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은 총·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을 맞아 서울대 학부생들의 정치의식을 알아보기 위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조사는 1985년 이래로 여덟 번째(1985년, 1992년, 1997년, 2000년, 2004년, 2007년, 2008년) 실시되는 것으로 정치의식 및 관심도, 정치 성향, 정책 선호 등을 파악하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달 6일부터 15일까지 실시된 이번 조사는 본부 학생처가 산정한 2012학년도 1학기 등록생을 모집단으로 하고 단과대 기준 1,200명의 표본을 층화추출해 실시됐다. 최종적으로 구성된 표본은 1,014명이며 95% 신뢰구간에서 표본오차는 ±3.08%이다. 설문을 위해 안상훈 교수(사회복지학과)의 자문을 얻었고 한국 갤럽의 도움을 받았다.

보수에서 이탈하는 서울대생

이번 조사 결과 중 서울대생의 정치의식과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념 성향에 대한 답변이다.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밝힌 응답자가 16.6%에 불과해 17대 대선 직전인 2007년 11월의 40.5%와 비교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대신 응답자의 52.2%가 자신의 정치 지향이 ‘중도적’이라고 밝혀 2007년(23.2%)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서울대생의 이념 성향이 보수에서 이탈해 중도층으로 흡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그래프 1 참조>

그래픽: 김태욱 기자 ktw@snu.kr

『대학신문』이 이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서울대생의 보수화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1997년 11.1%였던 ‘보수적’이라는 답변은 2000년 13.2%, 2004년 19%, 2005년 27.6%로 2000년대 내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학생운동이 사그러들고 경쟁적 분위기가 대학가에 확산되면서 시작된 ‘대학의 보수화’ 현상은 이른바 ‘비운동권’ 총학생회의 탄생과 결부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17대 대선이 치뤄졌던 2007년 11월에는 전 사회적으로 ‘경제 성장’ 열풍이 불면서 ‘보수적’ 응답자가 40.5%에 달해 절정을 찍었다. 이는 서울대생 중 ‘보수적’ 응답자가 ‘진보적’ 응답자보다 많았던 최초의 조사 결과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수-진보의 비중은 다시 역전돼 촛불시위 직전인 2008년 5월에는 ‘진보적’ 응답자가 40%대를 회복하며 ‘보수적’ 응답자(35.5%)보다 늘어났다. 당시 촛불시위 참여를 안건으로 한 총학생회의 총투표 결과 89.25%에 달하는 학생들의 찬성으로 동맹휴업이 성사되기도 했다. 이후 4년만에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는 ‘보수적’ 응답자가 16.6%로 뚝 떨어져 2004년과 비슷한 수준이 된 것이다.

한편 ‘진보적’이라는 답변은 31.2%로 2007년(33.5%)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2000년대 들어 3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생 75.9% "이명박 정부 못했다"

서울대생이 보수로부터 이탈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의 정책 전반에 관한 평가를 묻는 문항에서 27.8%는 ‘매우 부정적’, 48.1%는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보통’과 ‘긍정적’은 각각 19.1%, 4.4%였고 ‘매우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0.6%에 불과했다.<그래프 2 참조>

‘진보적’ 응답자 중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의견이 0.6%에 불과했고 ‘매우 긍정적’이라는 평가는 아예 없었다. ‘보수적’ 응답자 중에도 ‘긍정적’과 ‘매우 긍정적’이란 응답은 각각 15.3%와 1.9%에 그쳤고 ‘매우 부정적’이라는 응답도 10.2%에 달했다.

현 정부가 잘한 부문을 모두 고르라는 문항에는 안보를 선택한 비중이 39.5%로 가장 높았고 교육(31.6%), 경제(31.1%), 복지(14.9%), 환경(11.8%), 언론(11.2%)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못한 분야를 모두 고르라는 이어진 문항의 응답 비율은 언론(69.9%), 환경(69.1%), 복지(60.9%), 경제(59.8%), 교육(56.2%), 안보(48.6%) 순으로 모든 분야에서 못했다는 응답이 잘했다는 응답보다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신지용씨(원자핵공학과·11)는 “각 분야에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 정책을 떠올려 보면 부정적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특히 언론 장악 때문에 벌어진 최근의 언론사 파업에는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떠오른 서울대생

한편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로 야당의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응답자의 70.1%는 지지정당이 없다고 답해 대부분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7년 32.9%만이 지지정당이 없다고 답변한 것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또 현재 일반 국민들의 39%(3월 23일자 YTN·한국선거학회·한국리서치 공동 여론조사 기준)만이 지지정당이 없다고 답한 것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통합당(10.6%), 새누리당(8.5%), 통합진보당(5.2%), 기타 진보정당(4.6%), 기타 보수정당(1%) 순이었다. 2007년 조사에서 한나라당(41.2%), 민주노동당(14.0%), 대통합민주신당(6.6%), 창조한국당(4.3%) 순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보수에서 이탈하는 추세가 지지정당에 대한 문항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그래프 3 참조>

또 정치 성향이 ‘중도적’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82.3%가 지지정당이 없다고 답해 ‘진보적’ 응답자(57.0%)나 ‘보수적’ 응답자(55.1%)에 비해 무당파의 비중이 높았다. 김한빛씨(정치학과·08)는 “많은 서울대생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보수에서 이탈했지만 아직까지 대안적인 전망을 발견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특정한 정치 세력을 선뜻 지지하지 못해 무당층으로 표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진보적’을 택한 응답자의 정당지지율은 민주통합당(19.7%), 통합진보당(12.4%), 기타 진보정당(10.2%)로 분산된 데 반해 ‘보수적’을 택한 응답자는 대부분 새누리당(40.1%)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정당이 없는 것을 서울대생의 탈정치화로 단정하긴 어렵다. 이번 19대 총선 투표 여부를 묻는 질문에 69.2%가 ‘투표하겠다’, 21.3%가 ‘상황을 고려해 결정’을 선택해 90% 이상이 투표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 18대 총선이 46.1%의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특히 2~30대의 투표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한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수치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를 묻는 질문에 ‘관심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27.5%로 2000년 조사의 결과(27.0%)와 비교해 거의 변하지 않았다.<그래프 4 참조> 인문대 학생회장 염동혁씨(국사학과·08)는 “2008년에 대학에 입학한 후로 오히려 서울대생의 정치적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느낀다”며 “촛불시위와 반값등록금 시위, 본부 점거까지 요 몇년 새 서울대생이 적극적으로 제기한 문제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그래픽: 김태욱 기자 ktw@snu.kr

이처럼 서울대생 중 정치에 관심은 있지만 지지정당은 없는 부동층이 두터워진 것은 지난 몇번의 선거에서 20대 유권자가 보팅 키(voting key)로 부상한 현상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20대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69.3%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당선에 큰 역할을 한 바 있다.

안철수 대선 지지율, 박근혜에 두 배 이상 앞서

부동층이 늘어난 서울대생이 가장 원하는 리더십은 안철수였다. 올해 대선에서 투표를 한다면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냐는 질문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철수 교수를 선택한 응답이 38.3%로 가장 높았다. 이는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19.9%), 새누리당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14.1%)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높은 수치다. 성별 지지율에서도 안철수 원장은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38.2%와 38.7%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그래프 5 참조>

안철수 교수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두터운 지지 때문으로 분석된다. 안 교수는 ‘진보적’ 응답자에게서 45.3%로 가장 두드러진 지지를 받았으나 ‘보수적’ 응답자에게서도 25.2%를 받아 상당한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위원장은 ‘보수적’ 응답자에게서 41.5%의 지지를 받은 반면 ‘진보적’ 응답자에게서는 4.2%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정당 지지자별 응답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자 중 20%가 안 교수를 선택한 반면 민주통합당 지지자 중 박 위원장을 지지한 응답은 1.9%에 불과해 차이를 보였다. 제용민씨(서양사학과·09)는 “안 교수가 기성 정당에 편입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는 것 같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예상하긴 어렵지만 신선한 대안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주된 기준을 묻는 문항에 안 교수 지지자의 44%가 ‘후보의 청렴함’을 꼽은 반면 박 위원장 지지자는 ‘실행력’을 꼽은 비율이 27%로 가장 높았다. 문 고문 지지자의 경우 ‘정치적 이념’을 선택한 응답자가 36.9%로 가장 많았다.

한편 정치 관심도에 따라 지지하는 대선 후보 순위도 엇갈렸다. 응답자 전체에서는 안철수 교수가 1위(38.3%)였지만 정치에 ‘매우 관심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에서는 문재인 고문(31.4%)이 안 교수(27.7%)를 앞질렀다. 그러나 ‘관심이 없다’는 응답자에서는 안 교수를 지지하는 비율(42.0%)이 문 고문(11.2%)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안 교수가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는 앞서지만 이념 지향은 문 고문이 더 선명하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박근혜 위원장은 ‘매우 관심이 있다’(13.9%), ‘약간 관심이 있다’(12.9%)는 응답자에 비해 ‘관심이 없다’(16.7%)는 응답자들 사이에서 지지율이 높았다.

* 스윙 보터(swing voter):
선거 등 투표 행위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를 지칭한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도움을 줄 만한 후보를 찾기 위해 지지정당을 쉽게 바꾸며, 지역 및 이념 지향적 투표 성향보다는 선거 당시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을 보인다.

* 보팅 키(voting key):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는 선거에서 투표 결과를 가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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