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들이 펜 대신 피켓을 들고 일어섰다. 지난 12일(월) 웹툰 ‘힙합’ 시리즈의 김수용 작가를 시작으로 40여명 만화가의 릴레이 시위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있는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이어지고 있다. 23편의 웹툰(인터넷 만화)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려는 데 항의하기 위해서다.

 방통심의위는 지난달 초 일부 웹툰이 폭력 등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관련 사전통지 및 의견제출 안내’라는 공문을 해당 웹툰이 연재되는 각 포털사이트에 발송했다. 방통심의위가 지정 확정 이전에 웹툰 작가들에게 관련 의견 진술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만화가들은 “웹툰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될 경우 심각한 2차 피해가 염려되므로 신중히 결정할 사항”이라며 입을 모아 반발하고 있다. 작가의 자기검열 확대는 물론이고 만화 산업 전반의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작품은 고지·공시를 통해 유해매체임을 알려야 하고 광고 및 단행본 출간시 다시 심의를 받는 등 청소년의 접근을 단순히 막는 조치보다 제재가 훨씬 강해진다.

 특히 이번 방통심의위 결정은 폭력성 유도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장면 혹은 구절에 관한 언급이 없어 고려대상을 선정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제효원 사무국장은 “이번 사태는 한 일간지가 웹툰의 유해성을 지적한 점에 방통심의위가 갑작스럽게 대응하다 발생한 문제”라며 “만화의 내용과 맥락을 제대로 고려했다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했다. 각각의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없이 청소년유해매체 고려대상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전설의 주먹」을 비롯해 폭력성을 근거로 지정고려대상에 오른 작품을 들여다보면 실제로 폭력을 미화하는 작품은 없다. 또 「2011 미스테리 단편」과 「가론피」 등 공포 기획물은 주제에 있어서 학교 폭력과는 내용 상관성이 매우 낮음에도 유해매체 고려대상으로 지정돼 논란이 됐다. 성급히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선정하기보다는 잔인한 장면이 학교 폭력을 조장하는지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만화계의 입장이다.

 방통심의위의 이번 결정이 정말 ‘청소년’을 고려했는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청소년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작품에도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 대상이라는 공문이 예외없이 발송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지정된 23편의 만화 중 15편은 현재 청소년이 관람하려면 별도의 인증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만화가와 포털이 합의를 거쳐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관람 등급을 부여해 웹툰을 서비스하고 있는 것이다. 서찬휘 만화 평론가는 “이미 자체 심의를 통해 청소년의 접근을 사전에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라고 심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만화가들은 이러한 위기 의식을 그러모아 ‘방심위심의반대를위한범만화인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만드는 등 신속하게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대위 백정숙 위원장은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단순히 심의를 시도한 것의 문제점을 알리는 것을 넘어 웹툰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함을 의제로 설정하고자 한다”며 “활발한 연구와 이를 반영한 법제 개선이 이뤄진다면 한국 만화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이는 웹툰이 비교적 근래에 정착한 분야이기에 콘텐츠의 성격에 대한 법적 이해가 부족한 지금, 공론화를 통해 이 사태가 웹툰의 장르적 특성과 영향력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시각이다. 만화계의 중론은 심의와 그에 따른 규제는 면밀한 연구 후 마련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있다. 박인하 교수(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는 “웹툰은 21세기 들어 새롭게 등장한 콘텐츠인 만큼 매체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충분히 한 다음 가이드라인을 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율심의제를 비롯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 정부 및 기관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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