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 관악 캠퍼스는 한 바퀴 돌면 약 3천 6백 미터가 되는 순환도로 안쪽만 해도 그 넓이가 백만 제곱미터나 된다(여의도의 1/3 이다). 정문에서 제2공학관 막장까지 직선거리가 약 2천 4백미터, 농생대 서쪽 끝에서 버들골 위 댐까지 약 740m가 된다. 실로 만만찮은 넓이와 거리이다. 여기에 학생 3만2천명, 교수 1천8백명, 직원 천명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살고 있고, 하루에 자동차가 1만3천여 대 드나드니, 이만하면 캠퍼스라기보다는 타운이다. 그것도 높이 차가 175 미터나 나는 가파른 산비탈에 2백 채나 되는 건물이 가득 차 있는 타운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언덕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이 건물 저 건물로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고, 밥 한 끼 찾아먹자면 긴 줄 끝에서 꾹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쉽지 않는 것은 ‘걷기’이다. 순환도로를 따라 일부러 운동 삼아 걷는 동네 사람이 적지 않지만, 학생, 교직원 모두 걷는 것이 고통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삶의 질이 나날이 떨어지는 관악 캠퍼스 안에서 눈여겨 본 길 한 가닥을 잘 살려보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10년 전 캠퍼스발전계획을 세울 때에, 정문 일대를 열어 상아탑의 담을 허물고 지역사회와 대학이 교류할 수 있는 이른바 커뮤니티 구역을 만들면 좋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마침 정문 옆에 미술관을 짓게 되니, 여기에서 시작하여 경영대-동원관-박물관-미대ㆍ음대-법대-자하연-문화관-행정동-학생회관-자연대ㆍ공대 안마당-폭포까지 이르는 구간을 걷기 좋은 길, 걷고 싶은 길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웬만한 대학과 시설이 죄다 달려 있는 길, 한쪽 끝은 도시로 내려가고 다른 쪽 끝은 자연으로 올라가는 길,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넝쿨 같은 길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최근에는 학생들과 함께 내 과목에서 설계를 해 보고 있다. 특히 그 길을 오가는 학생들, 그 길가의 집에서 생활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설계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무심한 듯 보이는 학생들로부터 실로 놀랍게도 기발하고 기특한 생각이 쏟아져 나온다. 음악과 미술, 예술의 향기가 넘치는 곳, 가로수와 잔디밭과 화단이 아름다운 곳, 벗을 만나 정담과 고담을 나눌 수 있는 곳을 꿈꾸는 학생들은 경영대 앞 삼거리의 교통 혼잡 정리하기, 자동차 다니지 않게 하기, 박물관 앞뜰과 자하연 살리기 등등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이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한 십년 힘 모아 잘 가꾸면 아름답고도 이름난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성급하게 길 이름을 생각해 본다. 이 길을 사랑하는 학교와 동네 사람들이 철학자의 길보다도, 느티나무길보다도 더 멋진 이름을 지어 줄 것이다.

 

‘교(校)’는 굽은 나무를 엇걸어 매어 바로 잡는 일이니, 어린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올바르게 해 주는 곳이 학교이다. 그러면서 ‘교(校)’는 나무들이 서로 만나는 숲이기도 하니, 나무 같이 자라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곳이 학교이다. 그래서 이 길은 그 숲 속을 거니는 길, 경쟁 속에서 공존하는 숲의 생태를 배우는 길, 나무 사이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가꾸는 길을 배우는 길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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