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 공연, 창작 뮤지컬 상연 등 당초 기대에 부응 못하는 전용극장…
정부 차원 관리 필요하다는 지적

「명성황후」, 「맘마미아」, 「지킬앤하이드」, 「캣츠」…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이 작품들은 모두 100만 관객을 돌파한 뮤지컬 흥행작들이다. 2001년 객석 점유율 94%, 총 24만명을 동원한 「오페라의 유령」의 흥행을 기점으로 한국 뮤지컬계는 10년새 양적으로 팽창하며 대중공연예술의 대표 장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뮤지컬 시장의 급격한 성장이 거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뮤지컬계는 질을 담보한 안정적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 첫단계로 뮤지컬계는 ‘뮤지컬전용극장’을 마련해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성공에는 전용극장의 존재가 한 몫을 했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2006년 뮤지컬전용극장 1호로 출발한 잠실 샤롯데씨어터 이후 종로 두산아트센터를 비롯한 여러 공연장이 하나 둘씩 설립된 데 이어 최근에는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가 문을 열며 뮤지컬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뮤지컬전용극장, 왜 필요한가?=그간 뮤지컬은 연극, 국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가 공통적으로 무대를 사용할 수 있는 대형극장에서 공연돼 왔다. 하지만 뮤지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뮤지컬계 일각에서는 몇몇 대형극장을 단기적으로 개조해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다. 특히 뮤지컬이 연기, 음악, 무대의 삼박자가 모두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인 만큼 이에 적합한 극장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종원 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부)는 “뮤지컬은 넓은 백스테이지와 객석과 최대한 가까운 무대를 필요로 하고, 노래와 대사를 확실히 전달해야 하는 목소리의 공명을 위해서는 천장이 높은 음향적 구조가 절실하다”며 뮤지컬전용극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존 극장들의 짧은 대관기간 또한 뮤지컬전용극장의 설립이 필요한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립극장을 비롯한 공공극장들은 오페라·발레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여야 하기에 1개월 이상의 장기대관이 쉽지 않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유리 교수(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학과)는 “뮤지컬은 긴 시간 동안 작품을 구상해 개발하고 검증하는 문화콘텐츠”라며 “장기공연이 뒷받침될 때 뮤지컬 산업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장기공연은 공연에 적합한 노하우 축적을 가능케 해 국내뮤지컬의 전문성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할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티켓값의 가격유연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장기공연이 가능해지면 무대 설치 및 제거에 필요한 비용과 홍보·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비싼 티켓값을 안정시키고, 빠른 수익창출을 위해 해외의 라이선스 뮤지컬(번안 뮤지컬)만 고집하는 태도를 지양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국내 창작 뮤지컬 활성화의 통로로도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견해다.

 ◇뮤지컬전용극장의 현주소=그러나 첫 뮤지컬전용극장이 설립된 지 6년이 지난 현재, 각 공연장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완공된 블루스퀘어는 개관 일주일 만에 전면 객석 재보수를 실시했다. 좌석 수를 무리하게 확보해 좌석 간격이 좁다는 불편이 제기되는 한편, 3층 좌석은 무대가 난간에 가려져 ‘유배석’이라 불릴 정도로 시야장애가 심각하다는 불만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음향면에서도 “1층 중앙 좌석 외에는 가사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불평이 쏟아졌다. 2000년 다목적공연장으로 문을 연 역삼동 엘지아트센터가 오히려 블루스퀘어보다 시설면에서 관객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엘지아트센터 이선욱 하우스매니저는 “현재 새롭게 개관하고 있는 뮤지컬전용극장들은 시설 면에서 기존의 다목적공연장과 특별히 차별화되는 점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뮤지컬전용극장들이 설립됐음에도 기대와는 달리 장기공연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샤롯데씨어터에서 2009년 9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선보인 「오페라의 유령」을 제외하고서 1년 이상 공연을 가진 뮤지컬은 전무하다. 2011년 8월 「지킬앤하이드」가 9개월간의 장기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뮤지컬전용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들은 대개 길어야 2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이유리 교수는 “전용극장을 지음으로써 기대했던 효과인 폐막일을 지정하지 않고 공연하는 ‘오픈런’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뮤지컬전용극장의 운영이 해외의 전용극장들처럼 오랜 기간의 공연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을 추구하기보다 여전히 짧은 흥행을 목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의 흥행에 열중하는 뮤지컬전용극장의 좁은 시야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창작 뮤지컬 상연보다 라이선스 뮤지컬 수입에 집중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어 국내 뮤지컬계의 질적 성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뮤지컬전용극장들은 1,000석이 넘는 객석을 채우기 위해 흥행이 보증된 라이선스 뮤지컬들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현재 샤롯데씨어터에서는 「닥터 지바고」를, 블루스퀘어에서는 「엘리자벳」과 「캐치미이프유캔」을 공연 중이고 지역 유일의 뮤지컬전용극장인 부산 MBC 롯데아트홀에서도 「넥스트 투 노멀」을 선보이고 있어 사정은 마찬가지다.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상연 중인 「파리의 연인」을 제외하고서는 전부 해외에 저작료를 지불하는 작품들인 셈이다.

 이는 당초 뮤지컬전용극장의 설립이 창작 뮤지컬의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판이한 양상을 보여준다. 원종원 교수는 “여전히 짧은 기간에 많은 수익을 내려는 데 치중해 검증된 라이선스 뮤지컬만 공연되고 있다”며 “이 같은 공연 형태가 지속되면 목표했던 티켓값 안정은 물론 창작 뮤지컬의 발전도 요원하다”고 말했다.

 ◇제기능을 위한 한 걸음=대학로 CJ아트센터(가칭)의 5월 개관과 함께 뮤지컬전용극장의 확충가도는 지속될 전망이다. 민간 투자로 뮤지컬전용극장이 꾸준히 설립되는 가운데 정부 차원에서도 뮤지컬전용극장을 설립 및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종원 교수는 “뮤지컬 수요가 확보되지 않아 기업이 선뜻 투자하기 어려운 문화거점지역에 정부가 뮤지컬전용극장을 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곳곳에 포진한 뮤지컬전용극장 수가 늘면 상연되는 작품 수도 자연스레 증가해 안정적인 뮤지컬 공급 기반을 다지는 것은 물론 다양한 지역의 관객층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 교수는 “지역별로 뮤지컬전용극장을 세워 작품을 순환시키는 일본의 구조가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의 시키(四季) 극단은 10개의 뮤지컬전용극장을 소유해 그 극장들에서 작품을 순환시키며 공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실질적인 질적 발전을 위해서는 뮤지컬전용극장이라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인프라가 구축될 지라도 극장에 안정적으로 오르는 작품이 없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외에서 저작권을 사오는 과정을 거쳐야하는 라이선스 작품보다 쉽게 공급될 수 있는 창작 뮤지컬 개발이 중요하다. 한국뮤지컬협회 박진성 사업국장은 “기업이 갖는 이윤추구의 성격상 흥행이 확실치 않은 뮤지컬을 뮤지컬전용극장에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와 관 주도하에 창작 뮤지컬 제작여건을 개선해 검증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뮤지컬제작사가 협동해 제2, 제3의 「영웅」과 「광화문 연가」를 만든다면 뮤지컬전용극장의 창작 뮤지컬 오픈런도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러한 입장을 반영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월 창작 뮤지컬에 30억을 지원하는 ‘창작 뮤지컬 육성 지원 사업 계획’을 발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 편향된 뮤지컬 시장을 개선해 다양한 작품이 공존할 수 있는 구조로 개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용극장 머제스틱 씨어터에서 1988년 막을 올린 「오페라의 유령」은 24년째 오픈런으로 한 자리에서 뮤지컬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처럼 뮤지컬이 장기적으로 사랑받는 대중예술 장르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뮤지컬전용극장과 같은 시설의 확보와 탄탄한 콘텐츠라는 두 개의 주춧돌이 모두 든든히 뒷받침 돼야한다. 뮤지컬시장의 규모가 2,500억 원대에 다다른 지금, 한국 뮤지컬계가 거품 논란을 딛고 내실 있는 문화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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