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대학신문을 읽고' 코너는 사전에 선정된 독자리뷰위원 3명의 릴레이 기고로 꾸며집니다.

비로소 다시 땅이 녹고 꽃이 피는, 새로움이 열리는 봄이 왔다. 그와 함께 4월 11일,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선거에도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본래 정당 정치의 목표는 해당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표자들을 국회에 보내 계급의 이해를 추구하기 위함인데, 이번 19대 총선은 조금 ‘독특’하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많은 정당들이 주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계급이 아닌 ‘세대’, 그 중에도 ‘청년 세대’의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청년 실업이나 등록금 문제 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화두를 선점한다는 것은 곧 청년  지지층을 확보해 정당의 지지를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의 힘’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는데, 박원순 후보는 20~30대 표를 압도적으로 얻어 당선됐다.

19대 총선을 맞아 정당들은 청년 후보들을 등록했다. 각 정당은 자신들이 그 어느 다른 정당보다 청년층을 위한 정당이며 그들을 위한 정책을 입안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려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진정 청년 세대를 위한 정책이 입안될 수 있느냐, 청년 후보에 대해 정당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다. 정당이 더 높은 지지율과 더 높은 수의 표를 받기 위해 소위 ‘얼굴마담’으로 청년 후보를 내세웠는지, 혹은 진정 청년문제를 해결하고자 그 세대를 대표하는 청년 후보를 국회에 입성시키기 위함인지는 유권자들에게 선결되어야 할 문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신문의 특집 기사는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대학신문의 서술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지는 두 가지 점이 있다. 대학신문 1826호 7면 사회면의 「총선을 향해 달리는 청년후보들」이라는 특집기사에서, 청년비례대표 후보들을 열거, 분석하는 부분에 후보들의 약력들을 우선적으로 나열하면서 그들이 실제로 어떤 말을 했고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는 상대적으로 소홀히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령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언급에서 ‘특별한 경력이 없다’는 서술이 있는데 청년 세대 일반을 대표하기 위해 도입된 청년 후보의 본래 목적에 따를 때, 반드시 어떤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거나 사회 운동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또 한 가지는 청년 후보와 청년 정치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청년에게 청년 정치는 자신 세대/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통로다. 청년 정치는 ‘청년이 후보로 나오는 정치’라기보다는 ‘청년 일반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가 후보로 나오는 정치’다. 청년 후보의 등장이 곧 청년 정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과 둘 사이의 관계를 밝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당위’측면에서의 고민을 가능하게 하는 단초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청년 후보 몇명 보낸다고 국회가, 제도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청년 시절 혁명을 꿈꾸었거나, 혹은 개혁적 아우라를 풍겨온 사람들에게 금뱃지를 주어 국회로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변화는 늘 좌절돼 왔다. 이번 총선을 시작으로 진정 청년을 위한 국회의원이 점차 증가하길 바란다.

장성빈
철학과·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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