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보다 앞서 의료분쟁 중재·조정 제도를 마련한 나라들은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까. 해외의 중재 제도를 비교해 살펴보며 향후 우리나라의 중재제도의 바람직한 개선 방향을 모색해보자.

우리나라처럼 중재조정기구를 설치해 운영하는 나라로는 독일이 대표적이다. 다만 정부에서 중재원을 설치·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에서는 각 연방주 의사협회에서 의료중재원과 의료감정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독일의 분쟁조정기구는 증명 절차를 간소화해 민사소송에서와 같은 엄격한 증명과정이나 증거 제출을 요구하지 않고 의료중재원 구성원과 감정위원들이 손해배상 책임 여부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2~3년씩 걸리는 소송기간에 비해 독일의 분쟁조정기구를 통하면 1년 이내로 신속하게 결정이 나오게 된다. 감정단 구성에 있어서는 여러 분야의 의료전문가들이 절차에 관여해 전문성을 확보하며 특히 이해관계가 배제된 은퇴한 전문가가 참여해 객관적인 감정을 담보한다. 그러나 각 연방 의사협회에서 운영하기에 객관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고 신속한 분쟁 해결에 중점을 둬 법리적인 판단에 소홀하다는 한계도 있다. 소송 절차에서와 같은 엄격한 증명 책임이 배제돼 환자측의 주관적인 감정이 반영된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분쟁조정제도와 공통되는 한계점이다.

일본의 경우 1973년부터 의사배상책임보험제도를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일본의사회가 소속 의사들이 낸 회비로 보험사에 단체가입해 보험료를 내는 시스템이다. 회원인 의사가 손해배상청구를 받을 경우 일본의사회가 우선 보험처리를 하고 의사배상책임보험심사회에서 배상 여부를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의사배상책임보험을 운영하는 일본의사회가 의료분쟁해결기구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의사회와 보험회사는 합동으로 조사위원회와 배상책임위원회를 설치해 조정을 담당하고 사고의 유·무책 판단은 의사배상책임보험심사회에서 한다. 조사위원회는 일본의사회 17명, 일본의사회 변호사 3명, 보험자 3명, 보험자변호사 3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의사배상책임보험심사회는 의학관련 경험자 6명, 법학자 4명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분쟁을 조정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의사회가 대부분의 의료분쟁 업무를 담당해 의료사고의 빈도가 높은 의사를 징계하고 의료 안전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자체적인 자정 노력이 활발한 편이다.

한편 뉴질랜드에서는 일찍부터 의료사고를 민사소송에 의존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었다. 1974년 의료사고뿐 아니라 자동차사고, 산업재해 등 모든 사고를 포괄하는 사회보험제도가 도입됐으며 이후 2005년에 뉴질랜드 정부는 모든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원칙을 표방하고 무과실 보상체계를 확립했다. 대신 ‘의료과오’라는 개념은 없애 의료과실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 의료사고 발생시 손해보상청구 과정에서 의료인의 과실 여부가 중요치 않게 된 것이다. 책임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를 묻지 않아 의료인은 배상 책임으로부터 보호받고 환자는 그 상해 정도에 따라 적정한 보상액을 보장받을 수 있다. 또 환자가 정신적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으므로 개별적으로 의료인과 환자의 의사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사과의 기회를 갖는 등 환자의 욕구 충족에도 신경을 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사고의 입증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이냐로 환자와 의료계 간 분쟁이 지속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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