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성 인재발굴에 그친 청년 비례대표 선출
정치경험 부재한 청년정치인이 지지세력 없이
정치력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청년 정치인 육성 체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지난 2010년 영국의 에드 밀리밴드는 노동당 대표가 됐다. 110년 전통의 노동당을 이끌게 된 그는 당시 갓 마흔을 넘긴 젊은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에드 밀리밴드의 정치 경력은 결코 얕지 않았다. 17살에 노동당에 입당한 이래 착실히 정치적 경험을 쌓아온 그가 당에서 보낸 시간은 이미 23년에 달했기 때문이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청년 비례대표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2~30대 국회의원만 5명 이상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목을 끌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는 비판이 많다. 청년 정치인 육성을 위한 체계 없이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권자 표심 잡기 차원에서만 청년 정치인 발굴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책 경험을 통해 유능한 정치인이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썩은 동아줄 아닌 사다리가 필요하다=여·야 할 것 없이 청년 정치인을 발굴하는 데 여념이 없지만, 정작 대학생위원회, 청년위원회 등 당 내 청년 조직은 찬밥신세다. 대부분의 기성 정당 청년위원회가 선거철 자원봉사자 동원을 위한 기능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민주당 전국 청년위원회 홈페이지의 경우 회원이 4백명 가량에 불과하고 2~3일 간격으로 글이 하나 올라오는 수준의 저조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복지소사이어티 이상구 운영위원장은 “상시적으로 청년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정치 시스템을 위해서는 청년들이 당에서 여러 정치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청년 조직들은 활동이랄 것이 거의 없고 선거철에나 동원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기성 정당들이 앞다퉈 외부에서 참신한 청년 비례대표 모시기에 나선 것도 청년 조직이 부실해 당 내에서 젊은 인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경선 열기를 뒷받침할 청년 조직이 없어 흥행에서는 참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민주당은 공개 경연 방식으로 청년 비례대표를 선출하면서 만 18세~35세의 청년 선거인단을 10만명 이상 모집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현실은 그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1만8천여명이 참여하는 데 그쳤다. 반면 민주당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통합진보당의 청년 비례대표 경선에서는 활발한 청년 조직이 뒷받침되며 4만8천여명의 선거인단이 모집돼 이목을 끌었다.

청년 조직을 통한 인재 양성 체계가 미흡한 상황에서는 청년 정치인이 등장하더라도 뛰어난 정치력이나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조율하고 입법을 통해 국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과정을 힘찬 포부만으로 헤쳐나가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보좌관 7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조직적 지원이 충분히 뒷받침돼야 입법 활동이나 국정감사와 같은 정치활동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정당이 홍보를 위해 발탁한 청년 비례대표들은 정치경험이 대부분 전무한데다 뒷받침할 세력도 없어 국정을 충실히 이끌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청년들에게 정치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전문가들은 각 정당이 청년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고 싶다면 이들이 일찍부터 정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체계적인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선진국의 정당들처럼 유능한 청년들이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 사민당의 경우는 에버트 재단을 통해 고등학생 때부터 정치활동을 원하는 학생들을 발굴하고, 대학생 때 이들을 청년 당원으로 가입시켜 의회 인턴, 당직자 채용 등 체계적인 정책·행정 경험을 제공한다. 또 당에서 시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게 해 다양한 당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정책 연구를 하는 대학생에게는 행정경험을 제공한 뒤 다시 연구에 매진하도록 해 연구와 정치가 순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중국의 경우에도 공산주의청년단을 통해 차기 정치지도자 육성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어 매우 일찍부터 정치경험을 쌓을 수 있다

청년 조직이 당내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의 당 청년 조직은 각 정당이 청년들을 당 사업에 동원하기 위한 성격이 강한 반면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장치가 없어 당에서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어렵다. 청년들이 조직적으로 청년 문제와 관련한 당 사업을 주도하고 중앙당의 주요 의사결정구조에서도 참여할 수 있게 문을 열어야 상시적으로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선거에 임박해 한번의 이벤트로 청년 비례대표를 뽑을 것이 아니라 당이 육성한 청년 당원이 청년 조직의 뒷받침을 받아 청년을 대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상구 위원장은 “지속적으로 청년의 목소리가 정당에 반영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청년위원회가 활성화돼 청년들이 직접 정당을 이끌어간다면 청년 비례대표가 없어도 청년은 대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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