켓팅, 단체 기도 등이 대표적인 행동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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