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청춘을 말하다 ④

『대학신문』은 총 4번에 걸쳐 우리 시대의 문장(文場)에서 각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각 세대의 문장(文章)들에게 그들의 청춘을 지탱해줬던 ‘청춘의 문장(文章)’을 물어보는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들여다보는 통로를 마련하는 한편 오늘날의 청춘들의 삶 또한 지탱할 수 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길 바랍니다.

연재 순서
(1) 김혜순 시인
(2) 성석제 소설가
(3) 심보선 시인
(4) 한유주 소설가

구석에서 구석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로마의 테라스』

2009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용하다는 점집에 다녀온 엄마가 내게 점쟁이가 했다는 말을 전했다. 점쟁이는 엄마의 첫째 딸, 그러니까 내가 평생 책만 읽다 책에 파묻혀 죽을 팔자라 말했다고 했다. 남들보다 일찍 한글을 깨친 자신의 큰딸이 겨우 책만 읽다 죽을 운명이라 하니 그때 엄마는 조금 상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 점쟁이는 엄마의 둘째 딸, 그러니까 나의 동생은 귀부인이 되어 호의호식하며 살 운명이라 말했다고 했다. 하니 엄마의 상심은 그 예언으로 조금은 상쇄되었을 것이다. 운명에 의해서였는지, 혹은 타고난 기질 때문이었는지, 혹은 적어도 책은 아낌없이 사주었던 부모의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자라났다. 밥을 먹을 때도, 자기 전에도 책을 읽었고 심부름을 갈 때도 가게까지 책을 읽으며 걸어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많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책 읽는 모습을 좋아했던 부모는 점차 책이라면 질렸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독서목록에 교과서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해서 나의 책읽기는 종종 금지되었다. 나는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침대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를 이불로 덮은 채 새벽까지 책을 읽고는 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취미조사를 할 때마다 나는 독서라는 대답을 피했다. 내게 책을 읽는 행위는 취미라기보다는 생존의 문제였다. 이 지면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책은 내게 항상 기묘한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 어쩌면 당시 나는 실제세계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 허구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직업이라 하기에는 알량한 이름이지만 어쨌거나 내가 소설가로 불리게 되었을 때 나의 부모는 응당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책을, 그것도 문학서적들만을 줄기차게 읽어댔으니 소설가가 못 되리라는 법도 없다는 거였다. 엄마는 옛날 점쟁이의 말을 잊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때 그 말을 가끔 생각했다. 평생 책만 읽다 책에 파묻혀 죽을 팔자와 더불어 책을 쓰는 팔자까지 얻게 되었으니, 이는 행이라면 행, 불행이라면 불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말하기와 듣기, 읽기, 쓰기로 나뉜 국어 수업 중 말하기와 쓰기를 가장 싫어했다. 쓸 말이 없었다. 텅 빈 원고지를 볼 때마다 짜증과 두통이 동시에 일었다. 그런데도 읽기가 아닌 쓰기가 직업이 되었으니 다소 묘하다고 생각할 만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스칼 키냐르를 만났다. 내게 처음 다가온 책은 『은밀한 생』이었다. 이후 1년에 한두권씩, 공들여 번역된 그의 책들이 출간되었다. 『은밀한 생』 다음에 읽게 된 책이 『로마의 테라스』였다. 작가는 인터뷰를 위해 몰려든 기자들에게 단지 이렇게만 말했다고 한다. “사랑하던 여자의 아들을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모든 소설들이 그러하듯 이 소설 또한 내용을 몇 줄의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소설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던 까닭은 첫 장에 등장하는 세 개의 짧은 문장들 때문이다. 이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구석에서 살아가는 법일세. 사랑에 빠진 사람들도 모두 구석에서 살아가지. 책을 읽는 사람도 구석에서 살아가네.”

그의 말에 의하면 절망과 사랑과 독서가 모두 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절망도 사랑도 심지어는 독서도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빛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이불로 스탠드를 감싸 만든 동굴에 들어앉아 책을 읽던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키냐르가 말하는 세 개의 단순한 문장들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그 아이는 자라서 내가 되었고 나는 더 이상 불빛을 저지할 필요가 없지만 아름다운 책들을 읽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으로, 키냐르가 구석이라 명명한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시간이 잠시 정지한다. 아직도 나의 시간을 청춘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의 청춘은 그렇게 영원히 유예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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