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부

경제적 관점에서 시장 통합이 진전되는 현상이라고 정의할 ‘세계화’가 요즘 곳곳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19세기 말에 대대적으로 진행된 바 있던 세계화는 1차대전, 대공황, 2차대전 동안 급격히 후퇴했다가 20세기 말에 다시 고조되었다. 1997년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의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뒤이은 유럽 경제불안 등은 금융세계화로 인해 급속히 확산되었다. 위기 전파속도가 빠르다 보니 세계화에 대한 거부감도 그만큼 광범해졌다. 지구적 차원의 시장 통합 옹호 논리는 효율과 생산성을 기치로 내걸지만 금융이 미성숙한 나라의 섣부른 자본 자유화는 매우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우려를 유발한다. 자본 세계화가 진척되면 수익률 높은 프로젝트에 자금이 쉽게 공급될 수 있어 양측이 서로 이롭긴 하나 단기자금일 경우 위험과 불확실성이 내재되기 마련이다.

‘국제 금융의 트릴레마’란 말이 있다. 환율안정, 자유로운 자본 이동, 국가의 독립적 거시정책 운용,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고전적 금본위제 시기(1880-1914)에는 환율안정과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 우선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1948-1971) 때는 고정환율과 각국 개별 거시정책(불황일 때 돈을 풀고 호황일 때 조이는)을 위해 외환 통제를 허용했다. 주요 선진국이 변동환율로 돌아선 이후 고삐 풀린 자본 이동이 1990년대, 2000년대에 가속되었다. 그 부작용에 대응하여 저개발국은 물론 선진국들까지도 다양한 자본통제 방안을 내놓고 있다.

노동시장, 상품시장에서의 세계화 거부감도 커 보인다. 각국이 불법이민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세계 도처에서 시장개방 반대 시위가 벌어지며 정치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수출업자는 유리하고 수입대체업 종사자는 타격을 입는데, 개방으로 이득보는 쪽과 손해보는 쪽의 편가르기가 조성되어 정치불안으로까지 이어진다. 예컨대 미국 공화당이 중국 수출품을 겨냥한 관세 인상을 거론하는가 하면, 지구적 차원의 경쟁 때문에 일자리와 임금이 불안해져 세계화 선도자이던 미국마저 움츠릴 정도다. 불평등 심화도 문제다. 노동절약적 기술진보가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지만 세계화 진전도 이를 부추기는 면이 있다. 선진국 하층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세계 경제를 위협할 수준이다. 물론 형평에 맞는 적절한 보상책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FTA)은 다소 구분된다. FTA는 다자간 협상(우루과이 라운드, 도하 개발 아젠다 등)이 아니라 당사자끼리만 개방한다는 배타적 무역협정이다. 타국 상품에 적용하는 무역장벽을 협정국에게만 낮추고 서비스(교육, 법률)시장도 연다는 것이다. 다자 간 세계화보다 이해 관계나 원산지 규정 등 행정 문제도 더 복잡한 형태다.

세계화 추세와 함께 또 다른 트릴레마가 발생한다. 민주주의, 국가주권, 고도의 경제적 세계화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한 감세경쟁, 신보호주의에 빠지는 일 등은 경계해야한다. 어렵지만,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국가 독자성을 유지한 채 ‘지혜로운’ 세계화 관리(가버넌스)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장과 번영은 다자 간 무역, 조절된 환율의 유연성, 국제협력 여건 등이 조성된 시기에 달성되지  관세장벽, 무역전쟁, 금융경직, 갈등적 통화지역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이룰 수 없다.” 세계화는 중대 길목에 와 있다. 우리나라도 한·미 FTA 등이 정치이슈화 되었다. 관악인들이 이를 잘 이해하고 슬기롭게 대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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