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소윤 교수(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사진: 김은정 기자 jung92814@snu.kr

의료분쟁조정법을 고안한 당사자는 이번 시행령을 어떻게 평가할까. 『대학신문』은 김소윤 교수(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를 만나 의료분쟁 조정 관련 정책을 마련하게 된 계기와 의료인으로서 느끼는 점에 대해 들어봤다. 김소윤 교수는 1996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2008년 보건대학원 산하 의료법윤리학과의 교수로 부임한 이후 2010년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실행방안」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의 설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줄곧 의료 분쟁을 조정할 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안다. 의료사고의 대책으로서 분쟁조정기구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의료사고 요인의 분석을 전담하는 기구를 둠으로써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소송까지 가지 않더라도 분쟁의 여지가 있는 사안들이 지금까지는 병원 내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사례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다보니 피드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추후에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수가 없었다. 영국의 경우 우리보다 15년 전에 NHS(국민건강보험) 서비스를 도입하고 국가 차원에서 의료사고를 담당하는 기구를 설치했다. 의료사고 전담기구가 있으면 의료인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사고가 많이 나는 지점을 파악해 예방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다. 예컨대 수술 직전의 환자 이름을 확인하는 등 사소하지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프로세스들이 병원 내에 있는지 체크하고 이러한 과정이 잘 운영되고 있으면 병원 분담금을 줄여주는 등 사고 예방 기전을 갖추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원 산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등 기존에 존재하던 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설립되는 중재원도 유명무실화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소비자원의 조정위원회는 10명 정도의 인원이 전국의 의료 분쟁을 다뤄야 했고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 운영하는 의협공제회도 인력이 10명 이내에 불과했다. 이에 새로 설립된 중재원 내 중재위원회는 200명 정도의 확대된 규모로 꾸리려 하고 있다. 현재 60명 정도가 충원됐는데 이후 인력이 확충되면 자연스럽게 잘 운영될 것이라 본다.

또 조정을 신청한 날부터 90일 이내에 분쟁이 해결돼야 한다는 법정 기간이 있어 빠른 시일 내에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 전문적인 의료인력과 변호인력이 객관적 자료를 두고 판단하면서 점차 의료사고 관련 분쟁이 패턴화될 것이다. 의료사고를 일률적으로 담당하는 거대 기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의료사고 판결은 입증 책임을 의사에게 지우는 추세였지만 여기서는 입증 책임을 누가 지는 것이 아니라 중재위원이 공정성을 지니고 대신 감정하는 것도 기존 제도와 차별화된 부분이다.

◇불가항력적 분만사고 등 의료분쟁조정법의 다른 조항에서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갈등이 심한 상황이다. 특히 산부인과의사협회는 조정절차에 참여하지 않고 헌법소원까지 준비할 것이라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일본에서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데 비해 의료인의 산부인과 기피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자 분만 과정에서 일어난 의사의 잘못이 아닌 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개념으로 무과실 보상제도를 도입했다.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멀쩡하던 산모가 죽었다면 의사의 잘못이 없더라도 황당하고 억울하니 대부분 소송을 하게 된다.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이러한 소송들을 줄이기 위해 국가가 보상을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인이 잘못이 있는데도 무과실을 주장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의료인도 일부 부담하는 형태의 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보상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 의료계 측의 반발이 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료행위의 특성을 고려해 환자와 의료계가 사고의 위험을 함께 감수한다는 취지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 또 이 조항은 당장 시행되는 것도 아니다. 2013년 4월부터 시행될 예정으로 이 유예기간 동안 의료사고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판단한 뒤 관련 예산을 확보할 계획으로 보인다.

◇환자들의 의료계에 대한 시선이나 법 감정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의료계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관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의료 분야가 워낙 전문성이 강하기 때문에 법이 시행될 때 분쟁조정기구 내 의사들이 한쪽으로 편중된 판단만 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 중재원이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의사가 의료 현장을 지킨다는 소신을 갖고 일해야 하고 주변 동료들의 압력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감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일했던 의사들처럼 의료인만을 대변하는 의사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의사들도 많다. 이 생각이 전반적으로도 공유돼야 되는데, 지금 의료단체는 조금 과하게 의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쟁조정법 등 의료 개선 방안을 제안한 것도 우리 같은 의료인들이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제도가 잘 정착해 의료분쟁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해외 분쟁조정기구 사례와 비교해봤을 때 우리나라는 시작 단계다. 중재원이 정말로 효과적인 분쟁조정기구로 기능할 수 있으려면 어떤 점에 중점을 둬야 할까=사실 지금 법에는 환자가 분쟁을 신청하고 의사가 이를 수락해야 분쟁조정이 시작된다는 맹점이 있다. 만약 병원이 기간 내에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환자 입장에서는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 또 의료인 입장에서는 환자들이 시위를 하는 등 업무방해를 할 경우 중재신청에 응해도 병원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힘들다. 중재의 의미는 합리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인데 환자의 협박이나 난동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없다는 게 의료계의 불만이다. 환자들의 업무방해와 상관없이 해결 과정은 똑같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으면 상관이 없지만 지금까지는 의료인이 사회적 시선 때문에 합의를 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런 부분들이 분명히 개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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