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
더불어 사는 삶
  • 대학신문
  • 승인 2012.04.01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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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생산과학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헝거 게임(hunger game)에 쾌락을 느끼며, 삶의 지표를 나와 내 단체의 이익 위주로 편성하고, 이해를 달리하는 타인이나 타집단과는 “절대 타협 불가”라는 독불장군식 사고에 점점 몰입해 가는 양상이다. 이 현상을 치열한 경쟁구도 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생존 전략으로 이해하기에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국토의 면적과 인구가 적어서인지 아니면 유전적인 성정이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매사를 흑과 백의 이분법적 사고로 처리하는 방식에 우리는 매우 익숙해져 있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승자와 패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부자와 저소득층 등 모두가 극단적인 대결구도이다. 여기에다 코미디언이 외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구호에 공감하고,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도전적인 발언에도 토론을 벌인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긴 소수는 승리를 만끽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탈락한 다수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요즘의 세태를 한 세대 전 쯤의 시각으로 본다면 “왜 그렇게 사니?” 라고 핀잔을 들을 만도 하다. 우리 삶의 공동체를 향유하기 위해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캠퍼스 곳곳에 번성하고 있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의 가지들을 보자. 수백 개가 넘을 듯 빽빽한 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뻗어 있다. 서로 더 차지하려고 가지들 간에 무질서하게 얽히고 다투지 않는다. 나무의 생육을 가장 좋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여건에서 햇볕을 최대로 받기 위한 효율적인 공간배열을 이루고 있다. 관악산 숲에는 큰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은 양지식물과 음지식물들, 각종 야생동물과 미생물들이 흙과 바위와 어우러져 자활하는 단위 공동체인 조화로운 생태계가 이루어진다. 동시대에 사회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의 우리는 개인과 사회가 모두 행복해지기 위하여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최고와 일등을 향한 집착을 버리자. 모두가 일등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만든 잣대로 평가하여 등수가 매겨지는 것이 또한 모든 것을 걸을 만큼 가치있는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보자. 큰 나무 몇 그루가 숲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활동은 물론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효율의 기준이 되어왔던 경제원칙을 바꾸어 보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을 것이 아니라 적절한 비용으로 그에 합당한 만족과 행복을 얻는 것에 가치를 두면 어떨까? 지나친 욕심은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를 잊고 남을 위해 살아보자. 소금이 음식에 녹을 때 제 값어치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가치는 의외로 다른 곳에서 더 빛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는 어차피 경쟁이 없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쟁만을 삶의 도구로 삼을 때 사회는 쉬이 피로해지고 생산성은 정점을 지나 점점 떨어지며, 공동체 삶의 터전인 사회의 안정적 생태계는 무너지고 만다. 탈무드에서는 살맛나는 세상을 위해서는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 2만불이 넘는 시대에는 경쟁과 협력이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4월 11일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 사는 삶을 더 강조하고 싶어진다. 먼저 우리 자신과 대학사회부터 모범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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