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개인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담긴
명백한 불법 행위인 총리실 사찰
여·야의 선거 공방에 묻히지 않도록
시민이 엄격하게 감시해야

“밤 10시 30분 차 밖에서 선 채로 내연녀와 이야기를 하다가 가볍게 뽀뽀를 하고 헤어질 듯 하더니 같이 아파트로 걸어 들어갔다” 최근 ‘리셋 KBS’가 공개한 2009년 5월 19일 국무총리실 사찰 보고서의 일부다.

재작년부터 제기되던 총리실 사찰 의혹이 최근 사찰 문건 공개를 통해 진실로 드러났다. 미행과 감시는 물론이요 개인의 일상과 주변인물 동향까지 낱낱이 보고됐다고 하니 파파라치가 따로 없다. 게다가 사찰 리스트엔 민간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이처럼 특정인물의 활동반경을 파악하는 행위는 우리가 ‘경찰청 사람들’이나 ‘사건25시’ 등의 형사물을 통해 흔히 접하는 잠복근무나 현장조사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사 주체에 총리실을 대입한다면 수사기관이 아닌 타 기관이 개인을 조사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설령 특정 인물이 범법 행위를 저지른 정황이 있다 할지라도 용의자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수사기관에만 주어지므로 총리실의 사찰은 명백한 불법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 정의 수호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수사권을 위임받은 경찰·검찰의 조사가 공익을 위한 것인 반면 총리실의 사찰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총리실이 불법을 감수하면서까지 살뜰한 관심을 할애해 온 ‘선택’받은 인물들을 살펴보면 사찰의 목적이 명확히 다가온다. 최근 KBS 파업 언론인들이 입수한 일부 명단에 따르면 일반 시민을 비롯한 연예인, 언론인, 여·야 국회의원 등 광범위한 층위의 인물들이 사찰 대상으로 언급돼 있다. 이중 특히 논란이 된 민간인과 연예인의 경우 광우병 촛불집회 참여, 블로그를 통한 정권 비판, 참여정부 인사 출신 등의 ‘경력’을 가지며 현 정권과 반대되는 소신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 하이라이트다. 정권을 유지하는데 있어 조금이라도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있다면 권력을 남용해서라도 통제하겠다는 정부의 위험한 발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을 불순세력으로 규정하고 조사하는 일이 2012년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일반 시민의 블로그에 게재된 비판글의 존재조차 용인하지 못해 통제하고 감시했던 이 정권이 꿈꾸던 것은 ‘온전한 지배’로 요약된다. 이는 지배층의 완전무결을 가장해 완전복종을 꿈꾸던 군부독재의 본질과 다르다 할 수 없다. 용이한 지배를 위해 국민의 사생활을 감시해 온 정부의 행동은 스스로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권력임을 자인함이다.

이들이 목표했던 순도 100%의 권력. 속속들이 온전한 하나의 목소리가 존재하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다음 필연적인 수순은 무엇이었을까. 비판이 존재하지 않는, 자발적 만장일치의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사회인지를 그려본다. 나아가 이런 모양새가 역사적으로 악명높은 혹은 현존하는 어느 권력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분노보다는 공포가 앞선다.

그러나 이토록 몸서리쳐지는 불법 사찰이 만천하에 공개됐음에도 진실규명은 흐지부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총리실의 불법 사찰 파문이 선거정국에 이용되며 사안이 가벼워진 형국이다. 청와대는 불법 사찰의 책임에 참여정부를 끌어들였고 야당은 불법 권력남용의 책임을 묻기보다 정권책임론을 부각시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한 사안의 본질은 흐려졌다. 결국 정치권의 민간 사찰 논의는 선거를 겨냥한 여·야의 공방전으로 전락해 버렸다.진실 규명 작업이 지연될수록 진실은 드러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국민들이 손놓고 이대로 지켜보다가는 모든 것이 조용히 묻힐지도 모를 일이다.

빅브라더가 실체를 드러냈다. 불법 사찰 폭로에 갈채를 보내며 그 자체로 안도한다면 이 얼마나 순진한 당신인가. 빅브라더의 존재감이 드러난 이상 이 지점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명백히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권력’을 위해 존재하길 거부한다면 정치권으로 하여금 조속히 이번 불법 사찰의 모든 전모를 확실히 드러내고 법에 따라 엄격히 다스리게끔 해야 한다. 존재감이 드러난 빅브라더를 의식할 것인지 권력을 감시하는 민주국가의 시민이 될 수 있을지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처신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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