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한
방통심의위의 일방적인 처사
언론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보다 신중한 접근했어야

아마 다들 학교 폭력 문제로 세상이 한창 시끌시끌했던 지난 겨울을 기억할 것이다.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현재 그 자리에는 청소년을 폭력적으로 만든 그 무엇들에 대한 단죄들로 가득 차 있다. 게임이 한 차례 뭇매를 맞은 그 뒤를 이어 지금은 웹툰이 가장 호된 공격과 질타를 받고 있다. 지난달 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는 폭력을 조장하거나 이를 미화할 수 있는 내용을 제공한다는 근거를 들며 23편의 웹툰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할 것임을 밝혔다. 이에 해당 웹툰 작가는 물론이고 만화계 전반에서 릴레이 시위를 진행하는 등 방통심의위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만화계는 방통심의위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졸속으로 처리됐다는 점에 일차적으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웹툰과 폭력성의 연관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도 거치지 않은 채 언론의 일부 보도에만 근거해 판단을 내린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 일어난 청소년의 오토바이 날치기 사건이 웹툰을 모방해 발생했다는 진술이 언론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그러자 한 일간지가 1면에서 특정 웹툰을 대표적으로 거론하며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내걸어 웹툰의 폭력적인 요소를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꽤나 사회적 영향력이 지대한 기성 언론이어서 그랬던 걸까. 바로 이틀 뒤 방통심의위는 웹툰의 폭력성을 심의하겠다며 나름대로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주 후 방통심의위가 웹툰 23편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겠다는 통지를 각 포털에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결국 근 한달간 속사포처럼 일을 진행하는데 급했던  방통심의위는 웹툰과 실제 학교 폭력의 연결고리를 증명해줄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이란 판단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방통심의위가 웹툰을 비난하는 언론의 대서특필만을 바탕으로 조치를 취했다고 봐도 무방해지는 셈이다.

이번 사태는 방통심의위의 성급함에서 비롯돼 펼쳐진 일련의 과정이었던 만큼 방통심의위가 이번에 웹툰 23편에 들이댄 잣대 역시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판국이다. 실제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23편 중에는 문화부장관상을 받는 등 정부가 자체적으로 호평을 내린 작품들이 여럿 포함돼 있다. 분명 우수한 점을 인정했기에 상을 준 것일 텐데, 정부가 이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직접 지정해 성인들조차도 청소년들 몰래 알음알음 작품을 만나보게 만들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방통심의위가 폭력성을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했다고 공표했음에도 실상 만화의 내용은 폭력과 관계가 먼 단순 공포 소재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은 창작시 자기 검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점에서 작가들의 상상력 제한과 창작 의지 저하 등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귀결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웹툰이 실제 학교 폭력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연결고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급한 불부터 꺼보자는 심산으로 이번 결정을 내린 듯하다. 

 1997년에도 당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일진회 사건이 만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출판 만화가 사장되는 지경에 이르렀던 선례가 있었다. 그렇기에 방통심의위의 청소년유해매체 지정 결정은 반드시 신중히 이뤄졌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 방통심의위의 행동은 이전보다 더욱 단순하게, 언론 보도에만 전적으로 의거하는 식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결정을 내렸을 뿐이다.

 ‘만화진흥에관한법률’이 통과됐고 지난 1월 프랑스의 앙굴렘 만화 축제에 한국 만화가 초청되는 등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한국 만화계가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시기다. 산뜻한 한 해의 출발을 꿈꾸던 만화계에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를 촉발한 방통심의위의 성급한 판단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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