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문가 분석] 박원호 교수(정치외교학부)

정치외교학부
선거 연구의 가장 중요한 고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미국유권자(The American Voter)』는 정당, 후보, 그리고 정책의 세 가지 요인 중 정당, 보다 구체적으로는 유권자들의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 그들의 선거 지지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유권자들이 정치•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한 정당에 대한 애착심은 쉽사리 변하지 않고, 이것이 후보자 평가나 정책 비교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지지 결정 과정을 도와주는 지름길(shortcut)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미국의 유권자들은 정치와 선거의 손쉬운 해결책을 정당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이제 2012년의 한국으로 눈을 돌려, 서울대생의 정치의식 조사 결과를 본다면, 그와 완전히 대조되는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70% 이상의 응답자들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으며, 총선에서 후보자들의 소속정당을 고려해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12.2%에 지나지 않았다. 정당 활동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안철수 교수가 대선 지지후보 항목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대선 지지후보의 선택이유를 물은 설문 문항에 소속 정당이란 선택지가 들어있지조차 않았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징후적인데, 이제 『대학신문』 기자들을 포함한 서울대생의 대다수는 정당을 마음 속에서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짧지 않은 리포트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정당은 실패했고 인기 없으며 비효율적이고 수명이 짧다. 그리고 이제 촌스럽다. 이런 정당들이 제공했던 것은 지름길이 아니라 우회로에 지나지 않으며 서울대생들은 그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69.2%)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정책•공약의 내용(51.5%)과 후보자의 청렴함을 매우 중요시(총선 26.8%, 대선 29.9%)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굳이 정당의 힌트가 아니더라도 후보자들이나 그들의 정책은 그 흔한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읽고 토론되고 평가되며 재반추될 것이다. 서울대생들은 정당은 포기했지만 정치는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정당없는 정치가, 그리고 정당없는 선거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가 된 것 같다. 아마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미국유권자』의 저자들이 서울대생들에게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첫째, 정당과 분리된 정책과 공약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일관되고 상호모순적이지 않은 정책과 공약들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정당 이외에 있을 것인가? 둘째, 지도자 개인의 능력이 공동체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정도로 정치가 연약하다면,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탁월하고 ‘청렴한’ 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최악의 지도자를 실수로 뽑았을 때에도 그를 견제하고 책임지울 수 있는 장치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정당이 아닌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